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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에 숨 쉴 공간을 허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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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말은 칼이다. 공개적으로 받는 상처는 더 매섭다. 디지털 미디어라는 날개를 달면 눈 깜짝할 사이 퍼져나가며 눈덩이처럼 부풀기도 한다. 그래서 피해를 구제하고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는 명예훼손을 처벌하고 언론중재위원회를 두어 분쟁 조정과 피해 구제를 하고 있다.

징벌적 배상은 언론 자기검열 강화 #권력 비판 않는 죽은 언론 될 위험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언론은 손해액의 5배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언론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지만 이들이 파는 물건은 표준화된 공산품이 아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은 시간이 필요하고 진실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정부나 기관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전달하기는 쉽고 안전하지만 가려진 걸 들추어내는 일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손해배상 가능성을 의식해야 한다면 현장 기자들과 데스크는 자기검열의 압박에 놓이게 된다. 불량품을 제조한 기업이 응당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언론이 늘 진실을 보도해서가 아니다. 언론이 숨 쉴 틈을 보장해주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지적 재산을 보호하는 저작권의 범위가 사안에 따라 매우 섬세하게 정해져야 하는 이유와 같다. 저작권은 먼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보호하는 당연한 권리 부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저작권이 있음으로써 아직 태어나지 못한 많은 아이디어를 실질적으로 억제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손해배상제도를 통해 언론이 더 신중해진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신중한 것과 소극적인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얇다. 더욱 사회적으로 위험한 것은 이러한 법 아래에서라면 취재 대상이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인 경우 언론이 그만큼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소소한 몸사림이 켜켜이 누적돼 장기적으로 우리는 권력 집단에 대한 비판과 감시에 있어 운신의 폭이 축소된 소극적 언론을 가지게 될 위험이 있다. 기업으로서는 건재할 수 있으나 이것은 죽은 언론이나 다름없다.

읽는 사람보다 작가가 많다고 할 정도로 정보 과부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만 있다. 가짜뉴스라고 통칭하는 문제는 특정 집단의 악의라고만 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음모론적 추론이나 거짓 정보는 금방 만들 수 있고 빨리 퍼진다. 사실을 검증하고 객관적으로 알리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인지라 늘 뒷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론의 역할에 더 큰 기대를 걸기도 하고 그만큼 실망하기도 한다.

악의적 의도를 가려낸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다. 이미 2018년 정부가 가짜뉴스에 대한 엄중 처벌과 적극적 규제를 시사했을 때 학계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도 가짜에 대한 판단이 과연 가능한가, 누가 가짜에 대한 기준을 결정하는가에 대해 받아들일만한 해법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복잡다단한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깔끔하게 진실과 거짓으로 양분하기 어렵다.

바깥으로 드러난 행동도 사실인가 아닌가를 가리기 어려운데 어떤 보도가 ‘악의적’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고 검증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독심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으며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일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각이 소통의 출발점이자 기본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정부의 규율이 정권의 개입이 되고 말 위험이 있다. 언론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을지라도 권력 감시 역할이 축소된 죽은 언론을 갖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 규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가에 관해 매우 회의적이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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