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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베테랑도 겁난 흑산도 새벽바다 불길, 기적의 전원구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일 오전 4시께 전남 신안군 흑산도 북방 26㎞ 해상. 시뻘건 불길이 치솟던 86t급 어선 ‘2017 국제호’에 목포해경 1509함 소속 화재진압팀 10여 명이 거친 파도를 뚫고 접근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 높은 파도가 몰아치는 악조건에서 13명의 선원이 화마에 휩싸였지만, 긴급 출동한 해경의 도움으로 전원 구조됐다. 정우진(34) 1509함 구조팀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새벽 시간 어선 화재에서 사망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은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6일 새벽 흑산도 해상에서 86t급 어선 화재 #“새벽 때 어선 화재 사망자 0명 극히 드물어” #20여 회 선박 화재 투입 베테랑도 애먹은 바다 #처음 투입된 해경도 “겁나도 사람부터 구해야”

접근조차 어려웠던 거친 바다

6일 오전 2시 54분께 전남 신안군 흑산도 북방 약 26㎞해상에서 불이 난 86t급 어선 '2017 국제호'에 목포해경 소속 1509함 대원들이 접근하고 있다. 사진 목포해경

6일 오전 2시 54분께 전남 신안군 흑산도 북방 약 26㎞해상에서 불이 난 86t급 어선 '2017 국제호'에 목포해경 소속 1509함 대원들이 접근하고 있다. 사진 목포해경

 정 팀장은 특전사에서 4년 6개월을 근무하다 해경으로 옮긴 지 올해로 9년째다. 그동안 20여 차례 선박 화재 현장에 투입됐었던 그도 지난 6일 새벽만큼은 선박에 다가가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정 팀장은 “고속단정을 이용해 화재 선박에 접근했는데 파고가 3m가량 높게 쳐 배가 뒤집어지면 구조팀도 모두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최고 시속 40노트의 배를 4~5노트로 천천히 접근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동안 혹시나 인명피해가 커질까봐 대원들 모두 입이 바짝 말라 있었다”고 긴박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2017 국제호에서 치솟는 불길을 보고 30여 척의 선박이 다가왔어도 곧장 손을 쓰긴 어려운 여건이었다. 이영완(58) 1509함 함장은 “화재 하루 전날 흑산도 해상에 내려졌던 풍랑주의보가 해제된 직후였는데도 기상조건이 나아지지 않아 구조팀도 목숨을 건 상황이었다”고 했다.

불길 너머 고립된 선원 5명 구출

6일 오전 2시 54분께 전남 신안군 흑산도 북방 약 26㎞해상에서 불이 난 86t급 어선 '2017 국제호' 선원들을 모두 무사히 구조한 목포해경 소속 1509함 대원들. 사진 목포해경

6일 오전 2시 54분께 전남 신안군 흑산도 북방 약 26㎞해상에서 불이 난 86t급 어선 '2017 국제호' 선원들을 모두 무사히 구조한 목포해경 소속 1509함 대원들. 사진 목포해경

 2017 국제호 선원은 총 13명으로 이 중 5명이 화재 당시 선미 쪽 침실에 있었다. 일부 선원들이 자력으로 화재 진압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불이 선미에서 거세게 일어난 탓에 침실로 향하는 진입로도 확보하지 못했었다.

 목포해경에 따르면, 이날 처음 화재현장에 투입된 조승우(34) 경장이 불길이 일렁이던 침실로 뛰어들었다. 방화복에만 의지한 채 들어선 침실에는 선원 4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속히 구조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조 경장은 “침실로 진입하려면 주방을 지나 아래층을 뚫고 지나가야 했는데 주방 쪽 불길이 거세 침실까지 연기가 자욱했다”며 “큰 불만 잡고난 다음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던 4명을 로프로 묶어서 갑판으로 꺼냈다”고 말했다.

“겁나긴 했지만, 사람부터 구하고 봐야”

 간신히 구조한 선원들을 응급조치하는 와중에도 잡히지 않은 불길이 일렁였다. 조 경장은 “앞장서 침실로 들어갔지만, 솔직히 화재 현장이 처음이라 겁도 났다”면서도 “1509함 승선원 모두가 평소 선박 화재 진압 훈련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사망자 없이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2017 국제호 주변으로 모인 인근 어선 선박들도 불길을 피해 구명벌을 펼치고 선원 2명을 구조하면서 힘을 보탰다. 파도가 거칠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어두운 바다에서 실종될 위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영완 함장은 “우리 함정의 힘만으로 헤쳐나가야 했던 악조건이었는데 전원 구조되고 사망자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며 “긴급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평소 훈련에 성실히 임해 준 대원들 덕분이다”고 말했다.

목포=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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