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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디파이 광풍, 핵심은 이자농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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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김문수’s Token Biz]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라고 불리는 탈중앙금융 서비스들에 무려 10조원이 넘는 금융자산이 몰리면서 디파이 광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9월 29일 디파이펄스 기준)

#잘못된 번역, 지나친 기대

디파이에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핵심 단어는 이자농사(Yield Farming)입니다. 마치 농사를 짓듯이 이자 수입을 키울 수 있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그러나 이자농사라는 단어는 잘못된 번역입니다. 이자는 영어 단어로 ‘interest’이고, 이자 농사라고 표현하려면 ‘interest farming’라고 해야 합니다. 

따라서 ‘yield farming’은 ‘이자 농사’가 아니라 ‘수익률 농사’라고 표현해야 맞습니다. 그렇다면, 디파이는 높은 수익률(yield)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금융 산업의 카테고리는 크게 은행ㆍ증권ㆍ보험 등으로 이뤄집니다. 수익률 농사라는 단어는 디파이를 외치는 서비스의 본질이 은행 형태인지, 증권사 형태인지, 보험사 형태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은행의 수익은 기본적으로 예금액과 대출액의 차이에서 창출됩니다. 이것을 보통 ‘예대 마진’이라고 부릅니다. 예금을 받을 때에는 낮은 이자율을 약속하고, 대출을 해 줄 때에는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기 때문에 예금과 대출의 이자율 차이를 통해 기본적인 영업 수익을 창출합니다. 

그런데 고객에게 높은 예금 이자를 약속하며 예금을 유치하고 있는 은행은 경영 상태가 좋다고 봐야 할까요? 예금은 은행 입장에서 부채입니다. 예금주들에게 갚아야 할 돈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높은 이자를 물고서라도 돈을 빌리겠다는 것은 재무상황이 나쁘거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저축은행이 시중은행보다 높은 예금 이자를 제공하는데 이것은 저축은행이 시중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저축은행에 소액을 맡겨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거액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은행의 안정성은 대표적으로 지급준비율의 지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 예금액 대비 지급준비금의 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고 합니다. 은행은 예금액 전체를 대출로 내보낼 수는 없고, 돈을 빌려 준 예금주들의 인출과 결제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비율의 금액을 보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은행이 수익을 창출하려면 대중이 예금 금리보다 높은 금리로 대출을 사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은행 형태의 디파이는 광풍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터무니 없는 높은 이율을 제공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디파이에 맡긴 예금이 높은 이자를 계속 제공하려면, 디파이는 그것보다 더 높은 금리의 대출 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비싼 대출 상품은 자금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거버넌스 토큰의 한계

은행 형태의 디파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거버넌스 토큰(governance token)이라는 것을 발행해 다시 한 번 투자자들을 유혹합니다. 거버넌스 토큰이 정확히 디파이 은행의 주식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마치 새마을금고의 출자금 통장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은행 형태의 디파이들은 사용자들에게 예금을 하거나 대출을 사용하는 금액에 비례해 거버넌스 토큰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거버넌스 토큰을 거래소에 빠르게 상장시킵니다. 만일 거버넌스 토큰의 가격이 초기에 높게 형성되면, 예금주들은 예금 이자보다 오히려 거버넌스 토큰을 획득하기 위해 더 많은 예금을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생활에서 새마을금고 출자지분을 더 얻기 위해 새마을금고에 예금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거버넌스 토큰의 가치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거버넌스 토큰의 가치가 지속되려면 은행 형태의 디파이에서 사람들이 대출을 지속적으로 받아가야 합니다. 만일 디파이의 예대마진 상당량이 거버넌스 토큰에 자동으로 분배된다면 거버넌스 토큰의 내재 가치를 기대해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려면 거버넌스 토큰을 더 많이 얻기 위한 투기적 대출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출을 원하는 자연적 수요 고객을 충분히 보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소수의 한정된 참여자들끼리 서로 예금과 대출을 일으키는 형태만으로는 거버넌스 토큰 전체에 유입되는 예대마진 전체의 가치에 한계가 오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은행 형태의 디파이인 컴파운드(Compound) 플랫폼의 대출자 수가 아직 5000명대 수준입니다.

최근 이더리움 이체 수수료로 지출되는 가스비가 수십 배에서 수백 배로 급증하고 있는 것도 디파이 서비스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입니다. 일반적인 이더리움 소액 보유자들에게 굳이 비싼 수수료를 내고 이더리움을 맡기고 자연적으로 대출을 일으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더리움 이체 수수료의 가스비가 급증한 주된 이유가 대부분의 디파이 서비스들이 이더리움 네트워크 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 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상 디파이의 거버넌스 토큰을 획득한다고 하더라도 은행 형태의 디파이 서비스에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디파이 실험의 가치-금융을 공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디파이의 실험이 쏟아지는 것에는 긍정적인 시사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블랙박스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한 전통 금융기관의 내부 구조에 비해 디파이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내부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대중은 은행ㆍ증권ㆍ보험사 등의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품을 만들고 얼마의 이윤을 창출하며 판매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은 내부 구조와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중앙화돼 있어 씨파이(CeFi, Centralized Finance)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반면 디파이는 금융 상품의 작동 메커니즘이 스마트컨트랙트를 기반으로 작동하는데 이 스마트컨트랙트의 소스 코드는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돼 있습니다. 

디파이의 가치는 바로, 금융을 공개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복잡한 규칙과 규제로 일반인이 알기 어려웠던 금융의 메커니즘을 소프트웨어로 공개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새로운 은행의 아이디어, 새로운 증권사의 아이디어, 새로운 보험사의 아이디어를 코드로 제시하고 대중에게 바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금융 기관들은 복잡한 내부 구조를 공개하지 않고도 사업을 운영해 올 수 있었고, 그러한 배경에는 금융기관은 안전하다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즉 금융기관은 믿을 만하다는 대중의 신뢰가 금융기관 영업의 중요한 자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은행과 금융기관도 망하는 사례를 마주쳐 왔습니다. 즉 금융기관의 안정성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대중이 점점 학습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올해 4월에 한국은행은 증권사와 보험사에 10조원 규모의 특별대출을 제공했습니다. 한국은행 총재도 “중앙은행으로서의 통상적인 기능을 넘어서는 이례적인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참고로 한국은행이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에 대출을 제공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두 번째이며 당시 대출금액은 총 3조 원 대였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56351)

지금 당장 전통적인 금융기관(CeFi)들이 디파이 서비스들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디파이 서비스들이 쏟아지고 디파이에 몰리는 디지털 세대의 자금이 증가할수록,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은 큰 고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디지털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금융상품의 설계와 운영에 관한 내부 메커니즘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죄수의 딜레마처럼 전통적인 금융기관 중 일부가 디지털 세대의 수요를 겨냥해 디파이 서비스를 출시해 성공하는 순간, 나머지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에게도 비슷한 형태의 출시가 이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이 아직 규모가 작은 디파이와의 경쟁은 무시할 수 있어도, 동종업계의 대형 씨파이들간의 경쟁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문수 aSSIST 경영대학원 부총장 및 AIㆍ크립토MBA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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