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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기후변화 정책, 일부 이익보다 원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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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실행 없는 비전은 백일몽이고, 비전 없는 실행은 악몽’이란 일본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비슷하다.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지구 환경을 위한 절대적인 당위성을 갖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해 상충으로 인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되는 그린뉴딜 사업이 그렇다. 훌륭한 어젠다(사회적 의제)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정권 차원의 게이트로 비화하며 본래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미 신재생에너지 업계에서도 일부 시민단체가 기후변화를 ‘명패’로 사세를 확장해 이익집단이 됐다는 불신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례 없는 공공예산 투입은 위태로워 보인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갈지(之)자’ 행보도 마찬가지다. 불가피한 이유로 배출권 거래제를 채택했지만 정책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있다. 예컨대 기업 온실가스 담당자를 대상으로 “탄소세와 배출권 거래제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는 식의 여론조사가 만연하다. 당연히 해당 기업의 주주들은 기업 재무에 부정적인 영향이 클 탄소세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출권 산정 체계의 복잡함 때문에 탄소세를 선호한다는 일선 담당자의 의견을 일반 여론인 양 호도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권리인 배출권의 분배 기준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정받는 방식이 있다. 동일 업종 간에 효율을 우선순위로 해서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BM)이다. 그런데 공부 잘하는 친구가 전학 오면 내신등급을 받기 어려워져 전입생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우수한 온실가스 저감 기술을 가진 기업이 오히려 동종 기업들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방해를 받는다. 우열을 비교하는 이 제도의 속성에 따른 현상이다.

하지만 직권으로 판단해줘야 할 환경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기존 업계의 불만이 부담스러워 경쟁 업체끼리 합의를 종용하는 상황이다. 제도의 원칙과 이해 관계자들의 민원을 정부가 구분하지 못한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절대 가치가 정책 집행 과정의 잡음으로 인해 그 뜻이 왜곡되고 추진 동력마저 잃을까 우려된다. 과거에도 정책 원칙을 지키기보다 이해 관계자에게 휘둘려 정책 지향점이 흐려지는 사례가 여럿 있었다. 결국 목소리 큰 이해 관계자들이 원하는 방향, 즉 원칙에서 벗어난 정책이 민의로 포장된다. 조용하다고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다. 시끄럽더라도 확고한 전문성과 원칙을 기반으로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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