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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냉장고 없던 시절 여름에 김치 어떻게 보관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12)

종갓집도 명맥이 끊겨가는 요즘 시대, 오랜 세월 대를 거쳐 내림 음식을 지켜오고 있는 가문은 그리 많지 않다. 전라남도 나주의 남파(南坡)고택에 이 집만의 내림 음식이 있다고 해서 찾아 나섰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문의 전통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고택을 지으신 고조할아버지의 호 남파를 따서 남파고택이라고 부른다. 현재 종손은 남파고택의 9대 종손으로 밀양박씨 청재공파 15대손이다. 조상의 대를 이어 한 집터에서만 200년 넘게 지낸 가문이라고 나주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문의 전통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약속을 잡고 방문하던 날, 종부 강정숙 여사와 차종부인 며느리가 함께 제사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주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택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대문을 들어서서는 고택의 전체 규모에 다시 놀랐다. 900평의 대지에 안채, 사랑채, 초당, 문간채 등 총 7동의 건물이 있다. 과연 전라남도에서 단일 건물로는 최대 규모라고 자랑할 법했다. 이렇듯 남파고택은 호남 지방 상류층 가옥의 구조와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2009년 중요민속자료 제263호로 지정되었다.

문을 걷어 올린 대청마루의 모습. 강정숙 종부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문을 걷어 올린 대청마루의 모습. 강정숙 종부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밀양 박씨 가문은 대대로 이 터에서 8대째 살고 있고, 종부인 본인은 시집온 뒤 40년 넘게 한옥에서 지냈으며,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마을을 우직하게 지켜왔다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종부는 제사음식의 기본인 전과 떡갈비를 요리했다. 전은 세 가지로 육전(소고기), 고추전, 어전(동태)을 준비했다. 제사음식 만들 때 제일 중요한 전은 꼭 세 가지를 기본으로 준비한다는 것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의 수는 보통 홀수로 놓는데, 다섯 종류의 전은 준비하기가 너무 벅차고, 한 가지는 조금 초라해 보여서 보통 세 가지씩 올린다고 한다.

제사상에 올리는 또 다른 주인공은 떡갈비였다. 떡갈비는 담양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대표 음식으로 알려졌다. 만들 때 갈빗살을 곱게 다진 후 떡을 치듯 뭉치는 과정에서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고, 만들고 난 모양이 떡과 같다고 해서 떡갈비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남파 고택에는 두 개의 부엌이 있다. 하나는 안채에 있는 오래된 부엌이고, 다른 하나는 안채 옆쪽에 입식으로 작게 만든 신식 주방이다. 아궁이와 부뚜막이 있는 전통 부엌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새벽마다 조왕신께 바치는 정화수도 조왕그릇에 올린다고 한다. 난방도 옛날 방식 그대로 불을 때서 쓴다. 연기나 그을음은 연도를 거쳐 마당에 설치한 옹기 굴뚝을 통해 빠져나간다. 굴뚝에서 연기를 피우는 겨울이 되면 마당에서 바라보는 집의 풍경은 또 다른 운치가 생긴다.

남파고택의 전통부엌.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남파고택의 전통부엌.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남파고택의 옹기 굴뚝.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남파고택의 옹기 굴뚝.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입식 주방의 냉장고 안에는 이 집만의 내림음식이 있다. 대표적으로 반동치미가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발효음식으로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홍갓김치, 나주배 보쌈김치, 파김치, 고춧잎을 넣은 집장, 멸치젓 등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방식으로 만들어진 반찬들이 즐비했다.

뒷마당으로 슬쩍 돌아가니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됐다. 얼핏 봐도 20여 개가 넘는 장독이 뒤뜰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집에서 만든 된장과 간장, 고추장, 집장, 젓갈독 등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그것도 오래 묵힌 것부터 최근까지 순서대로 질서정연했다.

옆면에 문양이 그려져 있는 장독도 있다. 반달문이나 산형문(山形文)인데, 기교가 없어 순박한 것이 오히려 멋스러움을 자아냈다. 둥글넓적하고 입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을 자배기라고 부르는데, 이 집에서는 자배기를 장독의 뚜껑으로 사용한다. 자배기는 잔칫날이나 농사철에 여러 가지 용도로 요긴하게 쓰이곤 했다.

