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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의 명품 시계, 수집용 퍼터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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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터 갤러리에 전시된 명품 퍼터들. 200만원을 넘는 제품도 있다. 성호준 기자

퍼터 갤러리에 전시된 명품 퍼터들. 200만원을 넘는 제품도 있다. 성호준 기자

지난 28일 퍼터 하나가 15만4928달러(약 1억8186만원)에 팔렸다. 미국 골프 전문 경매업체인 골든에이지 옥션에 나온 타이틀리스트의 스카티 카메론 뉴포트2 얘기다. 골든에이지 옥션에 따르면 이는 경매 사상 퍼터 낙찰가로는 최고가다.

타이거 우즈 퍼터 복제품 1억 8200만원에 팔려

유명 선수들이 애용하던 퍼터는 비싼 값에 팔린다. 그러나 이 퍼터는 선수가 실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복제품이다. 타이거 우즈가 메이저 15승 중 14승을 할 때 사용한 진짜 퍼터에 문제가 생길까 봐 예비로 만들어둔 가짜다.

우즈의 퍼터를 만들어주는 스카티 카메론은 매년 한두 개씩 예비 퍼터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하나가 시장에 나온 거다. 그렇다면 우즈의 진짜 퍼터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옥션 측은 30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로 예상했다.

타이거 우즈가 사용하고 있는 스카티 카메론 뉴포트2. [사진 PGA 투어]

타이거 우즈가 사용하고 있는 스카티 카메론 뉴포트2. [사진 PGA 투어]

퍼터는 골프용품 중에서도 특별한 영역이다. 우승 퍼트를 하고 나서 퍼터에 입을 맞추는 선수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멋진 티샷을 날렸다고 드라이버에 입술을 대는 골퍼는 없다.

골퍼는 퍼터를 가장 중요한 순간 함께 하는 일종의 동반자로 여겨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드라이버와 아이언은 골퍼의 무기이지만 퍼터는 애인 같은 존재다. 선수들은 예전에 쓰던 드라이버는 버려도 퍼터는 대부분 모아 둔다.

드라이버는 무기, 퍼터는 연인  

드라이버는 몇 년 지나면 손상된다. 깨끗한 상태라고 해도 신제품에 비해 퍼포먼스가 떨어진다. 사실상 소모품이며 소장 가치가 작다. 그러나 퍼터는 100년 된 제품을 써도 큰 차이는 없다.

사연이 있는 제품이라면 명품 시계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비싼 값을 받을 수도 있다. 수집품 시장이 생길 기반이 된다. 퍼터는 다른 클럽보다 짧아 수집하고 집에 전시하기에도 좋다. 아널드 파머는 3000개, 스콧 호크는 150개의 퍼터가 있다. 투어 선수들이라면 퍼터 수십 개씩 가지고 있다.

수제퍼터의 원조인 T.P. 밀스 퍼터. [사진 T.P. 밀스]

수제퍼터의 원조인 T.P. 밀스 퍼터. [사진 T.P. 밀스]

최초의 수제 퍼터인 T.P. 밀스는 아이젠하워, 닉슨, 포드, 레이건, 부시 등 미국 대통령들이 사용했다. 퍼터 수집 시장을 폭발시킨 인물은 골프계의 반 고흐라고도 불리는 스카티 카메론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골프를 함께 했는데 골프 자체보다 골프채 수집과 수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고교 졸업 후 퍼터 회사에서 영업을 하다가 그만두고 하와이에서 일본인 관광객에게 다이아몬드 등을 박은 퍼터를 팔았다.

고급 퍼터 시장을 만든 골프계의 반 고흐 카메론  

일본의 거품이 터진 후엔 5만 달러짜리 퍼터가 안 팔렸다. 그는 투어 대회장에 가서 선수들에게 “당신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퍼터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퍼터 헤드에 왕관 모양을 새기고 이름도 넣어 줬다. 카메론은 어릴 때부터 알던 타이거 우즈는 엄청나게 챙겼다.

반 고흐는 죽어서 이름을 날렸지만 카메론은 살아서 영광을 누리고 있다. 퍼터에 강아지나 갈매기, 눈(雪) 같은 그림을 그리고 친구를 놀리는 내용까지 쓰는 카메론의 퍼터는 골퍼에겐 새로운 컨셉트였다. 특히 일본에서 그는 추앙된다. 그의 박물관도 있다.

