[대한민국에 묻다] 좋은 에너지와 나쁜 에너지 따로 있나

[대한민국에 묻다] 좋은 에너지와 나쁜 에너지 따로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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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창간기획] ⑥ 좋은 에너지, 나쁜 에너지 따로 있나 〈끝〉

일러스트 = 배민호 minodico@hanmail.net

일러스트 = 배민호 minodico@hanmail.net

에너지는 느리다. ‘검은 에너지’의 시대는 길고 공고했다. 18세기 산업혁명의 동력이었던 석탄은 2017년에도 세계 발전 비중 1위(38%)였다. 석유의 패권은 160년간 이어졌다. 중동은 세계 경제의 꿀단지이자 애물단지였다.

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 #환경·경제성·안정성·안보 얽힌 문제 #원자력 포함 에너지 전환 속도는 #사회적 갈등 풀어가는 속도에 달려 #팀 굴드 IEA 에너지국장 #건축·수송 분야 소비 효율 높여야 #재생에너지도 지정학 측면 중요 #리튬시장은 중국·칠레 등서 장악

지각 변동은 기후 변화와 함께 왔다. 검은 에너지가 내뿜는 탄소가 주범으로 지목되면서다. 변화는 역동적이다. 엑손모빌은 미국 증시의 우량주 목록(다우지수)에서 제외됐다. 92년 만이다. BP의 최고경영자 버나드 루니는 고백한다. “석유가 정점을 찍었냐고?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방향성에 대한 딴지는 사라졌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은 재생에너지 시장을 장악하고, 미국은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했다. 그 사이 한국은 ‘기후 악당’이란 오명을 썼다.

새로운 길에 대한 질문은 꼬리를 문다. 재생에너지는 환경, 경제성, 전력 안정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가. 화력 발전소 없는 산업 생산은 가능한가. 태양과 바람은 에너지 안보의 구세주인가. 나누고 없애는 것으로 족한가. 좋은 에너지, 나쁜 에너지가 따로 있는 것일까. 에너지 전환은 원래부터 이런 모순의 조합이었는지 모른다. 느리지만 역동적인. 

“석탄·원전·풍력·태양광…에너지 칸막이 치우자”

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에너지원(源)별로 쪼개지 말자. 복합적으로 보자.”

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종합적 시각을 강조한다. 에너지 전환은 발전 원료를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뚝딱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에너지의 환경성·경제성·안정성은 물론이고 사회적 갈등, 에너지 안보까지 얽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원별로 쳐진 칸막이를 치우자”며 “감내해야 하는 비용 문제도 반드시 같이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3월과 9월, 반 년의 시차를 두고 진행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에너지 시장 변동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그린뉴딜에 나섰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높아질수록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간헐성 문제가 생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와 전력망 보완이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처럼 일종의 선단을 구성하는 것이다.”(※낮과 밤, 맑은 날과 흐린 날에 따라 태양광 발전량은 들쭉날쭉하다. 이를 간헐성이라고 한다.)
한국의 바람·태양은 에너지 측면에선 질이 떨어진다. 대규모 단지를 만들 땅도 없다.
“투 트랙 전략으로 가야 한다. 새만금 간척지 같은 곳에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세워야 한다. 동시에 소규모 재생에너지를 보급해야 한다. 한국 상황에선 아파트 창문에 설치하는 소형 태양광 발전소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창문 태양광’으로 규모의 경제가 되나.
“중앙 집중이 아닌 분산은 에너지 전환의 핵심 중 하나다. 집이나 빌딩에서 생산한 전기를 모아 사고파는 가상발전소(VPP)를 만들면 된다.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못지않은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고, VPP 자체가 새 비즈니스 기회다. 누구나 전기를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전 독점체제에서 가능한 일인가.
“한전은 좋은 전기를 값싸게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분산형 발전 비중이 커지면 이 방식은 적당하지 않다. 송배전과 판매 등 한전의 독점을 깨는 게 바람직하다. 어느 수준까지 경쟁을 도입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 체계의 왜곡도 개선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여전히 비싸다.
“인도는 대규모 발전으로 이미 태양광이 석탄보다 발전 단가가 낮다. 그런 곳은 100% 재생에너지를 해도 된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아니다. 단기적으론 기업 비용이 급증하지 않도록 보완·지원 장치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그리드 패리티를 앞당겨야 한다. 연구원 분석으로는 우리도 2030년이면 달성 가능하다.”(※그리드 패리티, grid parity=화석에너지와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가 같아지는 균형점)
그래도 전기요금 상승 가능성은 크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 전력 계통의 백업 설비를 확보해야 해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가격이 아닌 가치의 문제다. 싼 화석에너지로 전기를 만들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줄 것인지, 현 세대가 부담을 덜어 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맑은 공기와 물은 공짜가 아니다.”
원전 등을 둘러싼 갈등도 첨예하다.
“신고리 5·6호기, 밀양 송전탑 등 에너지 관련 갈등은 정부마다 있었다. 에너지 전환 속도는 결국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는 속도에 달렸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지속적인 공감대 형성 말고는 지름길이 따로 없다.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가는 게 국가의 역량이다.”
에너지 안보 문제도 있다.
“한국은 에너지 고립 국가다. ‘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중·일을 전력선으로 연결하는 동북아 수퍼 그리드와 시베리아에서 수소를 울산항으로 들여오는 방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다원화가 중요하다.”
기업의 부담도 클 텐데.
“피할 수 없는 미래다.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앞으론 글로벌 시장에서 상품을 팔 수 없게 될 것이다. 중국은 2030년 내연기관을 퇴출시킬 예정이다. 코로나19는 이런 흐름을 가속화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20% 수준이 되는 2030년께는 일상생활에서도 변화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특정한 연료가 아닌 에너지 효율 향상이다”

팀 굴드 IEA 에너지국장

팀 굴드 IEA 에너지국장

전 세계 에너지 정책당국이 전략을 짜기 위해 매년 기다리는 보고서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 에너지 전망보고서(World energy outlook)’다. 팀 굴드 IEA 에너지국장은 이 보고서의 총괄 책임자다. 그에게 대놓고 물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간단한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다.” 3만 자가 넘는 그의 e메일 답변을 요약했다.

