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정도전, 태조에게 “임금이 백성 괴롭히면 안 돼”

중앙일보

입력 2020.09.27 13:00

업데이트 2020.09.28 10:51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26)

강녕전. [사진 이향우]

강녕전. [사진 이향우]

향오문(嚮五門)과 강녕전(康寧殿)

사정전을 뒤로 돌아 향오문(嚮五門)으로 들어서면 왕의 개인 생활공간이 나온다. 강녕전(康寧殿)부터 내전(內典)영역이 시작된다. 강녕전의 문이름 향오(嚮五)는 오복을 향함이라는 뜻이다. 정문 향오문을 통해 강녕전 마당으로 들어서면 묵직하게 큰 집이 여러 채 눈에 들어온다. 마당 중앙에 꽉 차게 앉은 강녕전은 상당히 큰 규모의 전각이다. 월대위에 우뚝 세운 왕의 개인 처소는 그 위엄과 화려함이 왕의 권위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은 내내 백성을 향한 절검의 자세를 요구받았고 하늘 아래 군자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므로 사치를 극도로 경계했다.

정도전은 말했다.
“궁궐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조선경국전』

정도전의 말은 조선의 궁궐제도뿐 아니라 옛사람이 집을 지을 때도 의도적으로 개입시켰던 사상이기도 하다. 바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과 직결되는 사상이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의 근원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백제 본기 온조왕 조 15년 기록에 나오는 ‘춘정월 작신궁실 검이불루 화이불치(春正月 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춘정월에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이다.

태조 4년(1395년) 10월 7일 왕은 판삼사사(삼사의 으뜸벼슬) 정도전에게 분부해 새 궁궐 전각의 이름을 짓게 했다. 태조는 즉위 3년 만에 도읍을 한양에 정해 먼저 종묘를 세운 다음에 궁궐을 짓고, 이듬해에는 친히 곤복(袞服)과 면류관을 쓰고 선대의 왕과 왕후를 신묘(新廟)에서 제향을 올리며,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왕은 술이 세 순배 되어 정도전에게 분부하기를 “지금 도읍을 정해 종묘에 제향을 올리고 새 궁궐의 낙성을 고하게 되매, 가상하게 여겨 군신에게 여기에서 잔치를 베푸노니, 그대는 마땅히 궁전(宮殿)의 이름을 빨리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한없이 아름답게 하라”고 했다.

정도전은 전각의 이름을 짓고 아울러 이름 지은 의의를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연침(燕寢: 왕이 평상시에 한가롭게 거처하던 집)을 강녕전이라 하고, 동쪽에 있는 소침(小寢)을 연생전(延生殿)이라 하고, 서 소침을 경성전(慶成殿)이라 했다.

그리고 정도전은 새로 지은 경복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궁궐이란 것은 임금이 정사하는 곳이요 사방에서 우러러보는 곳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성을 보이게 하고 그 명칭을 아름답게 하여 보고 감동되게 하여야 합니다.”

정도전은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을 모시리라’라는 시(詩)를 외우고,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 짓기를 청하니, 임금과 그 자손이 만년 태평의 업(業)을 누리시라 했다. 그러나 정도전은 임금께 “『춘추(春秋)』에 ‘백성을 중히 여기고 건축을 삼가라’ 했으니, 임금이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임금은 넓은 방에서 한가히 거처할 때에는 빈한한 선비를 도울 생각을 하고, 전각에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되면 맑고 그늘진 것을 생각해 본 뒤에 거의 만백성의 봉양하는데 저버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도전은 전각의 이름을 짓고 이름 지은 의의를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연침을 강녕전이라 하고, 동쪽에 있는 소침을 연생전이라 하고, 서 소침을 경성전이라 했다. 사진은 강녕전. [중앙포토]

정도전은 전각의 이름을 짓고 이름 지은 의의를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연침을 강녕전이라 하고, 동쪽에 있는 소침을 연생전이라 하고, 서 소침을 경성전이라 했다. 사진은 강녕전. [중앙포토]

『서경』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오복은 군자가 누리는 다섯 가지 복록으로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이다. 오복을 풀이하면 수(壽)는 오복의 하나로 오래 사는 일, 부(富)는 넉넉한 재산, 강녕(康寧) 은 편안하고 안락함, 유호덕(攸好德)은 군자가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일, 고종명(考終命)은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에 이른다는 의미다. 이 오복 중에 세 번째가 바로 강녕이다. 강녕은 다섯의 중심이며 그 전체를 대표한다.

정도전이 왕을 향해 이르기를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아서 황극(皇極: 편파가 없는 곧고 바른길, 또는 제왕의 자리)을 세우게 되면, 능히 오복을 모두 누릴 수 있습니다. 즉 강녕이란 오복 중의 하나이니 그 중간을 들어서 그 남은 네 가지 복을 다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바루고(비뚤어지지 않도록 곧게 하고) 덕을 닦는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보는 곳에 있으니 역시 애써야 되는 것입니다. 한가하고 편안하게 혼자 거처할 때에는 너무 안일한 데에 지나쳐, 경계하는 마음이 번번이 게으른 데 이를 것입니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바가 있고 덕이 닦이지 못한 바가 있으면, 황극이 세워지지 않고 오복이 이지러질 것입니다.”

임금이 자신의 마음을 반듯하게 하고 덕을 쌓는 일이 많은 사람에게도 그 본을 세우는 일이니 게을리하지 말고 애써 게을러지지 않도록 해야만 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왕에게 참 어려운 주문을 하고 있다.

옛날 위나라 무공(武公)은 “네가 군자와 벗하는 것을 보니 너의 얼굴을 상냥하고 부드럽게 하고, 잘못이 있을까 삼가더니 혼자 방에 있어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는구나”고 했다. 정도전은 무공의 경계하고 근신함이 그러하였으므로 90을 넘어 향수(복을 누림)했으니, 왕께서도 바로 그 황극을 세우고 오복을 누린 것의 밝은 예라고 했다. 그리고 또 대부분이 공부를 쌓는 것은 원래가 한가하고 아무도 없는 혼자 있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일렀다. 그러하니 원컨대 임금께서는 무공의 시를 본받아 안일한 것을 경계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두어 황극의 복을 누리시면, 성자신손(聖子神孫)이 계승되어 천만대를 전할 터이니 연침을 강녕전이라 이름 지었다고 했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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