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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9시간 침묵은 안되고 文은 되나, 180도 달라진 민주당

중앙일보

입력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소속 시·도지사 조찬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소속 시·도지사 조찬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부터 3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초 단위로 설명하라.”(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국가안보를 정략적으로 사용하지 말라.”(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북한의 민간인 사살 후 시신 훼손 사건에 대해 여야가 25일 내놓은 엇갈린 반응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대응에 문제가 있다며 정권 때리기에 나섰고, 민주당은 정략적 공세로 규정하며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야당의 공격과 여당의 방어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직후와 똑같은 구도다. 다만 12년 전 수세에 몰렸던 국민의힘이 이번엔 공세에 나섰고, 정부 책임을 추궁하던 민주당은 수세에 몰렸다.

김 위원장은 이날 조찬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도 구출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두 아이를 둔 가장이 살해당하고 불태워지는 것을 군은 6시간 동안 지켜보기만 한 것 같다”고 했다. 사망한 이모(47) 씨 실종이 확인된 21일부터 문 대통령 첫 지시가 나온 24일까지 대응이 미숙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침묵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국군의날 기념식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침묵하고 군이 지켜보는 사이에 북한군은 총을 쐈고 시신마저 태워 유기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부당한 정치공세’라는 논리로 방어에 나섰다. 설훈 의원은 YTN 라디오 ‘출발 새 아침’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 도발을 알고 연설을 했다는 것은 부당한 정치공세에 가짜뉴스”라고 했다. 김경협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평화정책 탓’이라거나 ‘종전선언 제안 탓’이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동원해 우리 정부와 군을 비난한다”고 했다.

청와대의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대응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청와대의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대응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2년 전에도 대통령 침묵 논란

2008년 7월 11일 새벽 4시 50분에 벌어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때도 대통령의 침묵이 쟁점이 됐다. 사건 발생 9시간 뒤인 이날 오후 2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18대 국회 개원식 연설에 나섰는데, 사건에 대한 언급 없이 “남북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재현 당시 통합민주당(민주당 전신) 의원은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이 대통령은 국회 개원연설 50분 전에 총격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았으나 그 내용을 대북관계와 관련된 발언 부분에 포함하지 않았다”며 “유감 표명과 함께 공동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면서 전면적인 남북대화 재개를 제안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이 발생한 7월 11일 오후 18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뒤는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이 발생한 7월 11일 오후 18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뒤는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 [중앙포토]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도 공격했다. “강경정책을 계속 고수해 과거에 쌓였던 신뢰마저 다 날려버렸다”(정세균 당시 대표)라거나 “현재 상황이야말로 ‘등신 외교’를 보고 있는 것”(송영길 당시 최고위원)이라면서다. 김부겸 당시 민주당 의원은 “상황적 원인은 북한군에 있어도 구조적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며 “이 정부가 내놓은 ‘비핵·개방·3000’(핵 포기 전제 경제지원정책)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당시 수세 입장이었다. 홍준표 당시 원내대표는 사건 사흘 뒤 “(북한이) 남북 합동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국민을 분노케 한다”면서도 “이 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돼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 공세가 거듭되자 한나라당은 ‘북한 때리기’를 최종 탈출구로 삼았다. 윤상현 당시 대변인은 “북한은 무고한 여성 관광객을 골라 등 뒤에서 무자비한 총질을 해 댔다. 인륜적 범죄 행위”라고 했다.

박왕자 씨 사건이 일어난지 이틀만인 2008년 7월 13일,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송영길 최고위원이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박왕자씨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왕자 씨 사건이 일어난지 이틀만인 2008년 7월 13일,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송영길 최고위원이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박왕자씨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와 다른 점은 현재 여권이 25일 전달된 북측의 통지문에 담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를 최종 탈출구로 삼고 있단 점이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두 번에 걸쳐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까지 통보했단 건 진일보”(김병기 민주당 의원)라면서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을 더는 비난하기 어려워졌고 정부·여당 역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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