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냉동고에서 죽기 직전 구출된 인사성 밝은 여직원

중앙일보

입력 2020.10.07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9)

인생 2막인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은퇴한 남편과 생활하는 여인 세 명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이 나이 들어가면서 동시에 늘어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놀랍게도 세 여인의 대답은 동일했다. 고집이라고. 그것도 똥고집이라고. 고집이 센 사람을 옹고집이라고 하는 데, 똥고집은 옹고집을 비아냥거리는 표현이다. 얼마나 넌덜머리가 났으면 그런 대답을 했을까. 대부분의 남성에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어나는 것 두 가지와 줄어드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늘어나는 두 가지는 세 여인이 예를 들은 고집과 또 하나는 불만이다. 줄어드는 두 가지는 웃음과 인사다.

늘어나는 두 가지와 줄어드는 두 가지를 가르는 기준은 ‘욕심’이다. 욕심의 강도에 따라 이 두 가지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는 사람의 인생후반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욕심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다.

모파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천재적인 글솜씨를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쓰는 글은 날개가 돋친 듯 팔려 나갔고 일찍부터 부와 명예와 지위를 얻게 된다. 몇 채의 아파트와 호화 별장을 갖고 저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부를 누리던 모파상이었지만, 한창인 42세에 자살을 기도했으며 그 후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1년을 보내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도대체 부족함이란 전혀 없을 듯한 그가 왜 정신질환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을까?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모든 것을 가지려 했었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바로 충족시킬 수 없는 욕심이 그를 파멸로 이르게 한 것이다. 과거의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늘어나는 것은 불만과 자신이 누렸던 지위와 명예에 대한 고집뿐이다.

선술집에서 늙수그레한 중년의 남성이 거나한 목소리로 왕년을 찾는 걸 보면 그를 단박에 알 수가 있다. 고집이 늘면 불만도 많아지니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이웃에게 불친절하고 인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웃음과 인사성이 줄면 곁에 모이는 사람이 없고 그가 또 불만이니 남 탓하는 고집은 점점 늘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일소일소가 아니라 일노일노인 것이다.

웃자,먼저 인사하자. 인생후반부 버려야 할 것은 고집과 불만이고 늘려야 할 것은 웃음과 인사다. [사진 한익종]

웃자,먼저 인사하자. 인생후반부 버려야 할 것은 고집과 불만이고 늘려야 할 것은 웃음과 인사다. [사진 한익종]

젊게 살고 싶은가? 불만과 고집을 낳는 욕심을 버릴 일이다. 욕심을 버리면 자연히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을 느끼게 되고 웃음과 이웃에 대해 먼저 손을 내미는 인사가 늘어난다. 웃음과 인사가 주는 놀라운 효과는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웃음과 인사가 자신의 생명까지도 구해준 사례가 있다. 어느 냉동회사에 다니는 여직원의 일화다. 이 여직원은 퇴근 전에 항상 공장 내부를 살피고 퇴근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장 내부를 살피던 중 냉동고 문이 저절로 잠기면서 그 여직원은 냉동고 안에 몇 시간을 갇히게 됐단다. 그런데 죽음이 임박한 순간 냉동고 문이 열리며 한 줄기 생명의 빛이 스며드는 게 아닌가. 여직원의 퇴근 여부를 궁금해하던 경비원이 그를 살린 것이다. “내가 23년을 이 공장에 근무했는데 출퇴근할 때마다 밝게 인사 건네는 직원은 아가씨뿐이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퇴근 인사가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했지요”라는 말로 자초지종을 얘기했단다. 에이, 그건 특별한 경우라고요?

제주로 내려와 1년이 다 돼 가는 어느 날, 동네 이장이 내게 우리 부부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냐고 묻는다. 별명이 뭐냐고 물으니 동네 분들이 ‘인사 잘하는 부부’라고 한단다. 내가 얻은 그 어떤 별명보다도 매우 기분 좋은 별명이었다. 그 후 어떻게 됐냐고? 흔히들 제주도에선 외지에서 온 사람을 ‘육지 것’이라며 경계하고 멀리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 인사 잘하는 부부라는 별명을 얻은 후 내가 제주에 와서 앞으로 하겠다는 일에 대해 마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 것은 모두 웃음과 인사 덕이다.

그럼 그런 웃음과 인사는 어디서 왔을까? 두말하면 잔소리로 타인과 함께하겠다는 봉사와 기부의 자세에서 왔고, 그 봉사와 기부행위는 욕심을 줄여 가는 것에서부터 왔다. 이렇듯 봉사와 기부를 통해 욕심을 줄이는 것은 인생후반부 자신을 위한 최고의 응원군일뿐더러 타인에게 하는 가장 손쉬운 봉사인 것이다. 웃음과 인사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타인에게 나타내는 행위이며 그 행위를 통해 타인은 대우의 도를 달리하니 웃음과 인사는 타인을 위한 봉사인 동시에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봉사를 ‘이타를 통한 이기주의의 실현’이라고 말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고집과 불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심리상태가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이다. 고집과 불만은 웃음과 인사를 잃게 해 타인이 경계하게 하며 결국은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행위이다.

오랜 전 카보디아 여행중 그림 바이욘의 사면불상.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 불상은 보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사진 한익종]

오랜 전 카보디아 여행중 그림 바이욘의 사면불상.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 불상은 보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사진 한익종]

캄보디아 씨엠립의 옛 수도 앙코르톰에 가면 바이욘의 4면불상을 볼 수 있다. 이 불상은 천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각도와 거리에 따라 달리 보이는 불상은 바라보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따라 미소를 지은 상으로도, 노려보는 인상으로도 보일 수 있다. 타인은 내 행동의 사면불상이다. 상대편이 내게 비협조적이거나 심지어는 위협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내가 고집과 불만을 드러내고 웃음과 인사가 사라진 행동을 한 것이다.

최근 나훈아 신드롬이 이 땅을 진동시키고 있다. 무엇이 나훈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을까? 수백억의 재산을 가진 나훈아 씨의 말 한마디, “나는 자식들에게 공부시켜 달라는 대로 도와줄 겁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 후 내 재산은 모두 사회에 기부할 겁니다.” 예인의 높은 경지와 함께 나만 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겠다는 태도가 그를 밝게 만들고 있으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갖게 했으니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존경과 흠모의 정을 갖게 한 것이다.

인생후반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답은 명쾌하다. 고집과 불만을 야기시키는 욕심을 버리고 웃음과 인사를 가능케 하는 봉사와 기부의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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