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라면형제 화재 계기 됐나…구청들 ‘위기아동 점검’

중앙일보

입력 2020.10.03 05:00

두 아이의 아버지 A씨는 지난해 10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서울 서대문구청을 찾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월세마저 밀리자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A씨는 구청에서 '긴급생계비 지원'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A씨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었다.

코로나19 장기화하자 아동학대, 가정폭력 늘어나

최근 잇따르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신고를 독려하는 시민 참여형 이색 홍보물이 지난해 10일 부산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에 설치돼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부산남부경찰서가 제작한 이 홍보물은 2번 출구 복도 벽면에 부착되어 있으며, 천막을 걷어내면 활짝 웃는 아이와 함께 ’네 탓이야“라는 문구가 ’네 탓이 아니야“로 변하게 된다. 송봉근 기자

최근 잇따르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신고를 독려하는 시민 참여형 이색 홍보물이 지난해 10일 부산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에 설치돼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부산남부경찰서가 제작한 이 홍보물은 2번 출구 복도 벽면에 부착되어 있으며, 천막을 걷어내면 활짝 웃는 아이와 함께 ’네 탓이야“라는 문구가 ’네 탓이 아니야“로 변하게 된다. 송봉근 기자

A씨의 두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껏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한 고백이 발단이 됐다. 출생신고가 안 돼 있어 병원을 가도 치료를 받을 길이 없게 되자 두 아이가 아플 때면 A씨는 병원 대신 약국을 찾았다. A씨는 아이들의 혈액형도 모른다고 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야 했지만, 아이들은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돌봄 교육도 못 받았다. 두 아이가 태어나 유치원을 가야 할 나이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 홀로 양육을 책임지다 보니 A씨는 정식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일자리가 없으니 생계가 막막해지면서 악순환이 계속됐다.

서대문구청은 구청 변호사를 동원해 아이들의 출생신고부터 하기로 했다. 생모의 동의를 받아 유전자 검사를 했고 법원에 신고했다. 아이들의 딱한 사정을 고려한 법원이 빠르게 출생신고를 인정해주면서 아이들에게 기회가 생겨났다. 두 아이는 올해 유치원에 등록했고, A씨는 구청의 도움으로 임대주택으로 이사도 할 수 있었다.

A씨는 출생신고를 안 한 '방임' 책임을 물어 경찰 조사를 받고 부모교육을 받기로 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A씨가 아이들에 대한 양육 의지가 강하고, 앞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어 부모 상담을 받기로 했다”며 “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이 많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계속 연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청 아동문제 담당자들은 병원 진료기록이 전혀 없는 등 방임이 의심되는 경우 현장방문을 한다고 말한다. 이때 부모가 지속적으로 연락을 받지 않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 현장방문을 회피하는 경우가 보이면 이웃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례를 확인한 뒤 학대의심 사례로 보고 경찰을 대동하고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중앙포토]

구청 아동문제 담당자들은 병원 진료기록이 전혀 없는 등 방임이 의심되는 경우 현장방문을 한다고 말한다. 이때 부모가 지속적으로 연락을 받지 않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 현장방문을 회피하는 경우가 보이면 이웃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례를 확인한 뒤 학대의심 사례로 보고 경찰을 대동하고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중앙포토]

병원기록 없고 양육수당 안 타고…위기아동 징후들

위기가정 아이들을 위해 구청들이 앞다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화재사고로 크게 다친 '인천 라면형제' 사건 등 위기가정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면서다. '고위험 아동' 집중점검에 나선 강동구는 출생신고를 했지만 병원 방문 기록이 전혀 없거나 양육수당을 받지 않는 가정을 직접 방문하고 있다.

강동구 관계자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에게 연락을 취해 가정방문을 하고 있는데, 부모가 지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거나 현장을 찾아가도 인기척이 없는 경우에는 인근 주민 의견을 들어보고 경찰과 대동해 현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20대 부부 가정을 경찰과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의료기관 진료 기록이 전혀 없는 데다 부모 모두 전화를 받지 않고 문을 두드려봐도 인기척이 없었다고 한다. 이웃들마저 “한 달 전부터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자 경찰과 함께 해당 가정을 찾았다.

강동구 관계자는 “아이를 학대할까 우려해 경찰과 함께 방문했으나 아이 학대보다 집에 쓰레기를 많이 쌓아두는 등 아이를 키우는 데 적합한 환경이 아닌 상태여서 청소를 하는 등 환경 개선을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부모가 아동 양육수당을 받아야 하는 것도 모르고 아이 양육에 서툰 상황으로 주민센터와 연계해 지속해서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아이들의 돌봄 공백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특히 취약계층 가정의 자녀들은 더 힘든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며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세밀한 모니터링과 신속한 조치를 통해 아동 안전을 보장하고 아동학대 예방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는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신고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서울 노원구는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신고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위기아동' 돕자…팔 걷어붙인 구청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구청들은 전담조직도 만들기로 했다. 강북구는 아동학대 전담조직 신설을 추진 중이다. 이달부터 만3세 이상 아동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기로 했다. 또 학대현장 조사업무를 나갈 때는 전담 공무원과 경찰이 동행하기로 했다. 동대문구 역시 전담 요원을 배치하고 아동학대 현장조사 업무를 시작하기로 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구에서 직접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시작함에 따라 학대받은 아동을 신속하게 발견하고, 안전한 보호조치와 치료를 통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구립 학대피해 아동 쉼터를 운영하는 노원구는 24시간 아동학대 신고 접수를 받고 있다. 4명의 공무원이 직접 아동학대 조사를 담당하고, 아이들의 심리치료도 진행하고 있다. 노원구는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아동학대 및 가정폭력 신고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140여 건을 접수받아 조사를 했으며 기존 아동학대로 분류된 130여 건의 사례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장기적인 아동 대책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학대 아동에 대한 이웃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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