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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50년]집단 성폭행 터지자, 내놓은 대안이 '집단 성매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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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공작원 3명의 부대 이탈, 집단 성폭행, 민간인 대상 인질극, 극단적 선택….

1970년 11월 ‘실미도 부대’는 안에서부터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대형 사건이 잇따라 터졌고 김모 파견대장은 문책성으로 경질됐다. 한모 신임 파견대장이 부임했다. 부대장이 관리를 제대로 못 해 공작원들의 사고가 잇따른다는 게 관리자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핵심을 비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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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 행위 일색의 훈련, 무엇보다 당초 계획(6개월가량)보다 무한정 늘어난 훈련 기간이 문제였다. 실미도 부대의 훈련은 계획보다 무려 2년가량 늘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목표도 불분명해졌다. 북한 침투 공작 임무를 수행하든지, 아니면 부대를 해체하는 게 유일한 탈출로였다.

한 신임 파견대장은 동요하는 부대를 추스르려 했다. 공작원 20여 명을 불러 면담한다. 소주도 곁들였다.

고생이 많다. 훈련받는 데 불만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아 봐라. 
“들어올 때 6개월만 훈련하면 된다더니, 2년이 더 흘렀습니다."
“훈련이 너무 힘듭니다. 빨리 김일성 모가지를 따러 가게 해주십시오.”
“가족 면회를 하거나 아니면 편지라도 주고받고 싶습니다.”
“기간병들의 구타가 심합니다.”
“훈련만 하기가 너무 따분합니다. 오락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월급은 왜 안 나오는 겁니까.(첫 3개월간만 3200원씩 지급 후 미지급·당시 3200원은 라면 160봉지를 살 수 있는 금액)”

“공작원들은 가족과 연락이 안 되고, 편지도 못 보내고,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반발심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유를 억압하면 반발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이모 군무원·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면담)

8월 25일 실미도 해변가. 폐선이 눈에 띈다. 우상조 기자

8월 25일 실미도 해변가. 폐선이 눈에 띈다. 우상조 기자

청년 공작원들 욕구 불만도 쌓여 

청년들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것도 문제였다. 실미도 부대에서는 욕구를 이기지 못한 일부 공작원간 동성애가 적발되기도 했다.

“생존을 위협받는 준전시 상황 혹은 감옥같이 격리된 곳에서 생활하면 높은 스트레스 때문에 성욕이 매우 커질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하는 실미도 부대의 공작원들은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한 성욕이 들었을 거예요.”(성의학 전문의 강동우 박사·2020년 9월 중앙일보 인터뷰)

부대가 내놓은 대안은 ‘집단 성매매’

한 파견대장은 공작원들과의 면담을 마친 뒤 ‘이러다가 폭동이 일어나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동원한 게 집단 성매매다.

“1971년 3월부터 5월까지 매 월말 2일간 3명씩 부대 배를 타고 인천으로 나갔습니다. 여관에서 성매매 여성을 한 명씩 배당받고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었습니다.”(임성빈 공작원·1971년 재판 기록)

“인천에서 성매매 여성 10여 명을 실미도로 데려와 텐트를 치고 공작원들과 성관계를 갖게 한 사실이 있습니다.”(김모 기간병·2006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 면담)

“공작원들이 한 번 단체로 외출한 일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인천 사창가로 가 성적 욕구를 해소했습니다.”(김중권 공군 검찰과장·2004년 월간중앙 인터뷰)

임시방편이 오래 갈 리 없었다. 극비리에 훈련하고 작전을 수행해야 할 실미도 부대의 특성상 보안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기약 없이 늘어지는 실미도 부대의 지옥 훈련을 끝내는 근본적인 처방이 절실했다. 그러나 정부는 실미도 부대를 계속 방치한다. 급기야 일반인의 상식을 깨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 회에서 계속.

※본 기사는 국방부의 실미도 사건 진상조사(2006년)와 실미도 부대원의 재판 기록, 실미도 부대 관련 정부 자료, 유가족·부대 관련자의 새로운 증언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김민중·심석용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지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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