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고수들과 경쟁하는데 국내선 몰라줘" ‘인싸’ 되고픈 B2B 뭉쳤다

중앙일보

입력 2020.10.04 09:01

"B2B 기업을 한 마디로요? 연애보단 결혼하고 싶은 은은하고 묵직한 타입? (최시원 대표)"

B2B 기업은 '기업 간 거래(Business to Business)'란 이름 그대로, 기업이 고객이다. 일반 소비자에게 낮은 인지도는 숙명이다. 그런데 이 숙명을 거부하기로 작정한 모임이 최근 생겼다.

‘B2B 연합’을 결성한 스타트업 대표 5인 인터뷰가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스포카(도도포인트) 본사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B2B 연합’을 결성한 스타트업 대표 5인 인터뷰가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스포카(도도포인트) 본사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업력 6년 이상의 B2B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 기업 5개사가 뭉쳤다. 정식 이름은 B2B SaaS 얼라이언스. 별칭은 인싸스(InSaaS)다. '인싸가 되고 싶다'는 솔직한 소망이 담겼다. 지난달 1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포카 본사에서 이들 기업의 대표를 만났다.

김진용 뉴플로이 대표(서비스명: 직원 출퇴근·급여 관리 ‘알밤’),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비대면 전자계약 ‘모두싸인’), 최재승 스포카 대표(매장 포인트 적립 ‘도도포인트’), 김범섭 자비스앤빌런즈 대표(AI 세무·회계 ‘자비스’), 최시원 채널코퍼레이션 대표(기업용 챗봇 ‘채널톡’)다.

다섯 대표는 '인싸스' 결성 계기로 "직원들이 명절에 자랑할 수 있는 회사가 되고 싶었다"는 점을 꼽았다. "매일이 전쟁터 같은 스타트업계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았고, 글로벌 고수들과 어깨를 견줄 만한 내실 있는 기업들"임에도, "인지도가 부족해 직원들이 가족에게 선뜻 '어디 다닌다' 말 못하는 게 서글펐다"고 했다.

지난달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 김범섭 자비스앤빌런즈 대표, 최재승 스포카 대표, 최시원 채널코퍼레이션 대표, 김진용 뉴플로이 대표. 임현동 기자

지난달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 김범섭 자비스앤빌런즈 대표, 최재승 스포카 대표, 최시원 채널코퍼레이션 대표, 김진용 뉴플로이 대표. 임현동 기자

"토스·배민만 아는 더러운 세상? 스스로 알리자"

왜 결성했나.
최시원 "북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 68%는 B2B 기업이다. 그중 80%는 B2B SaaS 기업이다. 하지만 국내 유니콘 10여 개는 모두 토스, 배달의민족 같은 B2C 기업이다. B2B는 한 곳도 없다. 한국에서도 곧 B2B 유니콘이 나올 듯한데, 아직 B2B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이것부터 바꿔보잔 취지로 결성했다."

최재승 "처음엔 마케팅 노하우 공유 차원에서 (모임을) 시작했는데, 이젠 B2B 인지도를 올려보자는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B2B가 대우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영준 "한국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SW)에 대한 인식은 보일러 같은 '시설물'에 가깝다. 한 번 설치하면 10년씩 써야 하고, 수정·보완도 어려운 고관여 상품 취급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제공하는) 클라우드 구독 서비스는 다르다. 빠른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일단 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구독 해지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 글로벌 트렌드가 SaaS로 재편 중인 이유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최시원 채널코퍼레이션 대표, 최재승 스포카 대표,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 임현동 기자

지난달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최시원 채널코퍼레이션 대표, 최재승 스포카 대표, 이영준 모두싸인 대표. 임현동 기자

'테헤란로 고인물' 인싸 오형제

다섯 명이 원래 친했나.
최시원 "친분이 있는 경우도 몇몇 있었지만…. 사실 테헤란로(국내 창업의 중심지)의 고인물들은 서로서로 다 안다."

최재승 "특히 B2B 기업들끼린 원격 전우애 같은 게 있다."

김범섭 "서로 존재는 다 알고 있었는데, 먹고 살기 급급했다(웃음). 1~2년 사이 5개사 모두 외적 성장을 이루면서, 질적 성장을 고민하던 차에 김재홍 채널톡 부대표가 페이스북에 B2B 마케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을 썼다. 이때 B2B끼리 모여 스터디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이런 얼라이언스까지 오게 됐다."

