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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며느리 집있다고 기초수급 탈락? 부양의무 없앤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비수급 빈곤층 노인. 중앙포토

비수급 빈곤층 노인. 중앙포토

지난해 2월 중앙일보 취재진을 만난 김정자(77·여)씨는 당시 수입이 기초연금 25만원이 전부였다. 최저생계비의 절반이 채 안 됐다. 돈을 아끼려고 컴컴한데도 불을 켜지 않았다. 방바닥이 차가웠다. 웬만한 추위가 아니면 보일러·전기장판에 손대지 않는다. 패딩을 입고 양말을 신고 살았다. TV는 하루 1시간만 켠다. 세탁기는 안 쓴다. 휴대전화가 없다. 밥과 김치 반찬이 전부였다.

언택트시대 엷어지는 효 ⑥ 부양의무제 폐지의 명암

김씨는 극빈층 중의 극빈층이었다. 그런데도 기초생활 수급자 보호를 받지 못했다. 소위 '비수급 빈곤층'이다. 기초수급자와 다름없이 가난하지만,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극빈층이다. 김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소득과 재산이 거의 없는 데다 아들·딸의 형편이 어려워 30년 가까이 기초수급자로 지냈다. 그런데 아들과 별거 중인 며느리가 3년 전 친정에서 자그마한 집을 물려받으면서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소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린 것이다. 김씨는 “며느리는 재작년부터 아들과 별거 중”이라며 “연락도 없는 며느리의 재산 때문에 탈락한 게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2000년 도입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그전의 생활보호제도와 완전히 다른 제도이다. 근로능력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다만 자녀나 손자의 소득과 재산을 따졌다. 부양의무자 제도이다. 2촌(손자)에서 부모-자식(1촌)으로 완화됐지만 여전히 자녀는 따진다. 김정자씨가 밥과 김치만으로 사는 이유다.

2021년이면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제도가 완화되고 2022년에는 일부 고소득자를 제외하고 폐지된다. 김씨가 기초수급자로 돌아갈 수 있다. 22년만의 사실상의 폐지다.

서울 종로구 비수급 빈곤층 가정. 중앙포토

서울 종로구 비수급 빈곤층 가정. 중앙포토

기초생보제에 부양의무자 제도를 넣은 이유는 두 가지다.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는 한편 자녀의 부양을 강제했다. 부모는 자녀가 부양한다는 전통적인 효 사상이 깔려 있다. 부양능력이 있는데도 자식이 부양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먼저 생계비를 지급하고 나중에 자식에게 구상권을 행사했다. 지방생활보장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그렇게 했다.

이후 오히려 부모-자식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부양의무자 제도가 김씨 같은 비수급 빈곤층을 양산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또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집값이 오르고 사교육비에 시달리면서 자식 가구도 애 키우고 교육시키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부모-자식을 빈곤하게 만든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래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지속적으로 완화해 왔다.

2015년 교육급여, 2018년 주거급여에 부양의무 제도를 없앴다. 생계급여는 2021년 노인·한부모 가구를 폐지하고 2022년 그 외 가구를 폐지한다. 연소득 1억원 초과 또는 부동산 9억원 초과 자녀만 부양의무를 지운다. 의료급여는 계속 유지한다.

정부가 그동안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에 선뜻 나서지 않은 이유는 첫째 이유는 돈 때문이다. 두번째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면 효 사상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효 사상이 엷어져왔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노부모 부양 책임이 ‘가족·정부·사회에 있다’고 답한 사람이 2002년 18.2%에서 2018년 48.4%로 크게 늘었다. 반면 가족에 있다는 응답은 70.7%에서 26.7%로 줄었다. 전체 노인 중 독거노인 비율이 2000년 16%에서 2019년 19.5%로 올라간 것도 효 약화 풍조를 보여준다.

부양의무제 폐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매우 복합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복지전문가는 "효 약화 우려, 사회보험 사각지대, 예상 부작용 등을 고려해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며 "정부가 생계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했다고 선전하는데, 그렇지 않다. 고소득·고재산가는 유지하는데 왜 폐지라고 선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부양의무에 대해 국가의 역할을 늘리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부양의무제 폐지로 인해 효개념이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동방예의지국으로서 효 개념은 국민의 영역에 맡기고 국가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원장은 "그동안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선별적 복지를 하며 국가가 해야 할일을 부모 자식 간 문제로 방치한 측면이 있다. 부모 자식 뿐 아니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문제가 공통적이다. 그동안 이 의무를 가족에게 뒀다. 이런 방향에서 벗어나 국가의 역할을 강조해야 할 때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미곤 세종사회서비스원장은 "아동장려세제처럼 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구에 노인장려세제를 도입하고, 연말정산에서 근로소득 공제를 할 때 노인을 모신 자녀의 공제 폭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효가 약화하고 있는데,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자녀의 부모 봉양을 유도해야 한다. 제도와 미풍양속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태윤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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