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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남파고택'의 200년 손맛을 서울에서 맛보다

중앙일보

입력

한식당 '남파고택'의 모든 음식은 전남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종부 강정숙씨(오른쪽)와 차종부 김선경씨(왼쪽)의 비법으로 만든다.

한식당 '남파고택'의 모든 음식은 전남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종부 강정숙씨(오른쪽)와 차종부 김선경씨(왼쪽)의 비법으로 만든다.

올해 추석은 코로나 19 때문에 고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이들에게 롯데백화점 강남점의 한식당 ‘남파고택’을 소개한다. 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남 나주 '남파고택' 강정숙(70) 종부의 비법이 담긴 반가의 내림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전국 12대 종가 중 하나인 남파고택은 1824년 남파 박재규 선생이 건립한 후 나주 밀양 박씨 일가가 대를 이어 거주한 곳으로 전남지역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크고 오래된 양반가옥이다. 1987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53호로 지정, 2009년에는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제 263호로 승격됐다. 남파고택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박경중 종손의 아내 강정숙 종부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씨간장과 내림음식, 그리고 고택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온 공로로 2008년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롯데백화점과는 2017년 ‘씨간장과 된장 리미티드 세트’를 출시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지난 7월 31일 한식당 ‘남파고택’을 함께 오픈했다. 백화점이 운영을 맡고, 음식 레시피는 강정숙 종부와 김선경(42) 차종부가 맡는 방법이다. 덕분에 200년 동안 지켜온 씨간장과 된장을 베이스로 한 종가의 대표적인 밑반찬 장조림, 반동치미, 육전, 어전 등으로 차려낸 한상 차림을 맛볼 수 있다.

남파고택의 내림김치로 유명한 반동치미. 통배추 김치에 새우젓 국물을 부어 만든다.

남파고택의 내림김치로 유명한 반동치미. 통배추 김치에 새우젓 국물을 부어 만든다.

특히 유명한 ‘반동치미’는 일반적인 통배추 김치에 새우젓 국물을 부어 동치미와 유사한 형태로 만든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내림김치다.
“겨울의 절반인 1월이면 꼭 담가 먹는데 만들 때도 보통은 소금을 넣어서 배추 숨을 다 죽이지만 반동치미는 반 정도 배추 숨을 살리고 간도 반만 하죠. 소는 10가지 넘게 들어가요. 무·당근·양파·배·사과·밤·굴·실고추·미나리·쪽파 등등. 재료들을 채 썰어서 배추에 켜켜이 집어넣고 살짝 데친 미나리로 묶어서 3일간 항아리에서 보관했다가 새우젓, 소금 간을 해서 물을 부어놓고 1주일 정도 숙성시키죠.”
한식당 ‘남파고택’에서 만난 차종부 김선경씨의 말이다. 남파고택의 장조림도 여느 집과는 재료나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남파고택의 내림음식 중 하나인 장조림. 365일 밥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밑반찬이다.

남파고택의 내림음식 중 하나인 장조림. 365일 밥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밑반찬이다.

“고기도 홍두깨살을 쓰지 않고 설기살을 쓰는데 손으로 찢지 않아요. 설기살을 썰어서 뜨거운 물에 튀겨내듯 한 다음 새 물을 받아 씨간장을 넣고 만들죠. 365일 밥상에 떨어지지 않는 밑반찬이에요. 전라도 지역이지만 간이 세지 않아서 육전도 어전도 이 장조림 장에 찍어 먹죠. 육전도 우리는 좀 다르게 만들죠. 계란 물에 다진 마늘과 생강, 참기름, 소금을 넣거든요.”
김선경씨에 따르면 이 모든 게 씨간장의 힘이라고 한다.
“200년 된 씨간장의 항아리를 열어보면 소금결정체가 두껍게 쌓여있어요. 그걸 손으로 살짝 긁어 먹어보면 짜지 않고 오히려 단맛이 느껴지죠. 세월의 힘이 만들어낸 깊고 그윽한 맛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죠.”

한식당 '남파고택'의 외상(1인상). 이곳의 모든 메뉴는 양반가의 전통문화였던 독상차림으로 낸다.

한식당 '남파고택'의 외상(1인상). 이곳의 모든 메뉴는 양반가의 전통문화였던 독상차림으로 낸다.

김씨는 한식당 오픈 전날 밤까지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종가집 내림음식으로 식당을 여는 건 남파고택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버님을 비롯해 집안 어르신들이 가문의 문화를 상업화하는 데 우려가 커서 당부 말씀을 많이 하셨죠. 저도 오픈 전날 밤에는 도망가고 싶었어요. 괜히 시작한 게 아닐까 싶어서요.”
그럼에도 남파고택 오픈을 결심한 건 좀 더 많은 분들께 건강한 전통 밥상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한국인의 밥상’을 통해 배우 최불암씨가 두 번이나 소개한 반동치미를 ‘먹어보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정말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음식은 이동 중에 상할 수가 있어서 모두 거절했다. 그러다 종부인 강정숙씨가 종가 음식을 알리는 연구회와 쿠킹 클래스를 열고, 국가지원 사업도 진행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어 롯데백화점 프로젝트팀과 함께 한식당 오픈을 결심했다고 한다.
식당 오픈을 준비하는 8개월 동안 종부와 차종부는 함께 일할 직원들에게 레시피를 전수하기 위해 서울과 나주를 오갔다. 단순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조리법 때문이다.
“무국 하나를 끓이더라도 한 번 끓인 무와 고기를 꺼내 잘라 양념을 하고 또 끓이죠.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어머님은 ‘음식 맛은 가족을 위한 정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먹었을 때 그 맛이 배가 되도록 만들어라’ 늘 말씀하시죠.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간단 레시피로는 만들 수 없는 맛이에요. 한 번은 쌀뜨물을 버렸다가 조리사님들이 어머님께 혼쭐이 났어요. 지금도 주방직원들은 너무 힘들 거예요. 하지만 정말 귀하게 먹을 음식은 정성이 많이 필요해요.”

남파고택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박경중 종손의 며느리 김선경 차종부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롯데백화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남파고택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박경중 종손의 며느리 김선경 차종부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롯데백화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성악을 전공하고 이탈리아에서 유학 중 다리를 다쳐 잠깐 귀국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는 김선경씨는 “속아서 결혼했다”며 웃었다.
“연애할 때는 종갓집이라는 얘기도 안 하고, 자기가 둘째라며 시집살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쌍둥이의 둘째였어요.(웃음)”
3년 전부터 조금 줄이기는 했지만 추석·설·대보름을 합쳐 한 해에 10여 차례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는 김선경씨. 처음에는 집안 내림음식을 배우고 지켜야하는 차종부로서의 책임이 마냥 버거웠지만 이젠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음식이라는 생각에 모든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제사·차례상을 현대적으로 간소화하고 싶은 주부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익숙한 손맛을 즐기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하나라도 더 준비해서 옛맛 그대로 전하고 싶어지죠. 남파고택을 찾는 손님들도 할머니·어머니가 해주신 한식에 익숙한 세대라면 어떤 게 조미료가 들어간 맛인지, 진짜 손맛인지 우리 음식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롯데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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