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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과 스마트팜 귀농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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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백두대간 자락이 6차산업의 터전이었다. 경북 문경시 농암면 청화산(987m) 기슭의 농장 청화원. 해발 400여m 숲의 정적을 계곡의 나뭇잎 소리가 갈랐다. 귀농 6년 차 이소희(32)씨의 건나물 브랜드(소담)는 청정(淸淨)이 키우고 있었다. 취나물·다래순·고사리에 곰취와 명이나물. 산나물을 말려 선물 꾸러미로 팔아 이씨가 지난해 올린 매출은 1억2000만원이다. 코로나19가 덮친 올해도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혁신 농업인이 고령 농촌의 새 주역 #귀농 유치보다 실패의 안전망 긴요 #도전 정신 인재가 농업 잠재력 깨워

이씨의 귀농 과정은 흥미롭다. 화전민 터인 농장 주변은 그에게 제2의 고향이다. 초등 2학년인 1996년 서울에서 무술 도장을 하던 아버지(청화원 대표)를 따라 내려온 곳이다. 문경에서 초중고를 나온 뒤 다시 서울로 진학해 유치원 교사를 하다 돌아왔다. 부모엔 무연고지였지만 이씨엔 유턴이다. 농장에서 일하다 2017년 영농 후계자와 소담 대표가 됐다. 직접 재배한 유기농 산나물과 주변 궁터 마을 주민들이 캐온 산채를 브랜드화했다. 산나물을 헐값에 넘기던 산골 소득에도 보탬이 됐다.

판매처는 주로 회사와 각종 기관이다. 건나물을 행사 답례품으로 주는 아이디어가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청화원은 산나물 숙박 체험장이자 교육장이다. 천혜의 산나물 서식지는 그새 마을공동체와 함께 하는 6차산업 기지로 거듭났다. 이씨도 귀농·귀촌 코디네이터에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 회장 등 역할이 한둘이 아니다. 고충도 적잖았다. 미혼 여성이 귀농하자 사회부적응자니 실패자니 하는 얘기가 들려왔다고 한다. 앞으로 농장을 자연 놀이터와 인성학교로 확대하고, 지속 가능한 농촌공동체를 위해 일조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대구 출신의 박홍희(48) 씨는 귀농 스마트파머다. 서울에서 굴지의 전자회사 부장으로 있다가 6년 전 딸기 스마트팜 둥지를 틀었다. 경북 상주시 청리면 평원 한가운데 우공(愚公)의 딸기정원(9000㎡ 규모)이다. 비닐하우스 8개 동은 웅장했다. 온실 환경 센싱과 통합 제어기 등을 갖춘 스마트팜이지만 외관은 다른 하우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박씨의 올해 매출은 2억7000만원. 코로나로 체험 방문객을 받지 않아 지난해보다 약 20% 줄었다고 한다.

서소문 포럼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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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찾아 귀농했다. 부인도 다른 전자회사 차장이라 가족끼리 오붓이 보낼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2013년 육아 휴직을 내고 혼자 청리면에 내려와 딸기 농사를 배우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치밀한 준비와 창농 이후 계속된 농민사관학교·농업마이스터대 학습 과정이 그를 일류 스마트파머로 만들었다. 고교생·초등생 딸과 아침·저녁을 함께하는 일상도 정착됐다.

그는 지금 농업인이자 농업법인 굿파머스그룹(주)의 경영인, 스마트팜 교육자다. 법인에는 정규 직원이 4명이고, 늘 2~3명의 인턴을 둔다. 내년엔 상주 외서면에 딸기 스마트팜 유리온실(2만㎡)을 짓는다. 딸기 스마트팜으론 전국 최대 규모다. 설비비만 45억원이다.

그가 들려준 꿈은 세 가지다. 농사짓는 기쁨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딸기 수출 확대다. 저온 과일인 딸기는 동남아에서 인기가 높다. 판로가 홍콩·싱가포르·대만에서 태국·베트남으로 퍼지고 있다. 마지막은 농촌에서 지속해서 일하는 청년 배출이다. 농장을 넓히는 것도 자신 같은 우직한 독립 농부 양성을 위해서라고 했다. 우공이산(移山)의 실현, 그의 꿈은 당차다.

귀농의 재발견이라 할까. 혁신 농부가 고령 농촌의 활력소를 넘어 새 주역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00만7000 농가 경영주의 평균 나이는 68.2세다. 농가 인구 전체를 보면 일흔 이상이 셋 중 한 명(33.5%)이다. 외부 인구 유입은 불가결하다. 그렇지 않으면 농촌 지자체의 소멸은 시간문제다. 적극적 귀농(지난해 1만6181명), 귀촌(44만여명) 정책은 그 산물이다. 귀농으로 학교가 유지되는 곳도 있다.

귀농 인구는 2016년(2만599명) 이래 감소세다. 귀농 1번지를 둘러싼 지자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지원·교육 체계가 난립 양상이다. 문제는 귀농 유치보다 실패의 안전망이다. 한번 망치면 끝인 곳에 창의력은 깃들지 않는다. 농촌도 도전 정신의 인재가 살린다.

농산어촌은 잠재력의 보고(寶庫)다. 먹거리와 볼거리, 쉼터가 어우러져 있다. 농작물 재배·가공·판매와 일체형의 체험·숙박 시설은 더 없는 관광 인프라다. 농박(農泊)은 새로운 트렌드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과소지가 적소(適疎)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농촌은 디아스포라를 끝낼 혁신가를 기다리고 있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