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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대놓고 ‘반도체 도발’···TSMC가 보여준 ‘中 다루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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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를 읽다 ⑬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화웨이와 중국

차이잉원 대만 총통(가운데)이 18일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차이 총통 왼쪽), 장중머우 전 TSMC 회장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대만 총통실 트위터]

차이잉원 대만 총통(가운데)이 18일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차이 총통 왼쪽), 장중머우 전 TSMC 회장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대만 총통실 트위터]

지난 18일 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다. 장신 서양인, 백발노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왼쪽의 서양인은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 오른쪽의 노인은 대만 TSMC 창업자 장중머우(張忠謀) 전 회장이다. 크라크 차관의 대만 방문을 환영하는 만찬 자리였다. 그는 미국과 대만이 1979년 단교한 이후 대만을 방문한 최고위급 미국 정부 인사다. 장 전 회장은 이날 만찬에 초대받은 유일한 기업인이다.

차이 총통의 의중이 반영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다. 중국 화웨이 반도체 생산을 전담하다시피 하던 TSMC는 미국 제재에 동참했다. 15일부터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중단했다.

제재 시작 3일 만에 크라크 차관이 대만을 방문했다.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 TSMC의 창업자가 왔다. 차이 총통은 이를 행사가 끝나자마자 공개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만이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고 선언한 거다. 중국을 향한 ‘반도체 도발’이다.

지난 18일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출격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H-6 폭격기.[사진 대만 국방부]

지난 18일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출격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H-6 폭격기.[사진 대만 국방부]

당연히 중국은 반발했다. 18일 부터 중국 군용기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수시로 출격시켜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장은 “미국 국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대만을 방문하면 중국군 전투기가 대만 섬 상공에서 훈련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런데 TSMC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미국 기술과 장비를 쓰는 기업에게 "화웨이와 거래하지 마라"고 하는 미국 정부의 ‘막무가내’가 제재의 근본 원인이긴 하다. 그럼에도 TSMC 창업자가 이런 미국 정부 요인의 대만 방문을 공식 환영했다. 이에 대해 유감 표시를 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TSMC와 척을 질 수 없어서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장중머우 전 회장이 참석한 18일 만찬으로부터 4일 전인 14일. 이날까지 대만 타이베이 공항엔 화웨이의 특별전세기가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TSMC에 주문해 생산한 반도체를 최대한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다. 제재 시작 직전까지 화웨이 반도체를 만들어 준 것이 TSMC다.

당장 서운하더라도 화웨이나 중국정부로선 미래를 생각할 법하다. TSMC에 나중에라도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어 참는 건 아닐까.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열세라는 걸 중국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이다.

중국은 노심초사다.

미국의 제재가 부당하다고 소리치지만, 이제나저제나 제재가 완화되지 않을까 신경이 곤두서 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미 반도체 기업 AMD와 인텔 사례를 보자. 최근 관영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언론은 두 기업이 미 정부로부터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도록 허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 상무부만 허가하면 원칙적으로 화웨이와 거래할 수 있다. 이를 AMD와 인텔이 해냈다는 거다.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를 인용해 “AMD, 인텔이 허가를 받은 사실은 미국의 규제가 점차 완화될 것을 시사한다”는 ‘희망 섞인’ 분석까지 내놨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하지만 중국도 안다. 이 정도론 화웨이 생존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 장쥔무 통신업계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타임스에 “AMD는 화웨이 노트북에 반도체를 공급한다”며 “이는 죽어가는 스마트폰 반도체 산업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화웨이의 주력인 스마트폰과 거기에 들어가는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제재는 그대로란 말이다. 더구나 AMD와 인텔 건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공식 확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언론 보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중국의 속내만 들켰다.

중국 정부도 미국에 보복 조치를 하려 한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중국판 블랙리스트'인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 작성 계획을 19일 밝힌 거다. 여기에 뽑힌 기업은 중국 내 기업 활동이 막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명단에 미 통신 네트워크 기업 시스코가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이미 시스코와 거래하던 중국 국영 통신 업체들이 계약을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내부적으론 고민이 많다. WSJ에 따르면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담당하는 류허 부총리 등 고위 관리들은 블랙리스트 공개 시점을 11월 미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블랙리스트가 공개되면 미국이 더 가혹한 규제를 가할까 걱정돼서다.

이를 갈고 힘을 기를 생각이지만, 당장은 중국이 미국에 힘이 부치는 게 분명하다.

화웨이엔 시간이 많지 않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EPA=연합뉴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EPA=연합뉴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은 지난달 상하이교통대와 푸단대·둥난대·난징대를 찾은 데 이어 지난 18일 중국과학원(CAS)까지 방문했다. 중국 내 최고 과학·기술 인재들이 모인 곳을 찾아 독자기술 개발을 독려하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 마지화 애널리스트는 중국 증권시보에 “중국은 미국의 탄압을 받으면서 통상적으로 필요한 시간의 10분의 1만에 기술 자립을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간이 흘러가면 말 그대로 화웨이는 존폐를 고민해야 한다.

궈핑(오른쪽) 화웨이 순환회장이 23일 화웨이 커넥트 행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궈핑(오른쪽) 화웨이 순환회장이 23일 화웨이 커넥트 행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고민의 흔적도 내비치고 있다. 궈핑(郭平) 화웨이 순환 회장은 23일 상하이에서 열린 '화웨이 커넥트' 행사 기조연설에서 "만일 미국 정부가 허락한다면 우리는 미국 회사 제품을 사기를 원한다"며 구체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면) 퀄컴 칩으로 기꺼이 스마트폰을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다시 TSMC 사례를 보자. 중국이라도 자신들이 아쉬우면 고개를 숙인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 틈바구니. 그 안에서도 기술력이 뒷받침된다면 우리만의 길을 갈 수 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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