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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잃은 게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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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북한이 비무장 한국인을 바다 위에서 사살하고도 잃은 게 없다. 반대로 한국은 자국민이 사살당했는데도 뚜렷한 책임 추궁이 안 보인다. 사람을 죽인 쪽이 위축되고 상대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어떻게 된 셈인지 죽임을 당한 쪽이 더 조심스럽다. 북한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 계산서가 나온다.

한국의 대북 저항력 테스트 #군과 여당, 알아서 습득정보 공개 #북한 놓고 착각 땐 탈탈 털린다

①사살하고도 호평 들어=김정은 위원장은 한국 공무원 총격 사살을 통해 한국 정치의 대북 저항력을 시험해 볼 수 있었다. 북한 입장에선 대남 침투력이다. 아마 결과는 대만족일 것이다. 사과 통지문을 보냈더니 ‘계몽군주’ ‘두 차례 미안은 이례적’라는 여권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사실 이건 사살 책임을 인정했다기보다는 남측 책임으로 인해 북한 영역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태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통지문 하나로 한국 정부와 여당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로 인해 벌어진 남남갈등을 관전하는 즐거움은 디저트로 즐기고 있다.

②돈을 잃은 게 없다=2008년 7월 북한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북한 경비병의 총을 맞아 피살됐다. 이후 북한의 달러박스였던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관광지는 절경을 즐기며 일상을 떠나 쉬는 곳이지 군인의 총을 맞아 죽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정부가 반인륜적 민간인 피살 범죄에 대해 얼마나 대응할지 불투명하다. 오히려 그동안 단절됐던 남북 관계를 되돌릴 호기로 여기는 것인지 공포스럽다.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 피살자 배상 없이 남북 관계가 복원되는 것은 전례로 남아 향후 미래 정부와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서소문포럼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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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NLL 거부 재확인=사과 이틀 만에 등장한 ‘영해 침범’ 주장은 북한이 이번 피살 사태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한 번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한 적이 없다. 우리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희생하며 그 힘으로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이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로 내세웠던 2년 전 9·19 남북군사합의서에도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는 대목은 없었다. 청와대는 북한 영해 침범 주장에 대한 답을 피했다. 북한은 오늘 당장 NLL을 형해화하려는 게 아니다. 10년이 됐건 50년이 됐건 집요하게 NLL을 거부하면서 때만 되면 군사 공격을 가해 상대가 내분으로 포기하게 하려는 것이다.

④군사정보 습득은 보너스=군과 여당은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 의도가 있었다는 쪽으로 알렸다. 군 당국은 월북 의사를 포착한 출처를 비공개했지만 그러면서도 “근거 없이 말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군과 여당에 묻고 싶다. 군사정보 수집 수단의 노출 가능성을 감수할 정도로 피살 공무원의 월북 정황을 알리는 게 중요했나. 또 당사자 사망으로 최종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가족이 부인하는 월북 정황을 왜 부각하는가.

정보 습득의 출처를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북한이 어디서 샜는지를 모르는 게 아니다. 무엇이 샜는지를 아는 순간 어디서 샜는지를 안다. 이미 북한군은 정보 체계의 구멍을 메우고 있을 거다. 혹 북한군이 역정보를 흘린 것은 아닌지도 궁금하다. 상대에게 뚫린 구멍이 어딘지를 찾기 위해 역정보를 흘리고 상대가 이를 파악했는지를 확인해 역으로 구멍을 찾아내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북한이 잃은 게 없는 이유는 이처럼 상대인 한국이 냉철하고 집요하며 일관성 있게 대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관성에 관한 한 북한이 으뜸이다. 우리는 정부가 바뀌면 대북 정책이 바뀌고 통지문 하나에도 바뀐다. 미국도 지도자가 바뀌니 갑자기 북·미 관계가 요동친다.

그런데 북한은 정권 수립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진정성이 있다.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이들의 지고지선은 북한 중심의 통일, 즉 적화통일이다. 과거엔 탱크로 밀고 내려왔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니 참으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일 뿐이다. 북한은 이처럼 도발도 대화도 상대를 요리하는 동일한 가치의 수단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일관된다. 대외 정책에서 국제사회의 상궤나 도덕성이라는 기준은 없다. 1999년 6월 한반도 동쪽에선 금강산 관광이 진행되는데 서쪽에선 북한군이 한국 해군을 공격하는 정신분열적 상황이 벌어졌던 게 전례다.

북한과 언젠가는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북한이 바뀌어서가 아니고 대화 외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며, 또 어떻게든 북한과 우리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점을 만드는 게 대화의 방향이자 전제다. 그게 아니라 북한이 밀고 당기는 대남 압박술에 혹해서 ‘계몽군주 나시었네’ 식으로 착각에 빠져 북한을 상대하면 탈탈 털린다.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