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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일찍 폐업해서 제외됐다"…재난지원금이 억울한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소상공인들이 새희망자금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소상공인들이 새희망자금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정부가 5일부터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중단했던 재난지원금 지급을 재개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일부 소상공인들·구직자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했던 A씨(59)가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이전까지 그가 운영하던 보습학원은 월평균 30여명의 학원생이 등록했다. 최소 10명의 학원생이 등록해야 임대료(80만원)와 부가세(8만원), 관리비(50만원) 등 고정비용(138만원)을 감당할 수 있었다.

보름 일찍 폐업했다고 미지급

2차 재난지원금 누가 받나. 그래픽 박경민 기자

2차 재난지원금 누가 받나. 그래픽 박경민 기자

하지만 연초부터 국내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학원에 등록하는 학생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여기에 비대면 수업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하면서 장기간 학원에 다녔던 학생들까지 대부분 이탈했다. 하루라도 빨리 폐업하는 것이 그나마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는 방법이었다. 다급해진 A씨는 지난 7월 말 교육청에 학원설립운영등록증을 반납하고 세무서에 폐업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정부가 지급하는 2차 재난지원금의 일종인 ‘소상공인 폐업 점포 재도전 장려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50만원). 하지만 연휴 내내 기다리던 장려금 지급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5일 장려금 지원 요건을 확인해 보니 그는 지원금 신청 대상이 아니었다. 재난지원금은 폐업일이 ‘8월 16일 이후’인 소상공인만 신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순전히 코로나19 때문에 반평생 해오던 학원을 접었는데 고작 보름 일찍 폐업했다고 장려금을 못 받는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는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조치가 시행된 8월 16일이 지급 기준일”이라며 “기준일 이후 폐업 신고한 소상공인에게만 재도전 장려금을 준다”고 설명했다.

몇 달 만에 들어온 일감이 발목잡기도

 2차 재난지원금 누가 받나. 그래픽 박경민 기자

2차 재난지원금 누가 받나. 그래픽 박경민 기자

프리랜서 디자이너 B씨(44)도코로나19로 생계가 막막해진 사례다. 그가 꾸준히 거래했던 경기도·강원도 중소기업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달 한두건 정도는 홈페이지 등 디자인을 의뢰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국내서 확산한 이후 사실상 휴업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B씨는 지난 6월 단발성 포스터 디자인 1건(200만원)을 의뢰받았다. 가뭄에 단비처럼 일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기뻐했지만 이게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사유가 될지는 몰랐다.

정부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한다(150만원). 그런데 지난해 12월 ~ 올해 1월 소득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올해 8월 또는 9월 소득이 전년도 비슷한 기간 대비 25% 감소해야 한다는 요건을 달았다.

B씨는 “6월 포스터 디자인 대금이 8월 입금됐다”며 “프리랜서는 특성상 원래 매월 수입이 들쑥날쑥한데, 지나치게 까다로운 소득 인정 기준 때문에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신청 대상이 아니라고 하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2차 재난지원금 누가 받나. 그래픽 박경민 기자

2차 재난지원금 누가 받나. 그래픽 박경민 기자

구직자 C씨(31)도 ‘청년특별구직지원금’을 받아 추석 연휴 조카들에게 용돈을 쥐여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50만원). 그가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반도체 부품 제조 공장은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 가동률이 낮아지자 C씨와 같은 비숙련자 일감부터 줄였다. 매달 출근하라는 날짜가 감소하더니 8월부터는 사실상 무직 신세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 만 34세, 군대를 다녀왔다면 병역 기간을 고려해 최대 39세까지 청년특별구직지원금을 준다.

하지만 C씨는 지원금 대상이 아니다. ‘졸업·중퇴 후 2년’ 이내인 청년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규정 때문이다. 그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정규직보다 2년제 대학 졸업자가 먼저 직장을 잃고 있다”며 “(주로 전문대학을 졸업한) 24세 이상 구직자는 대부분 청년특별구직지원금 못 받는데, 정부가 이런 사람들을 구제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개별 부처마다 설정한 재난지원금 기준이 천차만별인 데다 세부 기준이 복잡해서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향후 또다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를 대비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불만을 수용·구제하고 보다 형평성 있는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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