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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연설서 "너희 나라는 망한다"…독설 퍼부은 그들의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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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유엔·UN)이 10월 24일로 창설 75주년을 맞는다. 올해 제75차 유엔총회가 지난 9월 15일 개막했다. 1945년 51개국으로 출발했던 유엔은 현재 193개의 회원국과 바티칸·팔레스타인의 2개 옵서버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이자 다자외교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엔이 오는 10월 24일로 창설 75주년을 맞는다.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3일 제75차 유엔총회의 부속행사로 열린 유엔 보건안보우호국 그룹 고위급회의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외교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캡처]

유엔이 오는 10월 24일로 창설 75주년을 맞는다.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3일 제75차 유엔총회의 부속행사로 열린 유엔 보건안보우호국 그룹 고위급회의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외교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캡처]

유엔 창설 75주년, 첫 화상 총회 연설
유엔은 유엔총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 사무국, 유엔 경제사회 이사회, 국제 법원 등으로 이뤄졌다. 이 중에서 유엔총회는 모든 회원국이 참가해 의안을 심의하고 토론을 진행한다. 유엔총회는 매년 9~12월에 열린다. 올해 9월 15일에 개막한 유엔총회는 22일부터 회원국 정상과 수석대표가 참가하는 일반토의가 진행 중이다. 유엔총회 연설로 불리는 행사다. 올해 제75차 유엔총회에선 코로나 19 때문에 정상 연설이 모두 사전 녹화돼 유엔본부의 총회장에서 화면으로 제공됐다. 올해는 미국까지 갈 필요가 없어 각국 정상들이 부담 없이 연설에 나설 수 있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녹화 연설은 한국시각 15일 녹화돼 23일 오전 1시 26분에 시작해 42분까지 총회장에서 상영됐다.
재미난 것은 지난 75년간 유엔총회에서 이뤄진 국가원수나 정부 수반의 연설에선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국제관계학·국제정치학에서 국제사회를 동일한 규범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무정부 상태’로 전제하고 개별 국가는 국익을 위해 투쟁한다고 보는데 유엔총회 연설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구두로 탁자를 치고, 특정 국가나 지도자를 “악마”라고 증오하며, “너희는 망할 것”이라고 저주하기도 했다. 10월 24일로 창설 75주년을 맞는 유엔에서 그동안 열렸던 기막힌 총회 연설을 반추해본다.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 이날 흐루쇼프는 필리핀 대표가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r가들의 자유와 인권 문제를 거론한 것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연설 도중 구두를 벗어 탁자를 쳤다. [중앙포토]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 이날 흐루쇼프는 필리핀 대표가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r가들의 자유와 인권 문제를 거론한 것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연설 도중 구두를 벗어 탁자를 쳤다. [중앙포토]

소련 흐루쇼프, 구두 벗어 탁자 치며 호통

유엔 역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총회 연설을 한 인물을 꼽으라면 1960년 연단에 올랐던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제1서기일 것이다. 그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다 구두를 벗어 탁자를 치는 해프닝을 벌였다. 예의나 품위,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그의 무례하고 공격적인 행동은 전 세계에 흐루쇼프 개인을 넘어 소련이라는 나라, 그리고 공산 체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앞서 필리핀의 대표가 연설하면서 소련과 당시 소련의 위성국이던 동유럽 공산 국가들의 자유 억압과 인권 침해를 비난한 것이 원인이었다. 흐루쇼프는 “총 한 방 안 쏘고 미국을 점령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미국과 자유 세계에 대한 증오와 원한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저주는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흐루쇼프는 그 기세등등했던 유엔총회 연설을 한 지 4년 뒤인 1964년 10월 소련 최고 권력기관인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회의 궁정 반란으로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연금 생활자로 여생을 보냈다. 흐루쇼프를 몰아낸 핵심은 그가 키우다시피 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였다. 브레즈네프는 1982년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맡았으며 그의 시대에 소련의 체제 모순은 더욱 곪아 극에 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75년 전인 45년 10월24일 유엔 창설 #대한민국 건국, 6·25 유엔군 참전 #다자외교 장으로 3차대전 막아 #올해 화상연설, 트럼프만 직접 나서 #60년 자유 거론에 소련서기장 발끈 #카스트로, 4시간29분 반미·반전 열변 #아라파트, 올리브와 총 중 택일 요구 #차베스, “유황냄새” 부시 악마로 표현 #전통의상 가다피, 미 비난 탈레반 옹호 #유엔총회서 기염 토했지만 내치 무너져 #다양한 국제사회의 무정부성 보여줘 #라말라·툰베리 유엔본부 연설 감동적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장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제1서기(오른쪽)가 무장 혁명으로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장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제1서기(오른쪽)가 무장 혁명으로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4년 뒤 흐루쇼프 몰락, 30년 뒤 소련 붕괴

