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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0여개 배달, 끼니 못 챙겨도 '성실함'이 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신없이 하다 보면 점심도 잊어요."

추석 연휴 직전이었던 지난달 28일 오후 1시. 9년 차 택배기사 이청하씨(남‧33‧인천 거주)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골목에서 '탑차' 문을 열었다. 택배 트럭 구석에 추석 선물세트가 담긴 상자가 보였다. 안쪽에는 쌀·물 등 생필품과 옷, 운동기구, 형광등 등 쇼핑몰에서 발송한 물건들이 가득 실려있었다. 이씨는 순서대로 담긴 물건을 밖에서부터 꺼내 바퀴가 달린 수레에 올렸다. 이날 담당구역인 청담동 골목을 걸어 다니며 이씨가 배달한 물건은 총 280개. 이씨는 "코로나19 유행과 추석 연휴가 겹쳐 1인당 배송 물량이 30% 정도 늘었다"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시간 안에 배송이 끝난다"고 말했다.

30대 택배기사의 추석 선물 배송기

지난달 29일 택배기사 이청하씨가 강남구 청담동의 한 도로에서 택배 물건을 하차하는 모습. 편광현 기자

지난달 29일 택배기사 이청하씨가 강남구 청담동의 한 도로에서 택배 물건을 하차하는 모습. 편광현 기자

이날 평소보다 배달량이 많았던 이씨는 점심을 건너 뛰었다. 수레에 물건을 싣던 그는 "한가한 주의 월요일에는 기사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기도 한다"면서도 "늘어난 업무에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점심 생각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비대면 배송하자 문의 전화 늘어

이씨는 한 연립주택의 문 앞에 추석 선물세트가 담긴 상자를 내려놓은 뒤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그러고는 고객에게는 "물건이 도착했습니다"는 문자를 보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만들어진 비대면 배송 원칙을 따른 것이다. 이씨는 "얼굴을 보고 확인하지 않으니 배송지가 틀려 물건이 방치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안 오던 전화 문의가 하루 10통 정도 온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예전에는 얼굴을 보고 전달해주길 원해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배달하는 시간이 짧아지기는 했다"고 말했다.

택배기사 이씨가 비대면으로 배송한 물건들을 촬영하고 있다. 편광현 기자

택배기사 이씨가 비대면으로 배송한 물건들을 촬영하고 있다. 편광현 기자

하루 12시간 근무…"이 동네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이씨의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이다. 인천에 사는 그는 오전 7시에 분류작업을 하는 강남 '서브' 터미널에 도착해 낮 12시까지 자신이 배송해야 할 물건들을 트럭에 싣는다. 오후 5시까지는 물건을 고객들의 집으로 나른다. 5시 이후에는 이씨가 직접 계약한 거래처에서 물건을 받아 터미널로 옮기는 '상차' 작업을 한다. 퇴근 시간은 대략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 직후 택배 물량은 지난해보다 30% 증가했다. 이 기간 택배 기사들이 하루 평균 처리해야 하는 물량은 1인당 300~350개다.

이씨에게 택배기사가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씨는 "코로나 유행 전보다 확실히 업무량이 많아졌다"면서도 "숙련된 택배기사들에게는 온종일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한 기사라면 힘들겠지만 9년째 같은 지역에서 택배를 하다 보면 눈 감고도 배송지를 찾아갈 수 있다"며 '이 동네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것이 택배기사들의 자부심이다"고 전했다.

택배기사 이씨의 배달 모습. 편광현 기자

택배기사 이씨의 배달 모습. 편광현 기자

"성실해야만 하는 직업, 인식 바뀌었으면"

이씨는 "택배기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택배기사의 최대 특징은 '성실함'이다. 그는 "내가 아는 택배기사는 모두 성실함을 가장 큰 무기로 가지고 있다"며 "주어진 할당량을 해내려면 부지런한 사람만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택배 기사를 안 좋은 직업으로 보는 분들이 있다"며 "먹고 살기 위해서 힘들게 일하는 이미지가 남아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을 가지고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또 "택배기사뿐 아니라 분류·하차 작업원들의 처우도 개선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자신이 택배 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택배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성실하게 일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다는 점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이씨가 받은 간식. 이씨는 "최근 택배기사에 감사해주시는 분들이 늘었다"며 "추석 선물을 나눠주기도 하신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지난달 29일 이씨가 받은 간식. 이씨는 "최근 택배기사에 감사해주시는 분들이 늘었다"며 "추석 선물을 나눠주기도 하신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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