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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위성락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 도발에 대비하지 않으면 한국 입지 더 줄어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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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 대선 전후 북한의 행보

2017년 7월 시험 발사된 ICBM급 화성-14형. [연합뉴스]

2017년 7월 시험 발사된 ICBM급 화성-14형. [연합뉴스]

과연 북한이 미국 대선 전후에 핵이나 미사일과 관련된 도발을 할 것인지는 현 국면에서 중요한 관찰점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국면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지 약속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지금과 다른 긴장 국면이 온다.

북한, 미국 대선 전후 핵·미사일 활동 중지 약속 파기 가능 #이 경우 문 정부 임기말 평화 프로세스는 결정타 맞게 돼 #정부측, 북한 도발 가능성 듣거나 말하기 꺼리는 분위기 #도발 개연성 계량해 그에 맞는 대비를 하는 것이 합리적

일견 북한이 도발할 근거와 그렇지 않을 근거가 섞여 있어 혼란스럽다. 그러나 면밀히 따져보면 개연성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도발할 근거로는 첫째, 과거 북한 행적을 들 수 있다. 북한은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 직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이래, 미국 대선을 전후하여 도발을 해왔다. 북·미 대화가 순항하던 때는 예외였다. 지금 북·미 대화는 중단 상태다. 둘째, 김정은은 지난해 말 조만간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여주겠다며 도발을 예고한 바 있다.

도발을 하지 않을 근거로는 첫째, 김정은과 트럼프 간의 친분을 들 수 있다. 김여정은 7월 담화에서 북한이 아직 도발하지 않은 배경에 두 정상 간의 특별한 친분이 작용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둘째, 김정은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보다 트럼프의 당선을 선호할 것이므로, 트럼프에게 타격이 될 도발은 삼갈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양쪽 근거 모두에 나름의 일리가 있으나, 아무래도 북한의 오랜 행태나 김정은이 세계 앞에 한 공언을 고려할 때 도발할 근거에 좀 더 무게가 느껴진다.

북한, 미국 대선 전후 도발 지속

2017년 11월 발사된 ICBM 화성-15형. [연합뉴스]

2017년 11월 발사된 ICBM 화성-15형. [연합뉴스]

여태껏 김정은은 코로나 사태와 바이든의 당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을 고려하여 미국을 향한 도발 시점을 조정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올해를 이대로 넘긴다면 김정은의 신년 메시지는 허언이 된다. 김정은은 내년 신년사에서 다시 미국의 행정부를 향해 위협적 메시지를 구사해야 한다. 올해 메시지를 공염불로 만들어 두고 내년 신년사를 기획한다는 것은 북한식 행태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김정은과 트럼프 간의 친분과 트럼프 재선에 대한 북한의 고려는 염두에 두어야 할 요소이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래 커진 미·북 간 입장차와 이에 대한 북한의 누적된 불만 또한 잊으면 안 된다. 북한은 이제 스몰 딜도, 실무회담도 거부한다. 정상회담도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할 필요 없다고 한다.

더욱이 최근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 활동과 대북 압박 행보에 반감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 김여정은 미·북 정상 간 친분을 언급하면서, 바로 이어서 미국의 위험한 압박성 언동을 언제까지나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언한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서 가만히 있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미국 대선 전에라도 트럼프에게 정치적 타격이 적은 방식으로 도발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이 지속해서 자주권 수호 능력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대선 전에 자주권이라는 명분으로 신형 미사일을 과시 또는 실험하거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한 잠수함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대선 후에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북한은 트럼프 2기에 미국의 입장 전환을 견인하기 위해 추가 도발을 할 소지가 있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강도 높은 도발을 하여 미국의 새 정부와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려 할 것이다. 한편 트럼프가 대선 결과에 불복하여 혼란이 온다면 북한은 이를 도발의 호기로 볼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미국 대선 전후 도발 가능성은 상당하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높지 않다. 특히 정부 쪽에서는 도발에 대해 듣거나 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아마도 공들여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불길한 소리가 나오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귀 막고 입 닫는다 하여 올 것이 안 오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 북한이 표류 중인 우리 국민을 사살한 사건은 남북 관계를 더 경색시키고 있다. 미국은 사살 건과 관련하여 북한 규탄에 가세하였다. 이 사건이 북·미 간 분위기에도 악재가 될 소지가 있다.

도발 가능성 부정만 하면 대처에 한계

2019년 10월 발사된 SLBM 북극성 3호. [신화=연합뉴스]

2019년 10월 발사된 SLBM 북극성 3호. [신화=연합뉴스]

만일 북한이 도발하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재 압박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당연히 북한은 반발하고 긴장은 고조된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임기 말에 결정타를 맞게 된다. 한국의 운신 공간이 크게 제약된다. 그러니 다가올 도발의 개연성을 계량하여 그에 맞는 대비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2006년 여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첫 핵 실험을 하려고 할 때 정부는 도발 가능성을 일관되게 부인하였다. 도발 정황이 너무도 뚜렷하여 대부분의 나라가 우려하고 있던 참이었다. 심지어 당시 한 고위 인사는 출국 길에 공항에서 기자로부터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무슨 근거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면박을 주었는데, 그가 비행하던 중에 미사일은 발사되었다. 몇 달 후 핵 실험도 있었다. 당시 정부가 도발 가능성을 부정하는 상황 인식을 갖고 있었으므로 우리의 사전·사후 대처는 현실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바란다. 도발 개연성에 맞추어 사전에 도발을 억지하든지, 아니면 사후 대처를 철저히 하든지 미리 대비해야 한다. 사전에는 도발 개연성을 부인하며 현실과 유리된 행보를 하고, 사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식 교류 협력 과제를 밀고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국 대선 전후 핵·미사일 도발 나선 북한

북한은 미국의 대선 전후에 도발하여 미국 조야에 충격파를 던지고, 새 정부를 상대로 협상 입지를 높이려는 행동을 해왔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1993년 초 NPT 탈퇴를 선언한 것이 이런 행동의 첫 사례였다.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경합했던 2000년 대선 때는 북한의 도발이 없었으나, 그것은 당시 미·북 대화가 활발했기 때문이었다. 조명록 차수의 방미가 있었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이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추진되고 있었다. 부시 당선 후에도 이렇다 할 도발은 없었다. 아마도 네오콘이 강성 정책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함부로 도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시 1기 전후 시기가 북한이 도발하지 않은 유일한 예외다.

2005년 부시 재선 직후 도발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2기를 시작하기 직전인 2005년 2월 초 북한은 “핵무기를 제조하였으며, 6자회담은 더는 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네오콘의 영향력이 퇴조한 분위기를 틈타 부시 2기를 흔들려는 시도였다.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경합한 2008년 대선 기간에는 6자회담이 가동되었으므로 북한의 큰 도발은 없었다. 그러나 2009년 오바마 당선 직후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이어지는 2차 핵 실험으로 판을 흔들었다. 2012년 대선 기간에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였다. 2013년 오바마 재선 직후에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 실험을 연이어 하였다.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경합한 2016년 대선 기간 내내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과 수많은 미사일 발사를 하였다. 2017년 트럼프 당선 직후에도 미사일 도발은 이어졌고, 급기야 그해 가을에는 6차 핵 실험을 하였다.

그동안의 경과를 보면 북한은 대화가 진행 중일 때를 빼고는 미국 대선 전후에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해왔다. 또 핵 실험을 할 때는 예외 없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한 묶음으로 진행하였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