김재홍 채널코퍼레이션 공동창업자(부대표)가 지난 7월 페이스북에 올린 'B2B 마케팅의 어려움과 극복기'에 관한 글. 이 글을 도화선으로 (스타트업다운 속도로) 한 달 만에 '인싸스'가 결성됐다. 김 부대표는 인싸스를 '5인조 아이돌(싸스돌)'이라 칭하고(놀리고) 있다. [사진 김재홍 부대표 페이스북]

김재홍 채널코퍼레이션 공동창업자(부대표)가 지난 7월 페이스북에 올린 'B2B 마케팅의 어려움과 극복기'에 관한 글. 이 글을 도화선으로 (스타트업다운 속도로) 한 달 만에 '인싸스'가 결성됐다. 김 부대표는 인싸스를 '5인조 아이돌(싸스돌)'이라 칭하고(놀리고) 있다. [사진 김재홍 부대표 페이스북]

B2B 기업의 장점은.
최시원 "일단 매출이 나면 꺾일 일이 거의 없다. (사세가) 아주 천천히 오르지만, 오르고 나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으로 치면 연애보단 결혼하기 좋은 그런 묵직하고 끈기 있는 타입이다."

최재승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점. 허풍도 잘 못 떤다. 고객사에 이것저것 할 수 있다고 던졌다가 하나라도 못 하면 회사가 망하니까. 진화론적으로 B2B 기업은 거짓말 못 하는 편이다."

김범섭 "장점이자 단점인데, 고객사 내부 관계자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계약이 성사된다는 점이다. 구매 결정까지 길고 애타는 시간을 버텨야 하지만, 한번 결정되면 락인(계약 유지) 효과가 강력하다. 코로나19도 기회였다. 고객사가 비대면 B2B 서비스 도입을 반대할 이유가 사라졌다. 5개사 모두 코로나19를 계기로 매출이 올랐다."

최시원 "김 대표 말대로 B2B의 어려움이기도 한데, 충동구매가 없다. 정신 말짱할 때 구매하는 서비스란 거다. 우리도 페북 광고 땡겨서 매출 올려보고 싶은데(웃음) 불가능하다. 그만큼 고객사에 인정받으면서 묵묵히 실력을 쌓았단 뜻이지만."

공동채용·콜라보 상품 계획도

'인싸스'는 결성 후 한 달간 마케팅 노하우, 조직 구성, 회고 방법 등의 성공·실패사례를 공유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가치 있었던 경험은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제 5개사 공동 인재 채용, B2B SaaS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웨비나, 중·소상공인용 서비스 협업(콜라보) 등 다양한 활동을 계획 중이다.

공동 채용은 어떤 방식인가.
최재승 "지원서 하나에 1~5순위 지망을 적고 5개사에 동시 지원하는 '통합 공채'랄까. 여러 아이디어를 검토 중이다."

‘인싸스(InSaaS)’ 5개사 소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싸스(InSaaS)’ 5개사 소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글로벌 수준에도 제값 못 받는다"

이들 대표에게 한국 SW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물었다. "기술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SW 산업의 경쟁력이 약하다고 하는데.
김범섭 "한국에서 서비스하기란 정말 어렵다. 소비자 기대치가 굉장히 높다. 가령 국세청 홈택스가 미국 세무·회계 1위 기업 '인튜잇'보다 시스템 면에서 훨씬 수준이 높다. 국내 기업이 시장가치를 인정받으려면 홈택스보다 월등히 잘해야 한다."

김진용 "해외 세미나에 가면 '한국 기업은 기술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데, 시장이 작아 크질 못 한다. 해외로 나오라'는 이야길 많이 듣는다. 실제로 국내 SaaS 기업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해외 기업들은 정말 돈을 많이 번다. 한국은 좋은 소프트웨어 서비스에 값을 쳐줘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해서,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웹툰엔 한 달에 몇만 원씩 쉽게 쓰지만 기업에서 생산성 제고를 위해 10명이 쓰는 서비스에 몇 만 원 내는 건 주저한다. 최근엔 코로나19로 비대면 바람이 불면서 분위기가 좀 바뀌긴 했다."

지난달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김범섭 자비스앤빌런즈 대표와 김진용 뉴플로이 대표. 임현동 기자

지난달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김범섭 자비스앤빌런즈 대표와 김진용 뉴플로이 대표. 임현동 기자

김범섭 "한국은 저임금 인력도 해외에 비하면 역량이 뛰어날만큼, 우수한 노동시장이 있어서 역설적으로 자동화 클라우드 서비스 도입이 늦어졌다. 사람 쓰는 게 기계보다 생산성이 좋았으니…. 피 튀기는 내수경쟁에서 소비자 마음에 들려면 가격을 낮출 수 밖에 없었다. 비슷한 외산 서비스 가격의 10~20% 수준이다. 하는 일에 비해 제값 못 받는 일이 잦다."

최재승 "반대로 생각하면, B2B 기업이 해외 진출에 유리하단 뜻이다. 가격 경쟁력도 있고 국가 간 차이도 크지 않다. B2C 기업은 해외 나가려면 문화 차이를 반영해 현지화해야 하는데, 기업은 어느 나라든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른 스타트업이 '인싸스'에 가입하고 싶어한다면.
김진용 "그런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좀 조심스럽다. 일단 5개사끼리 좋은 사례를 만드는 게 1순위다."

김범섭 "타사를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이 많으면 추진력이 줄어드니 린(lean)하게 가치부터 창출하고 새로 모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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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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