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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김종인의 '쾌도난마' 마이웨이…박덕흠 단칼에 털고 3법 밀어붙어 서울시장 탈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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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연일 화제와 논란 … 김종인의 '중도화' 돌직구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둘째)이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둘째)이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위원장님, 저 정진석입니다. 10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습니까?

박덕흠 탈당, 사돈 정진석이 ‘총대’ #3040 잡기위해 3법 통과 불가피 #시장 후보로 신인 변호사도 물색중 #안철수 ‘합당’ 요구해 받기 어려워

지난 23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5선 의원 정진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정진석은 가족회사가 천억 원대 피감기관 공사를 수주해 논란을 빚은 박덕흠 의원의 사돈이다. ‘감’을 잡은 김종인은 "집무실로 오시라”고 답했다. 정진석과 마주 앉은 김종인은 "피차에 얼굴 붉히지 않으려면 박 의원이 피해 주는 게(탈당) 좋다”고 했다. 당시 박덕흠은 기자회견을 열고 "난 잘못 없다”고 주장해 국민의힘은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외부 인사를 당 윤리관에 임명해 박덕흠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인은 "그러면 시간만 끌고 상처만 남으니 박덕흠의 용단이 필요하다”는 뜻을 정진석에게 밝힌 것이다. (정진석은 "주호영도 이날 따로 만났는데 이 자리에선 그도 김종인과 같은 뜻을 비치더라”고 전했다) 이후 정진석은 박덕흠과 접촉해 김종인의 뜻을 전했다. 다음날 박덕흠은 전격 탈당했다. 김종인의 쾌도난마식 해법이 먹힌 것이다.

김종인의 말이다. "박덕흠 사태로 당 지지율이 3%나 빠졌다. 윤리관 임명하고 하면 어느 세월에 해결하겠나. 얼마 전 박덕흠에 딸 시집보낸 사돈지간인데도 어려운 얘기를 해준 정진석이 고맙다.” (이와 관련, 정진석은 "박덕흠이 탈당을 스스로 결심했고 지도부 의중을 알아봐달라고 해서 (김종인을) 만났던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3법에 더 부담 … 말려들면 안 돼

같은 날 김종인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예방을 받았다. 손경식은 "여당이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밀어붙이니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김종인은 "3법은 시장 자유를 위한 것이지 기업가 보호용이 아니다. 소송 남발을 걱정하시는데, 경영 제대로 하면 그럴 일이 없다”고 잘랐다. 말문이 막힌 손경식에게 김종인은 "우리 당이 아무리 바보 같아도 대한민국 경제 망하게야 하겠소? 그 정도 알고 가시오”라고 했다. 면담은 10분 만에 끝났다. 재계에선 ‘김종인 귀에 경 읽기’란 탄식이 나왔다.

하지만 김종인은 "3법은 디테일 수정은 몰라도 당론으로는 절대 반대할 수 없다”는 입장이 완강하다. 이유가 재미있다. "실은 더불어민주당이 3법에 부담이 많다. 그쪽 의원들도 다 대기업 로비 받으니까. 그래서 겉으로만 미는 척하고 우리 당 반대를 핑계로 무산시키려는 속셈도 있어 보인다. ‘차도살인’, 아니 ‘차도살법’인 셈이다. 거기 말려들 일 있나. 실제로 내가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으로 있을 때 입법 1호로 상법 개정안을 내니까 상임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무산시켜버렸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년 4월 김종인과 국민의힘의 운명을 가를 서울시장 선거다. 김종인의 말이다. "3법 통과 안 시키면 서울시장 선거 절대 못 이긴다. 30·40대 유권자에 물어보면 ‘무조건 3법 통과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해외여행도 많이 해, 불공정에 반감이 가장 크고 국민의힘에 거부감도 강하다. 우리 당이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꼼짝 안 한다. 그러니 (3법을 통과시켜) 당이 변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내가 3대부터 21대까지 역대 총선을 다 보고 겪은 사람인데 서울에서 지는 당은 살아남지 못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수도권 121석 중 20석이 안 된다. 최악의 참패 아닌가. 서울을 되찾으려면 뼈를 깎는 개혁이 불가피하다. 몇몇 의원들이 ‘3법은 당 정체성에 반한다’고 하길래 ‘정체성, 정체성 하는데 당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뭐요?’ 하니 답을 못하더라. 우리 당 보고 ‘보수’라는데, 지금의 보수는 뭘 지향하는지도 모른다. 여당이 ‘진보’라고 하니까 ‘보수’라고 한 거다. 아무 의미가 없다. ‘상식’으로 가면 된다.”

