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거론되는 야권의 대선 잠룡 가운데 유일하게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다.”
국민의힘 소속인 원희룡(56) 제주지사에 대한 한 야당 중진 의원의 평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보수 정당 소속 대권 주자들이 이런저런 상처를 입었지만, 원 지사는 중앙정치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어 전쟁의 포화에서 비켜서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원 지사가 요즘은 제주보다 서울에서 더 자주 눈에 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리적으론 제주에 있지만, 쏟아내는 메시지가 중앙 정치를 겨누고 있어서다.
'5전 5승' 무패 정치인
원 지사는 지난 5월 복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다가올 2022년 대선이 국가 운명의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저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며 차기 대권 도전을 시사했다. 두 달 뒤 내놓은 메시지는 한층 더 직접적이다.
“저는 선거에 나가서 민주당 후보에게 진 적이 없습니다.”(7월 1일 머니투데이 인터뷰)
그의 말대로 그는 ‘무패(無敗)’의 정치인이다. 1999년 이회창 총재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세 번의 총선과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모두 민주당 계열 후보를 꺾었다. 이런 전적에 비해 그에 대한 당의 평가는 인색하다. 수도권 지역의 한 의원은 “정치 입문 이후 철저하게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 지사는 당내 대표적 개혁 소장파로 남경필ㆍ정병국 전 의원과 함께 이른바 ‘남원정’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8년 무소속으로 제주지사 재선에 성공한 그는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2월 보수 진영 통합 과정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합류해 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고향에서 지방행정 경험을 쌓겠다며 2014년 제주로 떠난 그가 중앙정치에 복귀하겠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었다.
이후 원 지사는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을 북한군이 사살 및 시신 훼손한 사건과 관련해 그는 9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며 “국민 앞에 현 상황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 애도하고 위로하십시오”라고 썼다.
낮은 지지율은 숙제
최근엔 차기 대권 주자 1ㆍ2위를 다투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를 상대로 연달아 각을 세우기도 했다. 원 지사는 9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명 지사님 이번에도 너무 심하셨다”며 “국책연구기관의 리포트가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겠지만, 조사와 문책이라니요”라고 썼다. 이 지사가 지역 화폐 정책의 역효과를 지적한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를 “얼빠졌다”고 비난하며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또 9월 11일 페이스북엔 이낙연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올리며 독감 예방 접종의 전 국민 확대를 요청했다.
원 지사는 추석을 하루 앞둔 30일 공개한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선 “코로나 위기와 공정과 정의의 상실로 대한민국이 표류하고 있다”며 “포기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 수상을 언급하며 “90년 전 처칠은 히틀러의 유럽 점령으로 위기에 빠진 조국 영국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말자)을 외쳤다”며 “이 구호가 지금 대한민국에 딱 와 닿는다. 결코 굴복해선 안 된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행보에도 제자리를 맴도는 지지율은 원 지사의 가장 큰 숙제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가장 최근 실시한(9월 29일 공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원 지사는 3.0%의 지지를 얻어 야권에선 윤석열(10.5%), 홍준표(7.2%), 안철수(6.5%), 오세훈(4.0%), 황교안(3.6%)에 이은 여섯 번째였다. (※조사는 9월 21일부터 25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553명 대상으로 진행.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9%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와 관련해 원 지사의 한 측근은 “아직은 본격적으로 중앙정치 행보를 보이진 않아서 지지율을 올릴 기회가 적었다. 중앙무대 진출은 신중하게 타이밍을 엿보는 중으로, 그 이후엔 여론의 흐름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