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윤규 건축이 삶을 묻다

5일 만에 짓는 병원, 감염 위험 없는 공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건축

코로나19 재난을 맞아 건축계도 각종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사진은 건물 중간에 녹지를 조성한 미국 시애틀의 주거 타워. [사진 각 건축사무소]

코로나19 재난을 맞아 건축계도 각종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사진은 건물 중간에 녹지를 조성한 미국 시애틀의 주거 타워. [사진 각 건축사무소]

지난 4월 초다. 경기도 안산시 와스타디움에서 별난 풍경이 빚어졌다. 국제 규격 축구장에서 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이 진행됐다. 수험생들은 운동장에 2m 이상 간격을 두고 배치된 책상과 의자에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코로나19 시대의 진풍경이다. 축구장이란 고정 관념이 무너졌다. 일면 서글픈 장면이지만 공간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뒤집었다.

“접촉은 줄이되 만남은 유지하라” #젊은 건축가들의 아이디어 만발 #낮에는 사무실, 주말에는 헬스장 #일상의 모든 기능 집으로 집중돼

코로나19 대재앙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신조어 뉴노멀(New Normal)도 이제 물릴 정도다. 건축 또한 마찬가지다. 건물·조경·도시 가릴 것 없이 거대한 변화가 예측된다. 코로나19 이후의 건축, 즉 포스트 코로나19를 준비하는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 건축가들이 다양한 상상력을 펼쳐 보이고 있다.

소위 언컨택트(Uncontact) 시대다. 사람들이 접촉을 꺼린다. 공동체를 강조하던 삶이 개인화·파편화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모여야 한다. 온라인 기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새로운 도시 구조를 짜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19 사회에서 가장 먼저 달라질 건축은 병원일 것이다. 공공병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전염병에 맞서는 병원을 세워야 한다. 일반병동과 전염병동의 구분도 필요하다. 확진자가 급증할 경우 음압격리 병상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방법은 없을까. 조립식, 즉 모듈화된 병원이 대안 중 하나다.

회사·학교·주택 등 혁명적 대변화

의료설비를 갖춘 ‘전염병을 위한 바벨탑’. [사진 각 건축사무소]

의료설비를 갖춘 ‘전염병을 위한 바벨탑’. [사진 각 건축사무소]

세계적 건축전문잡지 ‘에볼로’(eVolo)가 해마다 여는 국제 현상공모 올해 1등 수상작은 ‘전염병을 위한 바벨탑’이다. 긴급 건설팀이 닷새 안에 지을 수 있는 ‘마천루 병원’을 제시했다. 구조도 간단하다. 우선 강철 프레임 구조를 세우고, 이어 의료팀이 개별 프레임에 부착할 의료 상자를 선택하면 된다. 모듈화 시스템을 활용한 초고층 빌딩이기에 발병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기존 의료 인프라의 부담도 덜어준다.

재택근무가 일반화하면서 사무실 공간도 달라질 것이다. 거대 업무공간이 축소되고, 화상회의를 하는 소그룹 공간이 늘어난다. 업무 총괄을 위한 헤드쿼터 기능이 강화된다. 데이터 센터가 사무공간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온라인 홈 스쿨링과 오프라인 교실의 장점을 혼합한 공간이 필요하다. 수업의 중심이 일대다에서 일대일로 바뀔 수 있다.

사회적 거리를 확보한 ‘디 인비저블 페이스 마스크’ 공원. [사진 각 건축사무소]

사회적 거리를 확보한 ‘디 인비저블 페이스 마스크’ 공원. [사진 각 건축사무소]

코로나19 세상에서 새로 발견한 것은 집의 소중함이다. 집에서 업무를 보고, 온라인 쇼핑을 하고, 수업을 듣고, 여가를 즐기게 됐다. 집 자체가 여러 건축 유형의 총합으로 부각됐다. 방 하나에 모든 것을 갖춘 올인 룸처럼 아파트 내부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내는 곳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호주 건축사무소 우즈 베이곳이 선보인 AD(Adjustable) 아파트가 그렇다. 가변형 벽을 최대한 활용했다. 아파트가 낮에는 사무실, 밤에는 휴식 공간, 주말에는 레저·취미 공간이 된다. 홈 트레이닝, 온라인 공연장·전시장 등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기능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내부 변형이 어려운 기존 주택에서는 테라스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실내 발코니 공간을 밖으로 빼서 업무·휴게실로 쓸 수 있다. 기존 아파트 전면에 새로운 테라스를 덧붙이는 리모델링도 고려할 수 있다.

