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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준호의 사이언스&

“한국 기술로 향후 5년 안에 핵추진 잠수함 개발 가능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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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핵추진 잠수함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8월 발표한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장보고-Ⅲ잠수함’의 건조계획을 밝혔다. ‘핵’(核)이란 표현은 공식 문서상에 없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당시 백브리핑을 통해 4000t급 장보고-Ⅲ는 핵추진 잠수함임을 인정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362사업’이란 이름으로 추진했다가 논란 끝에 중단됐던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 16년이 지나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울산과학기술원 황일순 석좌교수 #국방부 핵추진 잠수함 계획 세워 #“원자력연구원서 관련 기술 보유” #UNIST에선 핵추진 선박 개발 #90년대초 옛 소련 기술이 뿌리

핵추진 잠수함이란, 원자로를 동력원으로 쓰는 잠수함을 말한다. 디젤엔진을 쓰는 여타 잠수함처럼 화석연료를 태우기 위한 산소가 필요 없는 데다, 핵연료를 한번 장전하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연료 교체 없이 무제한 잠항할 수 있다. 덕분에 적진 깊숙한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다가 불시에 공격할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수천㎞ 이상 떨어진 적진으로 핵탄두를 실어 보낼 수 있는 무기라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적진 코앞의 바닷속에서 미사일을 쏘아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 군사강국들은 그간 앞다퉈 핵추진 잠수함 확보 경쟁을 벌여왔다.

황일순 UNIST 원자력공학부 석좌교수가 캠퍼스 내 실험실에서 연구 중인 원자로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황일순 UNIST 원자력공학부 석좌교수가 캠퍼스 내 실험실에서 연구 중인 원자로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앞으로 5년 뒤 대한민국에 과연 핵추진 잠수함이 등장할 수 있을까. 만든다면, 어디서 누가 핵추진 잠수함을 제작하게 될까.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잠수함용 원자로를 개발할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뿐이다. 힌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고를 낸 ‘2019년도 원자력융복합기술개발사업 신규과제’에 있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해양·해저 탐사선용 원자력 전력원 ▶우주 극한 환경 초소형 원자로 등을 개발 과제의 목표로 삼았다. 이 과제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의 황일순(67) 석좌교수가 따냈다. 중앙일보가 지난 11일 울산 황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의 비밀에 대해 물어봤다. 원자력연구원은 보안을 이유로 핵추진 잠수함과 관련한 취재를 거부했다.

국내 기술로 국방부가 계획한 핵추진 잠수함을 5년 안에 만들 수 있나.
“가능하다고 본다. 70년 전인 1949년 미국이 세계 최초 핵추진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개발할 때도 5년밖에 안 걸렸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일체형 중소형원자로(SMR)인 스마트원자로를 개발해왔기 때문에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핵추진 잠수함용 원자로 또한 5년 안에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인허가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은 다 돼 있다. 국가의 의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럼 국방부의 2021~2025 중기계획을 어디서 누가 실현할 수 있을까.
“2021년부터 개발을 시작한다면 아무래도 (경수로형) 스마트원자로를 개발한 원자력연구원밖에 없다. 우리 것은 효율과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2차 계통(터빈·발전기 등)에 초임계 이산화탄소 발전기를 사용한다. 일반 원자로의 증기터빈이 1분에 1800rpm의 속도로 회전한다면, 우리 것은 1분에 1만2000rpm으로 아주 빠르게 돌려야 한다. 이 때문에 소음이 커서 민수용이라면 몰라도 군사용으로 쓰기엔 부적절하다.”
디젤 잠수함과 핵추진 잠수함 비교

디젤 잠수함과 핵추진 잠수함 비교

UNIST가 개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4세대 원전으로 떠오르고 있는 납·비스무스형 원자로다. 우리 기술의 장점은 농축도 11%의 우라늄을 쓰면서도, 연료 교체주기가 40년에 달한다는 점이다. 선박과 수명과 같기 때문에 연료를 한번 주입하면 퇴역 때까지 교체할 필요가 없다. 물(경수, 중수)을 냉각재로 쓰는 기존 3세대와 달리, 납과 비스무스를 냉각재로 쓰기 때문에 선박에 문제가 생겨 바닷속에 빠지더라도 액체 금속이 모두 고체로 바뀌어 핵연료가 모두 봉인돼 방사선 오염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구체적 계획을 얘기하자면.
“우선 2022년까지는 선박용 원자로에 대한 개념 설계를 마치는 것이다. 아직 계획안 차원이긴 하지만, 이후 2028년까지 쇄빙선 사업을 위한 원자로를 실제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2030년까지는 산업계와 함께 원자로가 장착된 실제 선박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북극항로용 수송선이나 쇄빙선·잠수함 또는 수만t에 이르는 초대형 대양 상선용 동력원으로 원자로를 쓸 수 있다.”
원자력연구원의 스마트원자로를 잠수함용으로 개발할 경우의 단점은 뭘까.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자유로운 농축도 20% 미만의 우라늄을 쓴다 하더라도 7년마다 연료를 교체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잠수함을 절반으로 잘라야 해 비용이 많이 들고, 연료 교체를 위한 전용부두까지 갖춰야 한다. 가압경수로형이라 추가 장치가 들어가기 때문에 부피도 커진다.”
교수님께선 원래 군사용 핵추진 잠수함 기술에도 관여했다고 들었다.
“와전된 거다. 나는 시종일관 민수용 원자로 개발 연구에만 주력해왔다. 내가 러시아의 납·비스무스 원자로를 개발한 원로 과학자와 교류를 하면서 관련 정보를 많이 입수한 것은 사실이다. 소련 해체 직후인 1990년대 초 국내의 한 과학자가 옛 소련의 최신 핵추진 잠수함용 원자로 개념 설계도를 입수했는데, 이게 납·비스무스 원자로를 쓰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 과학자와 도움을 주고받긴 했다. 이후 국내 핵추진 잠수함 연구는 납·비스무스가 아닌 경수로용 스마트원자로 방식으로 갔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