도그마에 빠지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래도 전환의 핵심 요소를 짚어 달라.
“지속가능한 길을 만드는 핵심 요소는 에너지 효율이다. 효율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다. 하이브리드 차량이 대표적이다. 에너지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첫 번째 연료는 특정한 에너지가 아니라 효율 향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3%씩 건축·수송 분야에서 소비 효율을 높여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도 쉽진 않다.
“재생에너지 보급과 짝을 이뤄야 하는 과제는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이다. 불안한 공급과 변덕스러운 수요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가스 발전소, 에너지 저장장치 등이 유연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태양광·풍력 등은 날씨에 따른 발전량 변동이 크다. 운행 시간이 제각각인 전기차 등이 늘어나면 수요의 진폭도 커진다. 이런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것을 전력시스템의 유연성이라고 부른다.)
가동 중인 석탄·원자력 발전소를 당장 문 닫을 순 없지 않나.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석탄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운영 기간이 평균 13년밖에 되지 않았다. 수명이 앞으로 수십 년은 남았다는 얘기다. 탄소 저감장치를 달거나, 재설계하거나, 조기 은퇴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최적의 방안은 발전소의 ‘나이’와 효율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각국이 의미 있는 배출량 감소를 위해 적절한 옵션을 찾는 게 중요하다.”
탄소세로 기업 경쟁력 위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은 에너지 집약형이 많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라는 압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그동안 기업은 생산단가를 줄이는 경쟁을 해왔는데 이런 전략이 장기적으로 유효한지에 대해 자문해야 한다.”
결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 않나.
“기존 산업 근로자에 대한 재교육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나 에너지 효율 산업에서도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것은 에너지 전환의 고용 영향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정부 에너지 계획의 핵심 부문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석유의 시대가 저물면 에너지 지정학은 과거보다 덜 중요해지지 않나.
“석유 수요의 증가 속도가 느려졌지만 산유국이 생산량도 줄이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에 대한 중동의 우월적 지위는 더 강화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긴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공급 안정에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도 재생에너지에선 에너지 안보 위험이 덜한 것 아닌가.
“아니다. 에너지 안보를 ‘석유 안보’와 동일시해선 안 된다. 에너지 전환으로 전기와 천연가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기 안보’ ‘가스 안보’를 중요한 의제로 끌어올려야 한다. 지정학적 측면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리튬과 코발트는 중국·칠레 등에 있는 상위 3개 회사가 각 시장의 75%를 독점하고 있다. 또 리튬·코발트 정제의 50~70%, 희토류(희소 금속) 가공의 85%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지정학은 앞으로도 중요한 키워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에너지 시장에 미칠 영향은.
“올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보다 8% 줄어들 전망이다. 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감소다. 다국적 석유 업체의 투자도 크게 줄었다. 에너지 시장엔 10년의 법칙이 있다. 10년 동안 계속 투자해야 10년 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석유시장은 이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또 코로나19로 온라인 마켓과 스트리밍 서비스, 서버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데 모두 전기에너지에 뿌리를 둔 시장이다. 태양을 에너지원으로 생산하는 전기는 현재 전체의 7% 수준인데, 2040년 무렵에는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기 생산이 석탄 등 다른 에너지원보다 많아질 것이다.”

LNG, 가격 싸지면서 발전량 증가…에너지 전환의 다리 역할

재생에너지 보조 대표적 수단은
ESS도 활약, 한국 2024년 세계 5위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의 ‘환경수도’로 꼽힌다. 1940년대 배기가스로 인한 스모그 사태를 겪은 후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엄격한 환경 규제를 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은 35%에 달한다. 마지막 남은 디아블로캐년 원전도 2025년 폐쇄한다.

그러나 기록적인 산불과 50도의 폭염이 지속하던 지난 8월 14~20일, 캘리포니아주에선 하루에 몇 시간씩 정전이 발생해 수백만 명의 주민이 고통을 겪었다. 전력 비축량이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주정부가 전력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전은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산불과 폭염 등 기후 이변을 방지하려면 장기적으로 친환경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첫째다. 둘째는 당분간 에너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선 재생에너지를 보조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 수단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과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천연가스는 대기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 화석연료’로 불린다. 특히 정지 상태에서 최대출력에 이르는 시간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수급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상반기 미국 전체 발전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지난해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하지만 천연가스 발전량은 오히려 9% 늘었다. 셰일 붐으로 생산량이 늘면서 가격도 지난 3월 이후 석탄보다 싸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금 인하 등으로 LNG 직도입 발전단가는 kWh당 30원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석탄 발전단가는 40~50원대다. 전문가들은 “LNG가 에너지 전환의 브리지(다리)를 넘어 재생에너지의 파트너가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ESS는 재생에너지를 괴롭히는 자연의 제약을 극복한 전기 저장장치다. 미국·독일 등은 ESS를 의무화하거나 연계하는 방향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쓰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세계 ESS 설치 용량은 2018년 12GWh에서 2024년 158GWh로 연평균 53.7%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2024년 한국의 ESS 설치용량은 미국·중국·일본·호주에 이어 세계 5위권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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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고정애·김영훈·하현옥·유지혜·권호·박수련·이소아·윤석만·강기헌·하남현 기자 q202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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