시간·용도별로 내부를 바꾸는 아파트. [사진 각 건축사무소]

시간·용도별로 내부를 바꾸는 아파트. [사진 각 건축사무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교류하기를 꿈꾸고 있다. 코로나19로 야외에 갈 수 없다면 야외를 실내로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 미국 뉴욕 ODA 건축사무소는 실외와 실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주거 타워를 디자인했다.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거주자 전용의 녹지 구역을 만들었다. 마천루로 가득한 도시 콘크리트 정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휴식을 즐기도록 했다. 운동·명상·요가도 할 수 있는 실내 정원, 커뮤니티 웰빙 공간이다.

밀폐 공간이 위험해지면서 나무와 숲이 있는 공원을 찾는 이가 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려들면 이 또한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한다. 최근 서울시에서 주최한 코로나 이후 시대에 대비하는 건축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베트남 작가의 ‘디 인비저블 페이스 마스크’(The invisible Facemask)가 시사적이다. 전염병 감염을 최소화한 공공 공원을 제시했다. 한두 명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수직 교차로를 만들어 산책로로 쓸 수 있게 했다. 사회적 거리를 확보한 공원이다. 접촉 감염을 막기 위해 미로 같은 구조를 끌어들였다.

자율배송 로봇이 달리는 지하도로

버스가 직접 이동하며 손님을 찾아다니는 ‘버스 레스토랑’. [사진 각 건축사무소]

버스가 직접 이동하며 손님을 찾아다니는 ‘버스 레스토랑’. [사진 각 건축사무소]

온라인 쇼핑이 증폭되면서 물류 체계 또한 변화할 것이다. 자율주행 배송 로봇은 이제 새롭지 않다. 덴마크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향후 완성될 도요타 우븐 시티(Woven City) 지하에 자율 배송 로봇 도로를 만들었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것은 물론 자동차 도로만큼 넓을 필요도 없다. 화물차가 달리는 지상 도로가 없어진 만큼 기존 도로를 더욱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건축가 장윤규가 제안한 아파트 리모델링. 기존 테라스를 도서관·정원·극장·갤러리·수족관·캠핑장·농장 등 다양한 용도로 꾸며 보았다.

건축가 장윤규가 제안한 아파트 리모델링. 기존 테라스를 도서관·정원·극장·갤러리·수족관·캠핑장·농장 등 다양한 용도로 꾸며 보았다.

한국의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적용돼 주목받은 드라이브 스루도 도시 곳곳으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비접촉·비대면이 활성화한 도시 구조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차를 타고 식당이나 판매점을 찾아갈 수 있지만 앞으로는 반대로 식당이나 판매점이 사람을 찾아다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코로나 이후 시대에 대비하는 건축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란 작가의 ‘버스 레스토랑’이 그렇다. 버스가 이곳저곳 필요한 장소로 움직이며 사람들이 서로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버스 안에 나무와 꽃을 들여놓아 야외식당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대형 공기정화기로 변신하는 건물들

필터 건축

필터 건축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시의 인프라도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도심 고층 건물들의 환기 장치가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대형 병원에서 음압병실 시스템이 긴요하듯이 모든 건축물, 나아가 도시 전체가 공기를 정화하고 병균을 살균하는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한다.

예컨대 현관 같은 건물 입구 자체를 에어 샤워 기능을 갖춘 살균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어쩌면 향후 모든 건물에 필수적으로 설치될지도 모른다. 나아가 건물 전체가 살균과 정화 기능을 구비한, 말하자면 ‘청정 머신’ 같은 건축이 요구될 수도 있다.

국내 젊은 건축가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시대에 대비하는 아이디어 공모전이 최근 진행됐다. 수상작 가운데 최우수상을 받은 송은아의 ‘필터 건축’(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건축 전체를 거대한 필터 시스템으로 꾸며보자고 제안했다. 건물 내부에서 정화한 공기를 거리와 골목으로 공급하자는 발상이 흥미롭다. 아무리 비대면 사회라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사회적 공동체에 대한 소망을 담았다.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 교수·운생동건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