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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19년 전 ‘날 밟아줘’라고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노래하는 불빛들”
인디밴드 크라잉넛이 꼽은 ‘내 인생의 노랫말’입니다. 2001년 발매된 3집 ‘하수연가’의 타이틀곡 ‘밤이 깊었네’는 1995년 홍대 클럽 드럭에서 데뷔한 이들을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준 곡입니다. 1집 ‘말달리자’(1998)와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1999)이 노래방 애창곡이었다면, ‘밤이 깊었네’는 라디오를 타고 방방곡곡으로 흘러나가 이들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지난달 발매된 25주년 베스트앨범에서도 이 세 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했습니다.

[내 인생의 노랫말]

한경록(베이스)은 ‘밤이 깊었네’가 탄생하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제 방에 조그만 창문이 하나 있었어요. 연필로 공책에 쓰고 있었는데 글자가 희미하게 잘 안 보이는 거예요. 어느덧 어두워져서 햇빛이 안 들어온 거죠. 그렇게 ‘어 밤이 깊었네 벌써’라고 말하면서 통기타로 만든 곡이에요. 쌍둥이네 집에 가서 바로 데모를 만들었어요.”

쌍둥이 형제 이상면(기타)과 이상혁(드럼)은 “그때 홈레코딩 기계를 처음 사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눌러봤다”고 말했습니다. 김인수(아코디언·키보드)도 “건반에 있는 모든 소리를 다 넣어봤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마지막 가사가 ‘날 밟아줘’였어요. 만화 『멋지다 마사루』에서 따온 건데 사장님이 고래고래 화를 내면서 다 잘 써놓고 마지막에 이게 뭐냐고 반대하는 바람에 ‘날 안아줘’로 바뀌었죠.”

서울 홍대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크라잉넛. 1세대 인디밴드의 대표주자다. 장진영 기자

서울 홍대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크라잉넛. 1세대 인디밴드의 대표주자다. 장진영 기자

박윤식(보컬)까지 서울 동부이촌동 한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네 친구인 네 사람이 3집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박학다식한 김인수의 합류로 음악적으로 한층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혁은 “이전의 크라잉넛이 스트레이트한 펑크에 국한돼 있었다면 형이 들어오면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경록은 “한 사람이 계속 8집까지 작사·작곡을 했다면 지루했을 텐데 멤버들의 스타일이 다양해서 참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인수 형은 메탈 하드코어부터 민속 음악까지 스펙트럼이 정말 넓어요. 상혁이는 기발하고 독특한 멜로디를 잘 쓰고, 상면이는 몽상가적인 음악을 잘 만들죠.” 10년도 버티기 힘들다는 인디신에서 이들이 25년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합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영상=심정보·장진영·정수경

내 인생의 노랫말

가수들이 직접 꼽은 자신의 노랫말입니다. 시대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가수와 청중에게 울림이 컸던 인생의 노랫말을 가수의 목소리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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