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2035

“매순간 명예로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이태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추석 연휴 우연히 예전에 했던 드라마 한 장면을 다시 봤다.

군인 유시진(송중기 역)이 상관의 명령을 어기고 강모연(송혜교 역)을 비롯한 국내 의료진이 아랍연맹 의장 수술을 하도록 돕고 있었다. 시청률 40%를 넘나들던 전설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였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상관 명령에 불복종한 유시진은 감봉 3개월과 진급 심사 대상 제외라는 징계를 받았다. 자신 탓이라 생각한 강모연이 군 상관을 찾아가 따지자 유시진이 즉각 제지했다. 그는 “여자 하나 구하자고 그런 게 아니다. 크든 작든 내가 하는 모든 결정엔 전우의 명예와 영광과 사명감이 포함된다. 그 결정에 후회 없지만, 군법을 어긴 사실이 무마될 순 없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군인은 멋졌다.

드라마 속 군인은 멋졌지만 현실 속 군은 실망스러웠다. [연합뉴스]

드라마 속 군인은 멋졌지만 현실 속 군은 실망스러웠다. [연합뉴스]

드라마 속 군인과 다르게 최근 현실 속 군은 실망스럽다. 지난달 21일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우리나라 공무원 A씨(47)가 실종됐다. 우리 군이 A씨가 북한 해역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지 6시간 뒤인 22일 오후 10시 북한군은 A씨를 사살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24일 “북한군이 A씨를 6시간 동안 바다에 띄워둔 채로 심문하다 총격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뒤 바다에 방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씨가 ‘월북’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은 절대 아니라고 맞섰지만, 곧 A씨의 신상과 빚의 규모까지 드러났다.

군은 유가족과 진흙탕 진실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월북 발표 자체만으로 유가족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설령 자진 월북이라고 해도 북한군의 야만적인 행위를 정당화할 이유는 아니다. 북한군과 싸워도 모자랄 시간에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군의 모습은 멋있지도 명예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지난달 2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27) 씨의 ‘군 휴가 특혜 의혹’ 관련자에게 내려진 무혐의 처분은 군을 향한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인터넷에는 “국민은 못 지키고 장관 아들만 지키냐”는 조롱이 이어졌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드라마 속 군인이 멋졌던 가장 큰 이유는 ‘명예로워서’다. 자신의 진급보다 국민의 생명을 위하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징계도 감수하는, 국가의 영광을 우선하는 모습이 그들을 멋있게 만든다. 유시진은 기꺼이 징계를 받으며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는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군복은 그만한 각오로 입어야 한다. 그만한 각오로 군복을 입었으면 매 순간 명예로워라. 안 그럴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군은 ‘월북자 하나’ 구하지 못해 비난받는 게 아니다. 묻고 싶다. 어떤 각오로 군복을 입고 있나, 지금 우리 군은 매 순간 명예로운가. 그동안 했던 발표에 수많은 전우의 명예와 영광, 사명감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태윤 복지행정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