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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드라마로 AI에 언어 가르쳤더니 “노잼, X짜증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김경일

김경일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어?” 엄마가 아이 얼굴을 한 인공지능(AI) 캐릭터에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아이는 “유치원엔 찌질한 애들뿐이라 노잼이야”라고 투덜댄다. 엄마가 “나쁜 말 쓰면 안 된다고 했지?”라고 타이르자, 이내 아이는 “엄마도 나쁜 말 썼잖아. 개짜증나”라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아이들 자극적 단어 빠르게 흡수” #AI 실험 자문 맡은 LGU+ 광고 화제 #“게임도 논리·창의력 키울 수 있어 #중독이 문제지, 안 하면 바보 돼”

LG유플러스 ‘아이들나라’ 광고의 한 장면이다. 아이가 언어를 학습하는 단계대로 AI 알고리즘을 짜고 8주 동안 동영상 콘텐트로 약 34만 어절(띄어쓰기의 단위)을 학습시킨 실험 과정과 결과를 담았다. 동영상 콘텐트를 무작위로 보면서 언어를 학습한 AI가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언어습관을 갖게 된다는 실험 결과다. 이 광고는 유튜브에서 750만 뷰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광고에 등장한 김경일(50·사진)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이 AI 실험 자문을 맡았다. 그는 광고 출연료 3000만원을 서울시립 아동복지 시설 ‘꿈나무마을’에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22일 그를 만났다.

실험 속 AI에게 보여준 ‘무분별한 콘텐트’란 어떤 거였나.
“특별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이 아니다. 단지 아이 연령대에 안 맞는 예능프로나 드라마 등에 자주 노출된 걸 얘기한 거다.”
7~9세의 어린아이가 12~15세 이상 시청 가능 영상에 노출되는 건 흔하다.
“아이들이 청소년·성인용 콘텐트를 보면 스토리 맥락은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자극적인 단어와 행동을 빠르게 흡수한다. 발달 단계에 맞는 콘텐트가 중요한 이유다.”
광고 속 AI처럼 거친 언어를 쓰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의 거친 표현은 보고 들은 것을 흉내 내는 것이다. 부모·교사 등 주변 어른이 ‘나쁜 아이’라고 꾸짖으면 그제야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걸 알고 놀란다. 이때 ‘네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엄마가 좋은 표현을 안 썼나보다. 미안해. 엄마부터 고칠게’라고 다독여야 한다.”
LG유플러스 광고에 자문한 계기는.
“인지심리학은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학문이다. AI 관련 실험 등에 자문하는 일이 많다. 또 게임 개발자에게 아이디어, 인사이트를 주는 강연도 자주 한다.”
게임 역시 언어습관 형성에 악영향을 주는 ‘무분별한 영상 콘텐트’ 중 하나가 아닌가.
“아이들이 게임 속 언어를 현실에서도 쓴다면 그건 과몰입 때문이다. 게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과몰입하게 되면 게임뿐 아니라 TV시청, 공부도 문제가 된다.”
평소 ‘게임을 학습 도구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했다.
“게임만 하면 바보가 된다. 하지만 게임을 한 번도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온다. 미래 사회에선 자신의 콘텐트에 게임적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모르면 성공할 수 없다. 독서로 사고력을 키워왔듯, 게임으로도 논리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게임을 독서에 비유했다. 자녀가 게임하는 걸 책을 읽는 것처럼 생각하란 의미인가.
“게임도 새로운 지식 창구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임에 빠져 중독되는 게 아니라, 게임적 요소를 익히고 다른 콘텐트에 적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관건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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