미국에 맞서며 냉전의 한 축을 형성했던 소련도 흐루쇼프의 유엔총회 연설 30년 뒤인 1991년 12월 해체돼 사라졌다. 그야말로 총 한 방 쏘아보지 못하고 카드로 만든 집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소련을 무너뜨린 건 총이나 탱크, 핵무기나 미사일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공산체제의 자체 모순으로 경제가 지지부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의 하나였다. 특히 만성적인 물자 부족으로 가게마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요공급의 법칙을 무시하고 국가가 가격과 공급을 직접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체제 모순의 현장이었다.
자유를 억압당하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끌려가서 인권침해를 당하는 체제에서는 누구도 문제를 지적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안할 수 없었다. 결국 1985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소련은 쿠데타가 시도됐다가 진압되는 등 혼란을 겪다가 무너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흐루쇼프의 유엔총회 탁자 연설은 자신이, 국가가, 체제가 안으로 곪아 터지는 것을 모른 채 무너지는 절벽 위에서 큰소리를 치는 행동의 상징이 됐다.

혁명으로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1960년 9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혁명으로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1960년 9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쿠바 카스트로, 4시간 29분 연설로 최장
같은 1960년 유엔총회에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총리는 무려 4시간 29분간 연설하며 최장 기록을 세웠다. 1976년 이후 국가평의회 의장이라는 직함으로 계속 집권한 카스트로는 2008년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은퇴할 때까지 권좌를 지켰다. 그는 자국 내에서도 수시로 이처럼 장시간 연설을 즐겨 했다. 아바나의 혁명 광장에 수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몇 시간씩 열변을 토하기 일쑤였다.
쿠바혁명을 일으켜 1959년 정권을 잡은 카스트로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혁명과 자신을 선전하고 미국과 서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무식하고 무례”하다고 맹비난했다.
카스트로는 이 연설에서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장시간에 걸쳐 설명했으며 특히 전쟁과 군비경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강대국이 전쟁으로 저개발 국가와 그 나라의 자원을 독점화한다고 주장하면서 군비경쟁을 비난했다. 군비경쟁은 독점 자본가들에게 큰 이익이 되며, 그들은 전쟁으로 발생한 시체들을 먹어치우는 까마귀와 같다고 비유했다.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 정책도 맹비난했다. 또 자신이 유엔에 오려다 미국의 방해로 항공기가 압류되면서 아바나로 돌아갔으며 흐루쇼프가 제공한 다른 비행기로 간신히 도착했다고 말했다.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중앙포토]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중앙포토]

참석 과정에서 소련 지원받고 친소로

카스트로가 이러한 유엔총회 연설을 한 지 불과 넉 달 뒤인 1961년 1월 임기 종료 직전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쿠바와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카스트로가 국유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포함한 외국 자산을 몰수하는 바람에 생긴 갈등이 큰 원인이었다. 아이젠하워의 후임으로 1961년 1월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석 달 뒤인 4월 쿠바 피그스 만 침공을 지시했다. 쿠바 망명자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실행한 피그스 만 침공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카스트로는 급속히 소련과 가까워졌으며 쿠바는 본격적으로 친소국가가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다. 1962년 10월 흐루쇼프가 쿠바에 단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수송선을 보내는 것이 미국의 U-2 정찰기에 포착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다. 인류가 가장 핵전쟁에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평가받는 사태다. 이 사태는 케네디가 소련과 접경한 터키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뒤로 물리는 조건으로 흐루쇼프가 핵미사일을 싣고 쿠바로 향하던 선박을 회항시키면서 끝났다.
그 뒤 쿠바는 미국의 제재 아래 소련의 지원으로 경제를 유지했지만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결국 쿠바는 2015년 7월 20일 미국에 상주하던 이익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하면서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뤘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때였다. 피델 카스트로 의장은 이듬해 11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중앙포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중앙포토]

테러단체 지정 PLO 아라파트도 연설 

1974년 유엔총회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비회원국 수뇌로는 처음 연설하는 기회를 얻었다. 아랍권의 요청과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여론에 힘입었다. PLO는 1964년 팔레스타인 독립국 설립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민간 항공기 납치를 비롯한 숱한 테러 행위로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테러 지원단체로 지목됐다. 1972년 뮌헨 여름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납치해 전원 살해한 검은 9월단도 PLO의 분파 조직이다. PLO에 대한 테러단체 지정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과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 해결을 추구하면서 1991년 해제됐다.

