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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불법 침입자 현장 사살"…남북 진실공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과는 하지만 만행은 아니다.'
25일 북한이 통일전선부 명의로 보낸 전화통지문(전통문)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의미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47)에 총격을 가해 사망케 한 데 대해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사과했다. 하지만 북측이 덧붙인 짤막한 사건 경과는 우리 군의 설명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월북 의사까지 표시한 비무장 민간인을 상부의 명령을 받아 사살하고 불태웠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단지 검문에 불응한 '침입자'를 현장의 판단 아래 사살했다는 것이다. 양측의 주장이 맞부딪히는 건 크게 네 부분에서다.

북한 통전부가 밝힌 짤막한 사건 경위 #현장 판단의 우발적 사건임을 강조 #국제사회 비난 커지자 봉합시도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남북 정상간 친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남북 정상간 친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25일 오후 해경의 조사를 위해 인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다.[뉴스1}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25일 오후 해경의 조사를 위해 인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다.[뉴스1}

①“시신 소각 안 했다”
정부는 북한군이 해상에서 이씨에게 총격을 가한 뒤 기름을 붓고 태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인륜적인 만행'이란 비판을 쏟아진 결정적 대목이다. 반면 북한은 이날 ”10여발의 총격을 가한 뒤 10여m 접근해 수색했지만 정체불명 침입자는 없었다“며 ”많은 양의 혈흔이 있어 사살됐다고 판단하고 국가비상방역 차원에서 소각했다“고 주장했다. 총격을 가하긴 했지만 시신은 찾지 못했고, 방역 차원에서 해상에 불을 놓기는 했지만 시신 소각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② 서로 다른 사격시간
북한은 22일 저녁 황해남도 강령군 연안 수역(등산곶 인근)에서 이모씨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조업 중이던 어선에서 이모씨를 발견하고, 신고를 받은 북한군이 출동해 공포탄을 쏘자 도망가려 해 실사격을 했다는 주장이다. 순식간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22일 오후 3시 30분 이모씨를 발견한 북한군이 방독면을 착용하고 우선 접근했고, 이후 6시간 뒤인 이날 밤 9시 30분 상부의 지시를 받고 사격해 숨지게 한 뒤 40여분간 불태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③ 조사 뒤 처형 VS 조사거부 후 도주 시도
군 당국은 이 모씨가 북한군에 발견된 뒤 해상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통상 해상에 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배에 태우거나, 육지로 옮겨 조사를 하는 게 관례”라며 “북한은 당일 이씨를 발견한 뒤 육지에 들이지 않은 채 도망가지 못하도록 끈으로 신체 일부를 묶은 뒤 해상에서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모씨가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도주를 시도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단속(정지) 명령에 함구무언하고 불응해 두 발의 공포탄을 쏘자 놀라 엎드리면서 도주할 것 같은 상황이 조성됐다. (이씨가 타고 있던부유물을) 뒤짚으면서 몸에 뭔가 뒤집어쓰려는 모습도 있었다”는 게 북한 측의 주장이다. 조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④ 월북 의사 있었나
이모씨가 북한군에 발견된 직후 월북 의사를 밝혔는지에 대해서도 남북의 주장은 갈렸다. 군 당국은 “북한군이 실종자의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모씨가 ‘해상조사’ 과정에서 북한에 월북하겠다는 뜻을 밝힌 정황을 포착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날 전통문에 월북 의사 표명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날 전통문에 대해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문서에 미안하다는 표현을 담은 건 대단히 이례적”이라며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자 봉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우리 군당국이 언급한 '만행'에 대한 해명 성격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국제적 관례와 인도적 견지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군 안팎에서는 해상에서 표류하는 사람은 일단 함정이나 선박 위로 끌어 올려 응급조치를 취한 다음,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보편적인 인도주의적 관례인데 북한은 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물속에서 30시간 안팎 머물며 체력이 소진된 이씨가 망망대해에서 도주를 시도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이같은 봉합시도에도 진실공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당국자들은 24일 발표한 내용을 입증할 만한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 당국자는 “정부가 그 정도로 발표할 때에는 한 두가지의 첩보에 의존했겠냐”며 “정보자산 보호를 위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다양한 수단이 동원됐고,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북측에서 의도적으로 내용을 축소했거나, 일부 내용을 밝히지 않았거나 왜곡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며 “국방부에서 (24일) 발표한 내용은 굉장히 신뢰도가 높은 내용이었고, 사건의 정황을 잘못 파악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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