장독대 반대편 쪽 안채의 뒷마루에는 현대식 김치냉장고 두 대가 놓여 있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다. 자연스럽게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 궁금해져서 종부님께 물었더니 이야기가 이어져 나갔다.

고택의 뒷마당에는 장독대와 현대식 김치냉장고가 공존하고 있다. [사진 심효윤]

고택의 뒷마당에는 장독대와 현대식 김치냉장고가 공존하고 있다. [사진 심효윤]

남파 고택에서는 늘 일가친척이 함께 모여서 식사했다고 한다. 밥을 같이 먹는 식구만도 30여 명, 게다가 친척이 식솔까지 데리고 오면 수는 더 늘어났다. 모든 사람이 밥을 먹으려면 김치도 많이 담아야 했기에 김장독을 묻어 사용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여름이 되면 김치를 보관하기 어려우니까 여름에 먹을 김치는 고춧가루를 치지 않고 보관했다. 배추를 소금에만 절여서 묻어놨다가, 먹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 씻은 다음에 양념해서 김치를 바로 만들어 먹었다. 음식은 대체로 좀 짜거나 발효시켜야 상하지 않고 오래 먹을 수 있었다. 먼저 먹을 것은 조금 싱겁게, 나중에 먹을 건 소금을 더 많이 쳤다. 번호를 붙여가며 정렬해뒀다가 순서대로 먹었다. 그러면서 장독의 개수가 자연스럽게 불어났다. 중간에 항아리를 열어보고 상하려고 하면, 간장이나 액젓을 부어서 다시 간을 맞추면 상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었다.

종부는 아직도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의 각종 장류는 물론이고 묵은김치, 신건지(동치미) 담았던 무를 말려서 된장 속에 담은 장아찌, 그리고 단무지를 만들어서 독에 담근다. 고택의 안채 뒤 북향에는 해가 들지 않아서 겨울에는 땅이 얼 정도로 춥다고 한다. 거기에 동치미를 항아리에 담아 놔두면 마치 냉장고에 넣은 것처럼 시원하고 맛도 일품이란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추워서, 냉장고 없이도 잘 지내셨을 거예요. 음식을 조금 짜게 하면 상하진 않으니깐…. 그런데 여름에는 음식이 쉽게 상하기 때문에 참 어려웠지요. 특히 우리 집은 여름 제사가 있어서 더 까다로웠죠.”

종부는 1974년도에 결혼했고 혼수품으로 냉장고를 갖고 들어왔다. 남파 고택에 처음으로 냉장고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고택과 현대식 냉장고는 서로 잘 어울려 보이진 않았지만, 종갓집으로서 많은 양의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가전제품이었다. 특히 제삿날이 되면 많은 식구가 모이는데, 양이 부족해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풍족하게 준비해야 했다. 그것이 모든 가족을 아우르는 종갓집의 의무였다. 냉장고로 인해 인심 좋은 종갓집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부엌을 입식으로 새롭게 만들기는 했지만, 본 주방을 개축한 게 아니라서 규모를 크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제사처럼 양을 많이 준비할 때면 전통부엌에서 요리해야 한다. 그렇지만 전통 방식이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이를테면 가마솥에다 밥을 하면 누룽지가 솥단지만큼 크게 나오는데, 그 맛이 일품이란다. 하지만 요즘에는 식구도 많지 않고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서 누룽지가 없는데, 예전에 즐겨 먹던 누룽지 맛이 그립다고 하셨다.

“요즘 많은 사람이 간편하게 사는 걸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살면 좋겠다’ 하고 생각할 때도 많죠. 그러다가도 이 집에 들어오면 내가 평생 살았던 곳이니까 편안하고, 조상께 물려받은 대로 그렇게 이어 가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요.”

편리함을 갈망하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전통을 지켜나고자 하는 종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전통의 아름다움과 진정한 가치는 지속과 성실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통을 고수한다는 건 누군가의 희생이 뒷받침했다는 걸 그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냉장고가 가사노동의 짐을 조금은 덜어주었을까.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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