1969~2004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을 맡았던 야세르 아라파트.[중앙포토]

1969~2004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을 맡았던 야세르 아라파트.[중앙포토]

아라파트는 1969년 PLO의 제3대 의장을 맡아 200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5년간 자리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PLO를 사유화하고, 지원금 모금과 집행을 불투명하게 처리했으며, 자신과 부인이 사치 생활을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라파트는 총회 연설에서 “나는 평화의 올리브 가지와 자유 전사의 총을 모두 손에 들고 있다”며 “내가 올리브 가지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연설했다. 평화와 전쟁 중 택일을 요구하는 압박일 수도 있고, 간청일 수도 있는 내용이다.
이 연설이 이뤄진 1974년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로부터 자결권을 인정받고 유엔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팔레스타인은 자치정부를 구성했지만, 현재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하마스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파티로 양분됐다.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군이 철군했지만 봉쇄된 상태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이 사실상 점령하고 있다. 서안지구 여러 곳에 크고 작은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됐으며, 이스라엘은 이를 국제적으로 자국 영토로 인정받으려고 시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은 아직도 요원하다. 중동평화는 팔레스타인 외에 시리아나 예멘 등 다른 아랍국가와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단체 등의 변수로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최근 아랍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수교하면서 중동의 외교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잊혀간다는 평가도 있다.

2006년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며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놈 촘스키의 저서를 들어보이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막대한 석유 수익금을 바탕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실행했다. [중앙포토]

2006년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며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놈 촘스키의 저서를 들어보이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막대한 석유 수익금을 바탕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실행했다. [중앙포토]

베네수엘라 차베스, 부시를 악마로 표현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앞서 연설했던 연단에 서서 “유황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기독교나 유럽 문명권에서는 악마에게 지옥의 유황불에서 비롯한 유황 냄새가 난다고 여긴다. 부시 미 대통령을 ‘악마’로 표현한 셈이다. 차베스는 석유 수입을 바탕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연대를 확인하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추구하다 2013년 암으로 숨졌다.
베네수엘라는 이러한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으로 2012년 차베스 집권 말기부터 후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 중인 현재까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가 석유에 의존하다 보니 세계적인 저유가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으며, 지도자들의 만성적인 부패, 경쟁력 저하, 국가 지원 의존증의 심화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살인적인 인플레 등으로 경제가 국가부도 수준이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다 보니 사회도 불안해 범죄율이 높고 치안이 불안하다. 이런 와중에 마두로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자유 언론을 억압하고 장기 집권에 나서고 있다. 경제와 사회, 정치 불안이 심화하면서 수백만의 국민이 이웃 나라로 이주했다.

2009년 2월 에피오피아에 열린 제12차 아프리카 단결기구 총회에 참석한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모습. 베두인족 전통의상 차람이다. 이 회의애서 가다피는 잌기 1년의 아프리카 단결기구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그해 6~7월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총회를 열었다. 사진=미국 해군

2009년 2월 에피오피아에 열린 제12차 아프리카 단결기구 총회에 참석한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모습. 베두인족 전통의상 차람이다. 이 회의애서 가다피는 잌기 1년의 아프리카 단결기구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그해 6~7월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총회를 열었다. 사진=미국 해군

카다피, 베두인족 의상 입고 반미 연설

무아마르 카다피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2009년 9월, 유엔 사무국은 연단을 대대적으로 청소해야 했다. 카다피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사막에 사는 베두인족의 치렁치렁한 갈색 전통 의상에 검은색 베레모를 쓰고 나타났다. 1999년 대령 때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자신을 대령으로 부르며 군복을 즐겨 입었지만 1990년 이후에는 주로 베두인 의상을 입고 베레모나 전통모자를 쓰고 다녔다.
이날 카다피는 1시간 36분에 걸쳐 여러 문제를 산만하게 거론하며 연설을 이어갔다. 그가 지루한 연설을 계속하는 동안 앞에 앉아있던 각국 참석자들은 썰물 빠지듯 나가 버렸다.
카다피는 유엔헌장 사본을 하나 들고나와 찢으면서 “나는 이 문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유엔총회 연설을 하면서 유엔의 설립 목적과 권위를 대놓고 부인하며 모욕을 가한 셈이다. 이날 늦게 유엔총회 연설을 한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나는 유엔헌장을 재확인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지, 찢으려고 나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연설에서 미국이 수많은 전쟁을 막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이라크에서 벌어진 대량살상을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의 이슬람 군주국 수립은 지지했다. 미국이 벌였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난한 것이다.
카다피는 이 연설을 한 지 2년 뒤인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민중봉기로 정권을 잃고 자신은 숨어있던 도랑에서 반대파에 발각돼 잡혀가다가 한 청년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살해됐다. 시신은 푸줏간 냉장창고에 보관됐다. 당시 시작된 리비아 내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2014년 선거 과정의 분란으로 나라가 동서로 쪼개지고 3~4개의 정부가 대립하고 있다. 인구 630만의 리비아에선 현재 200개가 넘는 군벌과 정파가 난립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리 녹화한 총회 연설이 지난 22일 제75차 유엔총회장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는 유엔 사상 처음으로 각국 정상과 대표 연설이 화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리 녹화한 총회 연설이 지난 22일 제75차 유엔총회장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는 유엔 사상 처음으로 각국 정상과 대표 연설이 화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제사회 다양성·무정부성 반영  