권성동 복당은 OK, 홍준표·이은재는 NO

김종인의 중도화 행보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김종인은 "무소속이었던 권성동 의원에 대해 바깥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사고가 건전하다’고 하고, 당내 여론도 좋더라. 그런 마당에 당 일각에서 복당 요청이 들어 오니 반대 안 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종인은 함께 복당 리스트에 오른 이은재 전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 2명은 불허했다. 비대위 청년 위원들의 반대를 받아들인 것이다. 청년 위원들은 "이은재는 전광훈 목사가 만든 기독자유통일당에 들어간 전력이 있고, 원외 위원장 2명은 박근혜 탄핵을 반대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받아주면 당이 전광훈 세력과 엮어 고립될 것”이라 했다.

이런 기조에서 홍준표 의원 복당도 당분간 가능성이 희박하다. 김종인은 ‘홍준표 복당은 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된 이후 검토’를 조건으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그런데도 당내에서 홍준표 복당론이 흘러나오는 것과 관련해 김종인은 "나와 당의 불협화음을 조성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해석한다. 김종인은 박근혜와도, 문재인과도 불화 끝에 헤어진 전력이 있다. 갈등이 참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하면 탈당하는 습성이 있다고 판단한 친홍준표 세력이 "김종인을 자극해 국민의힘에서도 나가게 만들면 당권은 우리 것”이란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어려운 3가지 이유

김종인은 "안철수는 우리 당의 서울시장 후보 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서울 시민들이 새 인물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선 윤희숙 의원 같은 이가 경쟁력 있다고 한다. 김종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신인 변호사 1명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서울시장 시키면 잘할 사람이지만 요즘 활동하는 걸 보면 대권에 관심을 두는 듯하다고 김종인은 보고 있다. (김종인은 "김동연에게 ‘(문재인 정부가) 맘에 안 들면 치고 나오라’며 정계 입문을 권했는데 못 하더라”고도 회고했다)

두 번째는 ‘합당’ 문제다. 안철수 측이 자꾸 합당하자고 하는데, 김종인으로선 받아줄 수 없는 요구라고 한다. "선거 앞두고 야당끼리 합당하면 내분이 일어나 필패한다. 오랜 경험이다. 안철수 본인이 개별 입당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경선에 이겨 우리 당 후보가 될 가능성은 작다.”

세 번째 이유는 ‘호남’이다. 김종인이 보기에 서울시민의 32%가 호남 출향민인데 이들은 ‘이낙연 대망론’때문에 강하게 결집해있다. "김대중 이래 20년 만에 호남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 아래 김대중 시절보다 더 똘똘 뭉쳐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울시장 후보가 (안철수 같은) 영남 출신이 돼선 당선되기 어렵다고 김종인은 보고 있다. 김종인은 추석 직후 내년 4월 재보선 대책 기구를 발족시켜 서울시장 후보 낙점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그래도 믿을 건 안철수, 서울시장 카드 살려놔야 한다”

장제원

장제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국민의힘의 첫 만남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지난 23일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주도하는 미래혁신포럼에 안철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국민의힘 의원 27명이 경청했다. 장제원 의원은 “직전 오세훈 전 서울시장 강연보다 열기가 높더라. 강연 뒤 점심에도 10여명이 몰렸다. 권성동·홍문표 의원 등 중진들과 ‘초선 스타’ 윤희숙 의원이 끝까지 앉아있었다. ‘당에 인물이 없으니 안철수가 소중하다. 그래도 우리 편 아닌가’는 분위기더라”고 했다.

장제원은 안철수를 강연대에 세우려고 ‘삼고초려’했다. "처음엔 사양하다가 두 번째 찾으니 ‘조금 (타이밍을) 보시죠’ 하고, 세 번째 찾아가니 ‘포럼 언제 여시느냐’고 마음을 열더라. 그동안 안철수가 우리 당의 변화 움직임을 보고 응해준 측면이 있지 않을까. 포럼에서 보니 안철수가 과거보다 유연해진 데다 시국 인식과 정권교체 필요성, 혁신과제 등에서 우리 당 입장과 거의 일치하더라. 10월 국감에서 정책연대를 거친 뒤 내년 선거 앞두고 1대1 합당으로 당의 중도화를 굳히고, 안철수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워야 승산이 있다. 국민의힘이 유일하게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대상이 안철수인데 깎아내리기만 해서 되겠나.”

안철수 측근인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안철수가 자꾸 합당을 요구한다”는 김종인의 말에 대해 "합당 요구는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했지 우린 그런 적 없다”고 일축하면서도 통합의 필요성은 강조했다. "선거 앞둔 정치공학식 당대당 합당이 아니라, 보수에 기반을 두되 중도로 확장성 가진 정당으로 ‘재편’되는 게 양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에다 시민단체·학자 등 반문세력이 총결집해 새 정당으로 거듭나야 정권교체가 가능해진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