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광주 독감백신은 못믿겠다" 주말 비행기 타고 서울 주사 원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무료 독감 백신 접종을 재개한지 3일째인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Y소아청소년과 내부. 문희철 기자

정부가 무료 독감 백신 접종을 재개한지 3일째인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Y소아청소년과 내부. 문희철 기자

“요즘 뉴스 보니 광주(에서 접종하는 것)는 아무래도 불안해서…서울이 낫겠다 싶어서요.”

27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인근 A소아과에서 만난 이모(40)씨 얘기다. 광주광역시 공기업에서 일하는 그는 26일 2·6세 자녀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상경했다. 자녀와 함께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부산·광주와 전라남·북도에서 일부 백신이 상온에서 유통된 적이 있다는 보도를 봤다”며 “오전에 서울에서 독감 예방 접종을 마치고 저녁 비행기로 되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주광역시는 “상온에 노출된 백신은 질병관리청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용이 중지된 상태”라며 “현재 접종 가능한 무료 백신은 이와 다른 백신으로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약품”이라고 설명했다.

문 연 지 16분 만에 28명 대기

27일 서울 강서구 Y소아과에서 4가 독감 백신 예방 접종을 한 어린이. 문희철 기자

27일 서울 강서구 Y소아과에서 4가 독감 백신 예방 접종을 한 어린이. 문희철 기자

지난 22일 국가필수예방접종(NIP)용 독감 백신 일부가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돼 국가 예방접종 사업이 전격 중단됐다. 정부는 25일부터 만12세 이하 어린이와 임신부를 대상으로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재개했다. 금요일 오후부터 예방 접종을 다시 시작한 탓에 주말인 26·27일에도 문을 여는 소아과를 중심으로 독감을 예방하려는 사람이 몰렸다.

이날 오전 10시 20분경 서울 강서구 B소아과는 독감 백신을 맞으려는 손님으로 북적였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9시부터 진료를 시작했는데 대부분이 독감 백신 예방 접종을 원하는 손님이었다”며 “지금까지 45명이 방문했고, 현재 대기인원은 16명”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만난 김모(36)씨는 “아이가 배탈이 나면 안 맞는 게 좋다기에 내일 다시 올 계획”이라며 “의사 선생님이 내일 와도 백신은 넉넉하다고 하지만 불안해서 아침 일찍 다시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10시 30분경 서울 강서구 Y소아청소년과. 일요일인데도 28명이 대기중이었다. [똑닥 캡쳐]

27일 오전 10시 30분경 서울 강서구 Y소아청소년과. 일요일인데도 28명이 대기중이었다. [똑닥 캡쳐]

인근에서 일요일 독감 백신 접종이 가능한 C소아청소년과는 이날 10시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전국 병·의원 예약접수 애플리케이션 ‘똑닥’을 기준으로, 이 의원은 진료를 시작한 지 16분 만에 대기자 수 28명을 기록했다.

대기 중이던 김모(39)씨는 “어린이들이 주사 맞기 싫다고 도망 다니거나 울고 소리 지르는 통에 진료실 내부는 패닉(panic·소란스러운 상태)”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열이 나거나 기침만 해도 유치원·어린이집에 보내기 어려운데, 애들이 독감에 걸리면 큰일이라 주말에도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말에 자녀 손을 잡고 나온 건 독감 유행을 앞두고 자칫 백신 접종이 늦어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보통 독감은 11월 초순부터 유행한다. 늦어도 10월 중순까지는 독감 접종을 하는 게 좋다. 접종 후 2주가 지나야 독감 백신의 효과가 나타나서다.

서울 강서구 D의원 원장은 “안전하게 10월 둘째 주까지 맞으면 좋은데 중간에 추석 연휴가 끼어있는 데다, 독감 백신 상온 노출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다들 마음이 급한 것 같다”며 “백신 접종 예약 전화가 오면 추석 이후로 천천히 방문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병원을 찾아온 손님 대부분이 ‘이왕 온 김에 주사를 맞고 가겠다’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무료 백신 말고, 유료 접종해주세요.”

27일 서울 강서구 한 소아과. 광주광역시에서도 독감 백신 예방 접종을 맞으러 왔다. 문희철 기자

27일 서울 강서구 한 소아과. 광주광역시에서도 독감 백신 예방 접종을 맞으러 왔다. 문희철 기자

26일 D의원에 방문한 박모(43)씨는 “원래 토요일은 오후 1시에 의원 문을 닫는다. 자녀 백신 접종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 오후 2시에도 의원이 문을 열고 있더라”며 “덕분에 우리 가족도 예방 접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E소아과에서 6세 쌍둥이 자녀를 대상으로 독감 예방 접종을 한 박모(40)씨도 “대기 순번이 45번이었지만, 독감 백신 일부가 상온에 노출됐다기에 혹시 몰라서 장시간 기다렸다가 예방 접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무료 접종 대신 유료 접종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 D의원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무료 접종은 ‘물 백신’ 아니냐며 한사코 유료(3만5000원)로 접종을 원했다”며 “유료 접종 백신과 무료 접종 백신은 동일한 제품이라고 몇 차례 설득한 끝에 무료 접종을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또 “주사 찌르기 전에 꼭 ‘상온 노출 백신 아니죠?’라거나 ‘4가 독감 백신 맞죠?’라고 물어보는 환자가 많다”며 “지난해와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4가 독감 백신은 한 번 접종해서 4종류 독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차세대 백신이다.

서울 강서구 한 소아과에서 공고한 독감 예방 접종 안내문. 문희철 기자

서울 강서구 한 소아과에서 공고한 독감 예방 접종 안내문. 문희철 기자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독감 백신 제조사가 시행한 안정성 평가에서 백신은 상온(25℃)에서 최소 14일, 최대 6개월까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결과는 백신이 25℃에서 2∼4주, 37℃에서 24시간 안정을 유지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와도 맥을 같이 한다.

다만 질병관리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이번 독감 백신 유통·운송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검사 결과는 2주쯤 뒤 나올 예정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