카메론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카메론을 ‘스카티 카메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메론이 “핑 퍼터를 베낀 것 말고 퍼터 발전에 기여한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피아노를 발명한 사람은 잊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은 기억한다.

카메론의 퍼터는 크게 두 가지다. 타이틀리스트를 통해 대량 생산되는 프로덕션 모델과 스튜디오에서 제작되는 투어 모델이다. 투어 모델은 카메론이 소재 선택부터 디자인, 마무리까지 혼자 한다. 프로덕션 모델로는 출시하지 않는다. 투어 모델은 왕관 모양에 이름을 새겨 주고 빨강 점이나 투어(tour)를 뜻하는 ‘서클 t’를 스탬프한다.

스카티 카메론. [중앙포토]

스카티 카메론. [중앙포토]

일반인은 투어 모델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카메론은 한정판 특별 퍼터를 만들어 내면서 일반 골퍼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새 퍼터 출시 기념으로 소량만을 만드는 퍼터, 메이저 우승 기념 퍼터, 유명 선수 퍼터, 스페셜 에디션 퍼터 등이다.

카메론 퍼터는 와인처럼 빈티지가 생겨나고 복잡해진다. 그래서 수집가들은 더 경쟁적으로 카메론을 찾는다. 카메론 이외에도, T.P. 밀스, 크로노스, 레이본, 바이런 모건, 피레티, 아르 골프, 야마다 등이 명품으로 꼽힌다.

타이거 우즈 마스터스 270타로 우승시 270개 만들어

선수가 사용하던 제품은 물론 레플리카 퍼터도 인기다. 마스터스에서 타이거 우즈가 18언더파 270타로 우승하던 1997년 카메론은 똑같은 모델로 일련번호를 붙여 270개의 퍼터를 만들었다. 번호가 붙어 있으면 믿을 수 있지만, 선수가 직접 사용한 오리지널은 아니라는 표시이기도 하다.

카메론이 판매하는 레플리카 모델은 첫 판매가의 6배 정도에 거래된다. 카메론은 매년 마스터스에서 기념 퍼터도 판매하는데, 역시 가격이 올라간다. 타이거 우즈가 우승하면 더 오른다.

수집가들 중에는 퍼터 헤드와 샤프트를 연결하는 넥 형태가 트위스트된 모델만 모으는 사람도 있고 베릴륨 코퍼, GSS 계열 등 원하는 헤드 소재로 만든 모델을 모조리 수집하는 이도 있다.

GSS는 German(독일) 스테인레스 스틸의 약자다. 스카티 카메론은 GSS, SSS(스튜디오 스테인레스 스틸), 수퍼 랫, 투어 랫 순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수퍼 랫과 투어 랫은 카메론이 장난스럽게 그린 쥐(rat)가 새겨진 퍼터다. 스카티 카메론의 투어전용 모델인 써클티 퍼터 중 가장 대중적인 제품이 500만원대인 슈퍼 랫이다.

퍼터갤러리에 있는 평품 퍼터 브랜드들. 성호준 기자

퍼터갤러리에 있는 평품 퍼터 브랜드들. 성호준 기자

명품 퍼터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추산이 어렵다. 일본과 미국에는 퍼터 수집이 활발하다. 일본에서는 개인 컬렉션을 전시하고 동호회 회원들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퍼터 수집가는 손에 꼽는다. 일반적으로는 명품 퍼터 한 두 개씩 보유하는 정도다. 개인 간 거래에서 바가지를 쓰거나 가짜를 샀다는 불평도 가끔 나온다.

대신 한국에는 세계 유일 퍼터 편집숍(여러 가지 브랜드의 물건을 파는 매장)이 있다. 롯데월드타워 에비뉴엘 명품관에 있는 ‘퍼터 갤러리’다.

이종성 대표는 “수집용 고가 퍼터를 사는 사람들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고가 퍼터를 하나씩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골퍼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도 시계처럼 명품 퍼터 수집 시장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또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골프를 가장 좋아하며, 선수들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고,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높아지는 만큼 국내 명품 퍼터 브랜드가 나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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