흐루쇼프·카스트로·아라파트·차베스·카다피의 독특한 연설은 유엔총회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평가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타인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없다는 점에서 격을 떨어뜨렸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국제사회에선 이런 나라도 있고, 저런 지도자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한 규범 없이 무정부 상태인 국제사회에선 신념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며, 이들의 연설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
이처럼 스펙트럼이 넓은 지도자들의 유엔총회 연설은 유엔이 실질적으로 큰 힘을 가진 기관이 아니라 여러 나라가 느슨하게 연결된 국제기구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일부에서 정상들의 유엔총회 연설을 정치 연설, '독백 같은 웅변'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것이 연자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연설문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롬프터다. 장황한 즉흥 연설 대신 꼼꼼하게 원고를 준비해 차분하게 전달하는 것은 외교적 예의다. 문 대통령은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화상연설로 대신하면서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것이 연자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연설문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롬프터다. 장황한 즉흥 연설 대신 꼼꼼하게 원고를 준비해 차분하게 전달하는 것은 외교적 예의다. 문 대통령은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화상연설로 대신하면서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 유엔총회 연설 왜 못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국 지도자의 유엔총회 연설은 국제사회를 이끌고 바꾸는 의제 설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부 정치용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가원수나 정부 수반의 유엔총회 연설은 별다른 관심도 없이 지나간다. 연설문 작성자나 이를 읽으며 연설을 한 당사자에겐 힘들고 긴장되며, 때로는 자랑스러운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내용을 멋진 문장에 담은 유엔총회 연설문은 실제로는 상징적일 뿐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사전 녹화해 지난 22일 뉴욕 유엔본부의 거의 텅 비다시피 한 총회장에서 튼 것도 11월 3일의 선거를 염두에 둔 ‘내부 정치 행위’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가 유엔의 존엄성과 가치,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다자외교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유엔이 이처럼 열린 기관이고 총회 연설의 방향이 다양하기 때문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얼마든지 유엔총회에 나와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연설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고 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9년 9월 유엔본부에서 환경운동가 그레다 툰베리(왼쪽에서 둘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을 쏘아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9월 유엔본부에서 환경운동가 그레다 툰베리(왼쪽에서 둘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을 쏘아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성교육 말라라, 기후변화 툰베리 초점

국제 지도자로 인정받는 길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게 아니라 책임 있고 합리적인 다자외교의 장에서 실질적으로 국제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과 믿음을 실천하는 몇몇 개인이 유엔본부에서 한 연설들은 국가 지도자들이 유엔총회에서 한 연설보다 더욱 주목받는다.

파키스탄의 여성교육 및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수프자이. [사진제공=문학동네]

파키스탄의 여성교육 및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수프자이. [사진제공=문학동네]

여성교육 운동가로 15세 때인 2015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말라라 유수프자이가 2013년 7월 유엔본부에서 연설하며 교육 접근성 확대를 역설했던 일은 유엔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2019년 9월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세계 정상들을 비판한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도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19년 9월 23일 유엔본부에서 각국 정상과 산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분노한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EPA=연합뉴스]

2019년 9월 23일 유엔본부에서 각국 정상과 산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분노한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EPA=연합뉴스]

결국 유엔 연설에서 중요한 것은 고루한 답습이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혁신적인 사고, 아집 대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소통력, 그리고 선악을 구분하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합리성일 것이다. 혁신·소통·합리는 인류의 미래를 열어가고 평화와 자유·인권을 추구하는 유엔의 가치를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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