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의 변명은 일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다. 마치 뉴턴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양자의 세계와 같다.
‘양자(量子)’의 ‘量’은 ‘헤아리거나 짐작한다’는 뜻으로, 고전물리학처럼 연속값을 갖지 않는다. 닐스 보어에 따르면 원자핵을 도는 전자는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할 때 그냥 도약한다(퀀텀 점프). 양자역학에선 빛도 하나의 알갱이(광자·光子)며, 입자도 파동의 성격을 띤다. 관측 순간 전자는 광자에 부딪혀 상태가 달라지고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그 때문에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오직 확률로만 가능하다(불확정성의 원리).
추미애는 자신과 남편 모두 민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국방부엔 전화 기록이 버젓이 남아 있다. 심지어 전화 건 사람은 여성인데, 기록엔 남편 이름으로 기재돼 있다(신원식 국민의힘 의원). 자신이면서 남편이기도 한 ‘양자(兩者)’란 이야기인가.
또 2017년 1월 추미애의 정치자금 지출내역에는 논산훈련소 인근 정육식당에서 ‘의원간담회’를 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비슷한 시각 파주 군부대에선 전투복을 입고 사진 찍었다. 퀀텀 점프했거나, ‘양자얽힘’을 이용해 손오공 같은 분신술을 써야만 가능한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고양이 사고실험으로 양자역학을 반박했다. 상자 속에 고양이 한 마리와 방사성 물질이 있다. 1시간에 50%의 확률로 핵분열 하는데, 그땐 독이 든 유리병이 깨져 고양이가 죽는다. 1시간 후 고양이는 어떤 상태일까. 양자역학에 따르면 고양이는 반은 살고 반은 죽은 존재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살았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연구자의 ‘관측’과 무관하게(상자를 열어보기 전에) 생사는 이미 결정돼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편을 들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애매한 확률로 자연법칙을 오도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추미애 부부가 직접 민원을 했든, 보좌관을 시켰든 ‘엄마 찬스’를 쓴 건 반박할 수 없는 팩트다. 뻔한 사실마저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애매한 답변으로 물타기 하는 행태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행태와 무엇이 다를까. ‘추미애=양자’가 아니라면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국민을 농락하지 말라.
자연을 설명하는 뉴턴의 운동법칙 중 두 번째는 ‘힘(F)=질량(M)X가속도(A)’다. 인간 세상에선 성과(Fulfill)는 재능(Merit)과 노력(Attempt)에 비례한다고 바꿔도 틀리지 않다. 양자의 세계면 모를까, 추미애·조국의 ‘부모찬스’는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