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나와도 마스크 못벗는다···인류 위협하는 ‘신데믹 쇼크’

백신 나와도 마스크 못벗는다···인류 위협하는 ‘신데믹 쇼크’

중앙일보

입력

마스크를 쓴 인간 '호모 마스쿠스'가 보편적인 인류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지난 6월 대구 달서구청이 ‘참을 인(忍)’ 글자가 적힌 초대형 마스크를 선사유적공원 원시인 조형물에 설치한 모습이다. 달서구청은 ‘폭염에 맞서 마스크 쓰기에 앞장서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뉴스1]

마스크를 쓴 인간 '호모 마스쿠스'가 보편적인 인류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지난 6월 대구 달서구청이 ‘참을 인(忍)’ 글자가 적힌 초대형 마스크를 선사유적공원 원시인 조형물에 설치한 모습이다. 달서구청은 ‘폭염에 맞서 마스크 쓰기에 앞장서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100만 명을 넘어섰다.

<신데믹 위기> ①'호모 마스쿠스'의 출현

세계 각국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당장은 손에 잡히지 않고 희생자는 계속 늘고 있다. 인류의 위기다.

인류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있는 것은 코로나19뿐만이 아니다.
당장 기후 위기 불리는 기후변화 문제가 있다. 지구 기온이 앞으로 0.5도만 더 올라도 재앙이 닥칠 것이다.

미세먼지 오염도 심각하다. 전 세계에서 연간 700만~900만 명의 조기 사망을 불러온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재앙이다.

쌓여만 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식탁에 오르는 미세플라스틱 오염도 인류 건강을 위협한다.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걱정이다.

신데믹…2개 이상의 유행병이 한꺼번에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뉴스1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뉴스1

인류는 신데믹(Syndemic) 위기에 처했다.

신데믹은 2개 이상의 유행병이 동시 혹은 연이어 집단으로 나타나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사태를 악화하는 것을 말한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의학 인류학자 메릴 싱어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신(syn-)’은 ‘함께’ 혹은 ‘동시에’ 뜻을 가진 접두사이고, ‘데믹(-demic)’은 유행병(epidemic)을 의미한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지난 5월까지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은 코로나19와 환경문제 연관성을 다룬 논문을 최소 200편 이상 발표했다.

논문들에서 언급한 대로 2020년 현재 신데믹을 이루는 네 가지 재앙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다.

신데믹 위기에 처한 인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신데믹 위기에 처한 인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기후변화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의 확산을 가져왔고, 산불을 일으켜 미세먼지 오염을 악화시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온실가스 배출이나 미세먼지 배출은 일시 줄었지만,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등 폐기물 문제를 악화했다.
화석 연료를 태우면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미세먼지로, 코로나19로 사용이 늘어난 마스크는 그 자체가 플라스틱 폐기물이고, 자연계에 들어가 분해되면 미세플라스틱이 되고, 미세먼지가 된다.
쌓여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태우면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지난 24일 부산 강서구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에 각 가정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등 재활용 폐기물 분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에서 배출되는 재활용 폐기물이 모이는 이곳은 코로나19로 배달 음식과 택배가 늘어나면서 지난해보다 20% 이상 처리량이 늘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부산 강서구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에 각 가정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등 재활용 폐기물 분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에서 배출되는 재활용 폐기물이 모이는 이곳은 코로나19로 배달 음식과 택배가 늘어나면서 지난해보다 20% 이상 처리량이 늘었다. 연합뉴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코로나19든, 기후변화든 서로가 얽혀있는 문제이고, 복합 위기"라며 "위기가 당장 코앞에 닥쳐 있는데,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만 찾는다"고 지적했다.

네 가지 재앙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들 문제는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만 따로 해결할 수가 없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고, 지구 생태계에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개인과 사회, 국가,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마스크 쓴 인간 '호모 마스쿠스'

(지난 1월 19일 미세먼지로 뒤덮인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인근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19일 미세먼지로 뒤덮인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인근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신데믹의 상징은 ‘호모 마스쿠스(Homo maskus)’의 등장이다.
‘호모 마스쿠스’는 ‘마스크를 쓴 인간’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플라스틱을 재료로 만든 마스크의 착용은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기후변화와 산불, 미세먼지 오염과도 관련이 있다.
마스크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은 인류의 자업자득이다.

과거에도 인류는 마스크를 썼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때도 많은 인류가 마스크를 착용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당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미국인들 모습. 중앙포토

1918년 스페인 독감 당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미국인들 모습. 중앙포토

한국인도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나 미세먼지가 심할 때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지난해 12월 말 중국에서 코로나19와 함께 출현한 ‘호모 마스쿠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대중교통 이용이나 상점 출입 때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도록 하는 등 차이는 있지만 전 90% 이상의 국가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마스크의 효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초기엔 건강한 사람 마스크 쓸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유럽이나 북미지역에서는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도 심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있는 주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 명령이 내려지지 않거나 늦게 내려졌고, 이것이 확진자나 사망자 숫자에도 영향을 줬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서울대 의대 홍윤철 교수는 “과거 마스크 착용을 잘했던 유럽이나 북미 사람들은 20여 년 전부터 테러에 대한 우려,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거부감으로 인해 마스크 착용을 꺼리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호모 마스쿠스가 승리했다.
증상이 없거나 증상이 나타나기 전의 감염자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가 확인되고, 공기를 통한 감염 가능성도 지속해서 제기되면서 일반 대중의 보편적 마스크 착용이 확산한 것이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마스크는 손 씻기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방어수단이다.

마스크도 완벽한 방어는 못 돼

마스크에 의한 공기중 바이러스 차단. 자료:사이언스

마스크에 의한 공기중 바이러스 차단. 자료:사이언스

마스크 착용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마스크를 오래 착용하면, 호흡기 질환자나 노약자에게는 호흡 곤란 등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마스크 내부에 세균이 번식할 수도 있다. 폭염 때 체온이 상승하는 문제도 따른다.

마스크가 완벽한 방어수단도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보건용 마스크나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 주변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바이러스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면 공기 중의 바이러스를 흡입할 가능성을 크게 낮춰준다.

일반 대중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면 감염자가 있더라도 바이러스를 흡입할 가능성이 대폭 줄어드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면 극소수의 코로나19 바이러스만을 흡입하기 때문에 백신 주사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마스크를 착용하면 마스크 안쪽에 온도와 습도가 상승하는 '미소환경'이 형성돼 감염자 체내 바이러스 복제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검증이 더 필요하다.

지난여름 프랑스 유명 누드 해변에서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옷은 벗어도 마스크는 써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중국 하이난 사범대학 연구팀의 실험에서 참새들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에 익숙해져 비행 개시 거리(flight initiation distance, FID)를 줄일 정도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보다 마스크 쓴 사람이 더 가까이 접근하도록 허용할 정도로 위협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적어도 1년은 더 마스크 착용해야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교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적어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피크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기를 고려하면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캐나다 보건 당국에서도 “코로나19 백신이 나와도 2~3년은 계속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신이 나와서 보급되고, 전체 인구의 60~70%가 면역을 갖는 집단면역에 도달해야 비로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에 익숙해진 인류는 앞으로 쉽게 벗지는 못할 것이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다른 호흡기 유행병이 등장하지 않아야 하고, 미세먼지까지 사라져야 마스크를 벗고 호모 사피엔스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천권필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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