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청명한 하늘에 마음은 먹구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예로부터 민족 사명절(四名節)은 설, 단오, 추석, 동지, 그중 으뜸이 추석이었다. 여름의 땡볕과 산골 물소리가 잦아들면 산천초목에 산고(産苦)의 결실이 저마다 색깔을 드러내는 절기. 폭풍과 폭우에 시달린 기억이 곡식 낱알에 스며들어 고된 노동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은근히 일러주는 추석의 달빛을 누가 외면할 수 있으랴. 조상 묘소에 머리를 조아려 묵언의 위로라도 받고 싶은데 마스크 쓴 얼굴로 헷갈리게 하는 것은 불경죄일 터. 게다가 “불효자는 ‘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만류하는 시국이니 고향길을 나설 수도 없다. 이번 추석엔 방콕이다. 송구하지 않을 충분한 사유가 있다.

코로나와 정쟁에 시달린 심신을 #은은한 달빛에 위로받고 싶은 추석 #진의가 민심 닿지 못하면 무민 통치 #허물이 재앙을 부를까 따져볼 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제사장에 해당하는 조선의 군주도 천재지변엔 추석제(祭)와 배릉(拜陵)을 과감하게 연기한 사례가 많았다. 기근, 홍수, 역병에 유난히 시달렸던 숙종이 특히 그랬다. 숙종 조는 지구적 소빙기와 겹쳤다. 숙종 44년(1718), 콜레라가 도성을 습격했다. 신료의 현장보고는 참혹했다.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넘쳐 강시(殭屍)가 도로에 서로 잇대 있다고 했다. 호열자는 일 년 넘게 도성민을 괴롭혔다. 이듬해 비변사가 한성부 상황을 올렸다. 온 가족 몰사가 1천 1백호, 독거사 4백 18호에 달하는데 감염을 두려워한 관원들이 손을 놓아 방치돼 있다 했다. 그해 군주는 제례는 물론 참배를 취소했다.

추석제와 배릉은 조선 헌법인 『경국대전』에 명시된 것이지만 참배행렬로 추수 못 한 밭이 망가질까 저어해서, 잇단 재변과 흉년에 굶주린 백성이 안쓰러워 국가 예법을 거둔 군주가 많았다. 민유방본(民有邦本)에 철저했던 것이다. 인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안민(安民) 정치가 아니었다. 중종 19년(1524) 추석, 참배를 나서는 임금을 대신들이 말렸다. 여역(癘疫)에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 재난이 전국을 휩쓰는 시국에는 궁중에 고요히 수성(修省)하고 하늘의 견책에 답하는 것이 예치(禮治)의 근본이라고. 어두운 중세에 역병과 재변은 ‘하늘의 견책’이었고, 군주가 인민을 대신해 오롯이 감당해야 할 천벌이었다.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는 재변은 수재와 한재, 기근과 역병 등 다양했다. 심지어는 며칠간 휘몰아치는 황사와 토우(土雨)는 덕치의 결핍이었고, 개기일식과 월식조차 군주가 수기(修己)를 멀리한 징표로 여겼다. 해와 달이 박식(薄蝕)하고, 여름에 눈이 오고 겨울에 천둥 치며 안개가 어둡게 끼는 것, 기괴한 별이 무리를 지었다가 혜성이 떨어지는 것이 변괴의 전형이었다. 그러면 군주는 종묘사직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쑥덕대는 신료들은 입을 모아 임금께 진언했다. 전조(田租)를 감하고 군포를 면제하고 장사치들의 세금을 가볍게 하라고 말이다.

그래도 재변이 잇달자 숙종 3년(1677) 영의정 허목(許穆)이 아뢨다. 군주의 성의가 진실하지 않았다! 숙종이 물었다. 어찌해야 진의가 하늘에 닿아 견책하지 않겠는가? 허목의 진차(進箚)는 안민, 백성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것. “임금의 효(孝)는 백성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보전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니, 종 치고 북 울리며 피리 불면서 음식을 보내는 것은 다만 그 다음일 뿐입니다”라고.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대한민국, 도심은 자주 텅 비었으며 학교, 상점, 대형마트, 식당들은 문을 열었다 닫았기를 반복했다. 창궐하는 코로나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시정(市井)을 미증유의 특급 경제난이 덮쳤다. 그러는 사이 국회는 폭등한 집값에 놀라 세금을 두어 배 올렸고, 재난지원금 생색을 내느라 종 치고 북 울리고 피리 불면서 소란한 시간을 보냈다. 정쟁은 여전했다. 추(秋) 예조판서의 무치한 행동을 두둔하려 각부 대신들과 당상들이 무리 지어 상소문을 올렸는데 세간의 빈축을 샀다.

그럼에도 조정은 맞불작전을 구사했다. 케케묵은 미제 사건을 들췄고, ‘기업규제 3법’에 집단소송법,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초(草)해 대기업집단을 포박했다. 유치하고 섬뜩했다. 기업과 자본에 대한 80년대식 적개심을 불태울 수백 개 규제법안 중 몇 가지를 선보인 것에 불과했으나 상인과 기업인들은 아예 돈 벌 의욕을 버렸고 연약한 백성들은 어차피 쓸 돈이 말라 곤궁해진 터였다.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위민정치는 외민(畏民)에서 비롯된다. 민을 두려워하는 경외심. 그런데 권력은 소소한 쟁론에도 기어이 이기려 하고, 21세기 경제시민과 천지개벽한 21세기 자본주의를 제조시대의 마구간에 묶어두려 하니 외민은커녕 무민(誣民)이다.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활기가 공평하게 시들고, 미래는 공평하게 막막하고 암담해졌다. 허목이 숙종께 아뢨다. 허물이 쌓이면 원망을 부르고 원망은 재난을, 재난은 재앙이 된다고. 그러나 조정은 허물을 알지 못하고, 말이 민심에 닿지 않으니 백성을 어찌 안심시키리오. 마음 한켠이 떨어져 나갈밖에. 하늘은 청명한데, 왜 마음엔 먹구름인가? 코로나 탓만은 아닐 터에 이번 추석엔 방콕에 수성하면서 찬찬히 따져 볼 일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