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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중요하나 제한될수 있다" K방역 외친 강경화의 수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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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 쿠웨이트대사관에서 쿠웨이트 국왕 서거 조문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 쿠웨이트대사관에서 쿠웨이트 국왕 서거 조문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의 ‘요트 쇼핑 여행’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요트 사러 미국 간 남편, 4일밤 블로그 폐쇄 #강장관 "거듭 송구…이 교수도 굉장히 당황해한다, #여러 친구와 오래 계획해 귀국할 상황은 아니다" #강장관, 전 세계 'K 방역' 홍보 전도사였지만 #남편 땜에 잠복했던 사생활 침해논란 불거져

강 장관은 5일 오후 국왕 서거 조문을 위해 쿠웨이트 대사관을 다녀온 뒤 기자들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거듭 드린다"면서도 "(남편인) 이 교수도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 계속 연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의 귀국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워낙 오래 여러 사람과 친구들하고 계획했기 때문에 쉽게 귀국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전날 "미루고 미루다가 간 것이어서 귀국하라고 얘기하기 어렵다"고 한 입장을 고수한 셈이다.

미국에 도착한 이 교수는 파장이 커지자 4일 밤늦게 자신의 여행 계획을 소상히 공개한 블로그 ‘일병씨의 행복여행’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앞서 이 교수는 3일 미리 계획했던 요트를 사러 간다며 미국으로 출국했는데 부인이 이끄는 외교부가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데 대해선 “내 삶이 있는 것인데 모든 걸 다른 사람 신경을 쓰며 살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당장 국감을 앞둔 정치권 안팎에선 온종일 강 장관 남편 이슈로 시끄러웠다. 야당은 조국·추미애 전·현직 법무장관에 이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맹공격한 반면, 여당은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외교장관으로서 직무 수행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CBS 인터뷰에서 "사안의 핵심은 이중 잣대"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조국 장관 때는 '조로남불', 추미애 장관의 '추로남불'에 이어 '강로남불'까지 생길 판"이라며 "일반 국민에겐 성묘도 가지 마라, 어른들 인사도 가지 마라면서 요트를 사러 호화 여행을 가는 걸 그냥 개인의 문제로 넘어가면 특권과 반칙의 문제가 대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에 "결국 강 장관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았느냐. 공적 책임으로 연결해서 강 장관을 공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송구스럽다고 사과했으니 그 정도면 됐다"고 했다.

또 하나의 논쟁은 공인인 부인의 남편 사생활을 어느 선까지 인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서일병(추 장관 아들) 후임은 이일병. 단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네"라면서도 "개인의 사생활인데 굳이 이런 것까지 따져야 하나?"라고 적었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도 KBS 라디오에서 “우리가 이제 방역의 기준을 고민할 때가 됐다”며 “미국과 한국에 돌아와 격리 기간을 잘 지킨다고 하면 방역 관점에서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고위 공직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에게 일정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원칙은 현행 공직자윤리법상의 재산공개 제도에 반영돼 있다. 강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4급 이상)의 배우자는 의무적인 재산등록ㆍ공개 대상이며, 자녀나 부모와 달리 고지 거부를 할 수 없다.

실제 올해 3월 공개된 강 장관의 재산 내역에는 이 교수의 것으로 추정되는 세일링 요트, 수상 오토바이, 보트 트레일러 등 수상 레저 관련 물품(2800여만 원 상당)이 포함돼 있다.

2017년 청와대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강 장관과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2017년 청와대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강 장관과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나아가 이번 강 장관 부부의 엇갈린 행보 자체가 문재인 정부 국가 방역의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강 장관은 그동안 'K 방역'을 전 세계에 홍보하면서 "한국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 시스템"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제로 핵심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였다. 국내 확진자의 동선을 일일이 추적·공개하고, 확산 차단을 위해 전 국민에 식당·카페를 이용할 때도 신상정보를 기록하게 한다. 신혼여행을 포함한 여행 자제 조치도 이 때문에 나왔다.

확진자에 대한 신상털기와 비난 세례에 정부 고위 공직자는 물론 일반 직장에서도 “조직 내 1호 확진자가 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공포감마저 퍼졌다.

물론 정부 주도의 강력한 방역 조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억제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이처럼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제약한다는 문제가 잠복해 있었다. 한국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낳은 유럽 국가들이 'K 방역'을 흔쾌히 수용하지 못한 이유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국제회의장에서 주한 외교단을 상대로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노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국제회의장에서 주한 외교단을 상대로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노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상반기 독일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한국을 벤치마킹 하고 싶다”며 앞다퉈 외교부에 문의했지만, 검토 과 “지나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어 적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 장관은 이런 외부 비판에 맞서 한국 정부를 옹호하는 대변자였다. 지난 5월 독일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한국인은 정부 조치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보다 사회적 망신을 더 두려워한다는 연구가 있다'고 지적하자 “사생활은 중요한 인권이지만 법률에 따라 제한할 수도 있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강 장관은 강변했지만, 역설적으로 수면하에 있던 자유와 사생활 침해 이슈가 정작 남편의 미국 요트 쇼핑 여행으로 불거진 것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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