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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자식 기르는 건 미래를 돌보는 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32)

은지 세 살 때. 은지는 아기 때부터 토닥토닥하며 자장가를 불러줘야 잠이 들었다. 유난히 땀이 많고, 하루에 한번 동글동글한 똥을 누는 은지. ’우리 집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물어보면 ’은지요!“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사진 배은희]

은지 세 살 때. 은지는 아기 때부터 토닥토닥하며 자장가를 불러줘야 잠이 들었다. 유난히 땀이 많고, 하루에 한번 동글동글한 똥을 누는 은지. ’우리 집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물어보면 ’은지요!“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사진 배은희]

엄마는 안다. 아기가 왜 우는지. 배가 고파서 우는지, 기저귀 때문인지, 울음소리나 표정만 봐도 안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건 엄마다. 아이에 대해 어느 분야의 전문가 못지 않은 전문가다. 은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다. 안타깝지만 은지 친엄마는 생후 11개월까지의 은지밖엔 모른다. 일곱 살이 된 은지가 그동안 어떻게 자랐고, 어떤 습관이 있는지 그간의 변화는 모른다.

은지는 에너지가 넘쳐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자는 편이다. 불을 끄고 옆에 누워서 토닥토닥하며 자장가를 불러줘야 겨우 잠이 든다. 유난히 땀이 많은 아이고, 하루에 한 번 동글동글한 똥을 눈다.

여섯 살 때부터 책을 줄줄 읽었는데, 요즘은 만화 삼국지를 반복해 읽고 있다. 틈만 나면 유치원에서 배운 윷놀이를 한다. 연거푸 모가 나오면 펄쩍펄쩍 뛰면서 환호한다. 며칠 전엔 앞니가 빠졌다. 밥 먹다가 밥풀이 하나씩 튀어나오면 은지도 우스운지 두 손으로 가리고 까르르 웃는다. “우리 집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물어보면 “은지요”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아이다. 은지가 첫걸음을 떼고, 말을 하고, 삐뚤빼뚤 해님같이 생긴 얼굴을 그려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컸다.

일곱 살 은지는 꼬박꼬박 따지고 원하는 걸 요구한다. 매일 치마를 입겠다고 하고, 리본 달린 구두를 신겠다 하고, 머리는 꼭 하나로 묶어달라고 한다. 요즘은 만화 삼국지에 빠져 무한반복하며 읽고 있다. [사진 배은희]

일곱 살 은지는 꼬박꼬박 따지고 원하는 걸 요구한다. 매일 치마를 입겠다고 하고, 리본 달린 구두를 신겠다 하고, 머리는 꼭 하나로 묶어달라고 한다. 요즘은 만화 삼국지에 빠져 무한반복하며 읽고 있다. [사진 배은희]

지금은 꼬박꼬박 따지고, 원하는 걸 요구하는 일곱 살이 됐다. 매일 치마를 입겠다고 하고, 리본 달린 구두를 신겠다고 하고, 머리는 꼭 하나로 묶어달라고 한다. 외식할 때는 바지락 칼국수나 돈가스, 고기를 먹겠다면서 미리 메뉴를 정한다.

은지를 키우면서 ‘엄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4남매를 기르신 친정 엄마와 두 아이를 기르며 수없이 갈등했던 나의 지난 시간이 자꾸 되새김질된다. 조금 더 느긋하게,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키웠더라면 하는 후회와 함께.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자식을 기르는 부모야말로 미래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 속 깊이 새겨야 한다. 자식들이 조금씩 나아짐으로써 인류와 이 세계의 미래는 조금씩 진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식을 기르는 일이 곧 미래를 돌보는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었다면, 갈등보다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자식들이 조금씩 나아짐으로써 인류와 세계의 미래가 조금씩 진보한다는 걸 알았다면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두 아이를 다 키우고, 다시 육아를 선택한 나는 이제야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주면서 한발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울 땐 일일이 설명하고 확인하고 훈계했는데, 은지는 스스로 탐색하고 알아가도록 기다려주려고 한다.

은지가 유치원에서 쓴 편지. 유치원에서 썼다며 은지가 종이 한장을 불쑥 내밀었다. '엄마 저를 키워주시고 저를 위해 밥도 주고 너무 고마워요'. 꼭꼭 눌러 쓴 은지의 편지에 활짝 웃으며 나는 인류와 미래가 진보하는 엄청난 일에 동참하고 있는 거라고 되뇌였다. [사진 배은희]

은지가 유치원에서 쓴 편지. 유치원에서 썼다며 은지가 종이 한장을 불쑥 내밀었다. '엄마 저를 키워주시고 저를 위해 밥도 주고 너무 고마워요'. 꼭꼭 눌러 쓴 은지의 편지에 활짝 웃으며 나는 인류와 미래가 진보하는 엄청난 일에 동참하고 있는 거라고 되뇌였다. [사진 배은희]

경력에도 들어가지 않는 ‘엄마’, 지친 육아에 무력함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미래를 돌보고 있는 거라고, 나는 인류와 미래가 진보하는 엄청난 일에 동참하고 있는 거라고 되뇌려고 한다. 스스로 추스르며 일어나야 하는 외로운 자리 ‘엄마’. 너무 당연하게, 너무 뻔뻔하게 요구했던 내 모습을 회상하며 그 무명의 자리를 오래도록 감당해 준 세상의 엄마가 위대해 보인다.

우리 집이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보냈다면, 그건 엄마가 엄마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따끈한 밥에 찌개까지 먹을 수 있었다면 그건 엄마의 시간과 수고가 한소끔 푹 끓여진 것이다.

엄마는 전문직이다. 때론 홀대받고 때론 당연시해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진짜 전문직이다. 이번 추석엔 나를 가장 잘 알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엄마께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거로.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사정(이혼, 질병, 수감 등)으로 친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아동에게 다른 가정을 제공하여 보호하는 아동복지제도.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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