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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미' 유무에 정부 지원 갈린 단란주점·콜라텍·유흥주점

중앙일보

입력

신용보증재단(신보·소상공인에게 저금리 대출을 보증하는 공기업) 한 지점에서 일하는 A(27)씨. 그는 지난 17일 회사로부터 “유흥주점이 아닌 단란주점은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 넣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단란주점과 유흥주점의 차이는 '유흥종사자' 유무다. 식품위생법상 단란주점은 '손님이 노래를 부르는 행위'만 가능하다. 유흥주점은 여기에 더해 손님이 춤을 출 수 있고, 일명 '도우미'로 불리는 접객원(유흥 종사자)을 쓸 수 있다.

A씨는 "사실상 유흥업을 하는 단란주점이 많아 대출 심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우미가 상주하지 않다뿐이지 봉고차를 탄 여성 도우미가 산발적으로 오가는 게 단란주점 문화”라며 “구체적 기준도 없이 직원들이 도우미 유무를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심사에서 술을 판매하는 룸 형태 단란주점을 찾았지만, 여성 접객원이 오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며 "사실상 인원·매출 조건만 맞다면 모든 단란주점에 보증 승인을 한다"고 털어놨다.

지난 22일 박선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박선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가 추리는 대출 보증 대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이다. 신보 보증을 받은 소상공인은 2% 금리로 최대 1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정부는 원래 유흥주점·콜라텍·단란주점을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왔다. 하지만 22일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면서 단란주점 일부에 대해선 자금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여성 접객원이 없는 단란주점은 일반음식점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유흥업소 지원 때마다 "우리도 해달라"

A씨처럼 보증 심사 업무를 하는 신보 직원이 곤란해하는 이유는 유흥 성격 업종에 정책 자금을 지원할 때마다 "우리는 왜 안 되느냐"는 항의가 뒤따라서다. 실제 지난 22일 단란주점을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 포함하자 곧바로 유흥주점연합회와 전국콜라텍연합회가 "우리도 지원 대상에 넣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유흥주점은 "단란주점과 우리는 다를 바 없다", 콜라텍은 "우리는 유흥업소가 아닌 스포츠센터"라고 주장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유흥주점 2차 재난지원금 제외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한국유흥음식중앙회 회원과 유흥주점 관계자들. 뉴스1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유흥주점 2차 재난지원금 제외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한국유흥음식중앙회 회원과 유흥주점 관계자들. 뉴스1

중소기업벤처부 관계자는 "유흥성이 있는 업소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선정 기준은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세청이 정한 '세금 코드'를 활용하면 보증 심사자도 어렵지 않게 보증 대상을 구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출 안 되도 지원금은 받는 룸살롱

대신 정부는 22일 "유흥주점과 콜라텍에도 재난지원금(새희망자금) 2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유흥업소에 저금리 대출 혜택을 줄 수는 없지만, 현금 보조금은 주기로 했다. 정부 방역 조치로 매출 손실을 봤고, 단란주점과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유흥주점 측 주장을 일부 반영했다. 다만 종업원 수가 5인 이하여야 한다. 매출액은 유흥주점 10억원 이하, 콜라텍 30억원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유흥주점 재난지원금 지급을 규탄한 성명서. 이 단체는 단란주점 지원 기준이 여성접객원 유무인 점도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유흥주점 재난지원금 지급을 규탄한 성명서. 이 단체는 단란주점 지원 기준이 여성접객원 유무인 점도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같은 날 여성계는 "성차별·성 착취의 온상인 유흥주점 지원 결정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9개 단체 공동 성명문에서 “유흥업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 착취, 성범죄와 향응과 접대 등에 대해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할 국회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유흥주점 눈치를 보고 있다"며 "이번 지원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반인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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