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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선택에 내 보험료 왜 써"…낙태약 '미프진' 건보적용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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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적발된 중국산 가짜 미프진. 연합뉴스

경찰에 적발된 중국산 가짜 미프진. 연합뉴스

법무부·보건복지부가 임신 14주까지 인공 임신중단(낙태)을 조건 없이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인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7일 입법 예고했다.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주수(週數) 기준, 사회·경제적 사유 등을 뒀다. 개정안은 자연유산 유도제의 합법화도 담았다. 이 법안은 40일 이상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앞으로 먹는 낙태약 허가와 건강보험 적용 문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건보 적용 두고도 논란 #찬성론 "경제적 이유로 낙태하는데, 건보가 도와야" #반대 "개인 선택에 왜 내 보험료 수십억 쓰느냐"

75개국 사용하는 미프진 수입?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낙태 방법을 수술 외 ‘약물’로도 가능하게 했다. 산모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서다. 약물은 자연 유산 유도제를 말한다. ‘미프진’이 정식으로 국내에 수입될지 관심거리다. 미프진은 프랑스 제약회사인 러셀 위클리프가 1980년 개발한 낙태 유도제다. 임신 초기 자궁 수축을 유도하고 호르몬 생성을 억제해 인공유산을 유도한다. 2005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고, 현재 75개국에서 시판되고 있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국내선 불법인데도 광고도 버젓이 

하지만 미프진은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입·판매·유통 모두 안된다. 그런데도 이미 ‘먹는 낙태약’으로 소문 나 있다. 인터넷에는 미프진 복용과 관련한 글이 적지 않다. 포털사이트엔 지난 2월 익명으로 “어린 나이에 임신했다. 임신 7주차인데 미프진을 복용해도 되냐”는 고민을 올렸다. 또 간단한 검색만으로 미프진 ‘정품’ 판매처를 찾을 수 있다. 불법인데도 버젓이 ‘(임신) 12주 전 59만원’ ‘7주 전 39만원’이라고 가격까지 써놨다.

이런 현실에 지난 5월 중국산 가짜 미프진을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혀 구속되기도 했다. 8만원 짜리 작퉁 제품이 국내에서 38만원으로 둔갑해 팔려 나갔다.

부작용 사례도 이어져 

자연히 미프진 복용과 관련해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복통·메스꺼움 등 다양하다. 지난해 초에는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미프진을 복용한 10대 청소년이 실려 온 일도 있었다. 배에 피가 고이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뒤였다.

이에 한쪽에서는 미프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왔다. 제도권 안에서 철저히 관리해 오·남용, 부작용을 막자는 주장이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대표적이다. 약사단체인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도 미프진 도입에 찬성한다. 익명을 요청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불법임을 알면서도 미프진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문제”라며 “자궁 외 임신일 때는 효과가 없다. 그런데도 임신만으로 무조건 구하려 한다. 결국 유산이 안 돼 다시 낙태 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임신중단(낙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임신중단(낙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첨예한 찬반입장 

반면, 종교계 단체인 '행동하는 프로라이프'는 미프진 도입에 반대입장이다. 프로라이프는 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프진은 (잘못 사용하면) 과다출혈로 인한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며 “약물에 의한 낙태가 실패한 뒤 출산할 경우 12%의 태아가 선천적인 문제를 안게 될 위험도 있다”고 주장했다. 가족회복코칭상담연구소 등도 비슷한 이유로 미프진의 부작용을 경고한다. 두 단체·기관은 낙태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산부인과 전문의는 “미프진이 합법화되면 비아그라처럼 서울 시내 주요 전통시장에서도 유통될 게 뻔하다”며 “산부인과 처방받기를 꺼리는 청소년이나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성인 등이 찾는다. 사후 피임을 제때 하지 못해 급하게 약을 먹을 텐데,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프진 사용의 신중론도 나왔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미프진은 엄격하게 사용돼야 한다”며 “복용 후 산부인과 의사가 유산 유도가 잘됐는지 불완전 유산은 없는지 초음파로 확인해야 한다. ‘약만 먹으면 유산된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현행·개정 낙태 허용 요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현행·개정 낙태 허용 요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내에선 안전성 검증 안 돼 

국내에서 미프진 안전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18년과 지난해에 각각 한 차례 식약처에 미프진의 안전성 검토 자료를 요청했다. 식약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에 미프진을 수입하려는 제약사 등이 공식적으로 안전성 검토를 의뢰해야 분석이 가능하다”며 “우선은 (낙태 시술에 약물허용을 담은) 낙태 관련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적용도 논란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할지도 논란이다. 현재 모자보건법상 허용된 낙태 4가지 사유에는 건강보험 보장을 받는다.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 된 경우, 산모의 건강위험 등이 해당된다. 임신 8주 이내 10만 원, 8∼12주 13만 원가량의 수가를 지급하고 있다. 건보 적용이 되지 않는 자의에 따른 낙태 시술비용은 30만 원~100만 원 이상으로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인공 임신중절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응답자의 32.9%가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를 낙태 사유로 꼽았다. 여성계에서 건보 적용을 요구하는 이유다. 건보를 적용해야 낙태 실태를 파악해서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낙태 한해 5만건 추정 

하지만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개인선택에 의한 임신중절수술에 건보 재정을 투입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낙태 건수는 한해 5만건으로 추정된다. 수술 시기는 평균 임신 초기인 6.4주였다. 단순 계산하면 한해 50억 원가량이 든다. 7일 입법예고 법률 개정안에는 이런 내용까지는 들어있지 않다.

복지부 관계자는 “형법 개정안에서 낙태의 허용범위가 확대된 만큼 어디까지 건보를 적용할지 이해 당사자, 전문가들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민욱 기자, 황수연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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