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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는 男의사, 뒷담화하는 女" 코로나 다룬 中드라마 논란

중앙일보

입력

중국 중앙TV(CC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한 편이 성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논란의 드라마는 지난 17일부터 방영한 ‘가장 아름다운 역행자’ (最美逆行者)이다.

7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주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줄거리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돼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지난 17일 중국 CCTV에서 시작한 7부작 드라마. [CCTV 캡처]

지난 17일 중국 CCTV에서 시작한 7부작 드라마. [CCTV 캡처]

그러나 드라마는 첫 방송 직후부터 방영 중단 위기에 놓였다. 남성의 역할은 극대화한 반면 여성은 순종적이고, 비전문적인 캐릭터로만 그렸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다. 중국의 영화·드라마 평점 사이트인 더우반에서 이 드라마는 10점 만점에 2.4점을 받았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성차별 논란은 우한의 한 버스회사에서 일어난 장면에서 불거졌다. 봉쇄 지역에 지원 물품을 긴급 운송할 버스 기사를 모집하는 장면에서 남성 기사들은 열성적으로 자원했지만 여성 기사들은 회피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회사 대표가 한 여성 기사에게 긴급 운행을 부탁하자 여성이 “설 연휴를 가족들과 보내야 한다”며 거부한다.

이 밖에도 여성 의료진이 남성 의료진을 험담하는 장면, 여성 의료진이 병실에서 보호복과 마스크를 벗어 방역 지침을 어기는 장면 등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월 중국 인민망에 소개된 '전장에 나간 병사처럼 코로나19와 싸우는 중국의 간호사들'. [중국 인민망 캡처]

2월 중국 인민망에 소개된 '전장에 나간 병사처럼 코로나19와 싸우는 중국의 간호사들'. [중국 인민망 캡처]

이렇다 보니 제작진이 중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주의를 앞세워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화 평론가 스원쉐는 “제작진은 가족과 개인의 감동적인 사연을 부각하기 위해 여성을 비하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에 반발한 네티즌은 코로나19 영웅으로 주목받았던 여성들을 부각하기도 한다. 의사 아이펀(艾芬)과 소설가 팡팡(方方)이 대표적이다. 아이판은 우한 중앙병원에서 근무하며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고발했고, 팡팡은 봉쇄된 도시의 실상을 블로그에 폭로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또 우한의 한 버스 회사는 여성 버스 운전사들이 야간에 도시를 돌며 물품을 전달하는 사진을 공개하며 “드라마 내용은 모두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두고 한 네티즌은 “마오쩌둥은 1950년대 중반 ‘여성이 하늘의 반을 받든다’(妇女要顶半辺天) 는 슬로건을 내걸고 양성평등을 주장했는데, 중국은 아직도 여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가 팡팡은 우한이 봉쇄된 직후인 1월 25일부터 3월 25일까지 매일 일기 형식으로 60편의 글을 써 중국 관료의 무능을 질타하고 봉쇄된 도시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우한 시민의 아픔을 대변했다. [중국 텅쉰망 캡처]

작가 팡팡은 우한이 봉쇄된 직후인 1월 25일부터 3월 25일까지 매일 일기 형식으로 60편의 글을 써 중국 관료의 무능을 질타하고 봉쇄된 도시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우한 시민의 아픔을 대변했다. [중국 텅쉰망 캡처]

실제 중국 현지 언론은 코로나19 사태에 여성의 역할을 치켜세운 바 있다. 지난 4월 차이나 데일리는 “의료진의 약 50%가 여성”이라고 소개했고, 5월에는 인민일보가 “코로나19 사태 최전선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 종사자 3분의 2가 여성”이라고 보도했다. 또 글로벌 타임스는 지난 2월 우한에 임시로 세워진 훠선산 병원과 레이선산 병원 건설 현장에서 여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제작진은 “창작자의 의도와 관객의 평가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제작진의 해명에도 비난이 계속되자 중국 당국은 20일 이 드라마의 평점 사이트를 폐쇄하고, 드라마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해시태그와 게시글을 삭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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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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