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고혈압·당뇨·위염 등 경질환 126만명, 내일부터 상급병원서 찬밥신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8일부터 고혈압·당뇨병·위염·감기 등의 경증질환을 앓는 환자가 상급종합병원(대형 대학병원)에 가면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갈 때마다 진료비 부담이 올라가고, 연간 부담 제한 혜택을 못 볼 수도 있다. 또 “동네병원으로 가라”는 병원의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예약이 미뤄지거나 안 될 가능성도 있다.

100개 경질환자 동네 보내기 시행 #진료비 건보 적용 안해 100% 부담 #연간 진료비 부담 상한적용도 배제 #병원도 수입 30% 줄게 돼 고민 중 #“동네병원행 설득 지원 조치 절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법 시행령, 요양급여 기준(건보 적용 기준)을 개정해 8일 시행한다고 밝혔다. 초진환자가 아니라 재진환자가 대상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100대 경증질환 환자가 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신촌세브란스·서울성모 등의 42개 상급종합병원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 병원들이 경증환자를 보면 손해 보니 동네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라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자주?찾은?경증질환 순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급종합병원?자주?찾은?경증질환 순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증질환은 척추협착·경추통·방아쇠손가락·상세불명 추간판장애·요통 등의 근골격계 질환, 소화불량·위염·천공 없는 급성 위궤양·과민대장증후군 등 소화계 질환, 우울증·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의 정신질환, 아토피피부염·전립선염 등으로 다양하다. 지난해 가장 상급종합병원을 많이 찾은 경증질환(재진환자)은 고혈압이다. 다음으로 당뇨병·우울증·척추협착·전립선증식증·아토피피부염 등의 순이다. 지난해 상급병원을 찾은 경증환자는 125만6213명이다. 상급병원 외래환자의 16.9%다. 이들에게 사용한 건보재정은 2090억원이다. 매년 2000억원 넘게 사용한다.

경증환자 상급종합병원 이용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경증환자 상급종합병원 이용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우선 환자 부담이 달라진다. 지금은 진찰료 전액(재진료)과 그외 비용의 60%를 부담한다. 앞으로는 모든 비용의 100%를 부담한다. 건강보험 혜택을 전혀 못 본다. 다만 진료비 총액에서 의료 질평가 지원금과 행위료 가산금(30%)을 빼고 100% 부담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부담이 약간 늘거나 비슷해진다. 당뇨병 환자를 보자. 지금은 진찰료 외 비용이 6만1870원(a)이다. 당 검사와 요·지질 검사비가 4만710원, 이 검사비의 30% 가산금(1만2200원), 의료 질평가 지원금(8950원)을 더한 것이다. 재진료 1만5110원에다 a의 60%를 더해 5만2230원을 낸다. 8일부터 가산금과 의료질평가지원금이 없어진다. 대신 진찰료와 검사비(4만710원) 전액 5만5820원을 낸다. 3590원(6.9% 증가)이 늘어난다.

상급병원?100대?경증질환?진료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급병원?100대?경증질환?진료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눈 다래끼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과 눈앞 촬영을 하면 지금보다 1000원 올라간다. 티눈과 굳은살 제거 처치를 받을 경우 환자 부담이 3만9400원으로 변함이 없다. 드물게 줄 수도 있다. 고혈압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심전도 검사, 혈액검사, 흉부촬영을 하면 부담이 3만5000원에서 3만3700원으로 줄어든다. 이처럼 검사나 처치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경우 줄어들 수도 있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환자 부담이 줄어드는 경우는 드물고 소폭 늘어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평균 10%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급병원?경증환자?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급병원?경증환자?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불이익을 받는다. 건강보험료를 1~10분위로 나눠 연간 건보 적용 진료비를 81만(1분위)~582만 원(10분위)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건보재정이 부담하는 제도이다. 경증질환 진료비 부담에 건보가 적용 안 돼 연간 진료비 산정에서 빠진다. 가령 중간분위(6~7분위) 상한선이 281만원인데, 한 해 진료비가 상한선에 근접했을 때 이번 조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증환자 상급종합병원 이용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경증환자 상급종합병원 이용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번 조치는 환자 부담을 늘려 상급병원행을 줄이려는 목적보다 병원에 손해를 주는 데 있다. 의료질평가지원금(중증환자 진료, 교육수련 등을 평가해서 지원하는 돈)과 진료행위 가산금(30%)을 못 받게 된다. B 대학병원 관계자는 “경증환자에게 동네병원으로 가도록 적극적으로 안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병원 관계자도 “주치의가 동네병원에 가도 문제없다고 안심시키고, 중소협력병원으로 환자를 더 보내려 한다”며 “하지만 협력병원 연계 담당 직원을 늘리기도 쉽지 않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병원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경우 예약을 한참 뒤로 미룰 가능성도 있다.

경증환자 상급종합병원 이용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경증환자 상급종합병원 이용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정부는 이번 조치의 보완장치로 상급병원에 다니다 동네병원으로 바꾼 환자의 증세가 나빠져 상급병원으로 다시 가야 할 경우 진료 예약을 당겨주도록 병원에 권고하기로 했다. 동네병원 의사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보냈을 때도 마찬가지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그동안 환자의 부담을 높였는데도 경증환자의 상급병원행이 줄지 않았다”며 “이제는 병원이 책임지고 동네병원행을 설득해야 한다. 의사가 설득하면 안 갈 환자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병원들이 환자의 질병코드를 비(非) 경증질환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에 환자의 약국 부담은 손대지 않았다. 100대 경증질환으로 약국에 가면 약제비의 50%(일반환자 30%)를 낸다. 그래서 병원들이 환자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도록 지원하는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