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를 놓고 군 당국은 24일 브리핑에서 자진 월북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지만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평소 월북 동기를 내색하지 않은 47세 공무원이 20㎞ 이상을 헤엄쳐 북한으로 향한다는 생각을 품은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군의 미온적 대처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24일 군 당국은 이씨의 자진 월북 근거로 크게 4가지를 제시했다.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신발을 벗고 배에서 이탈한 점 ▶소형 부유물을 이용한 점 ▶북한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점이다. 정황상 적어도 실족으로 보기 어려운 데다, 다양한 첩보 수단을 통해 볼 때 이씨의 직접적인 월북 의사도 확인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 군의 정보 능력이 노출될 수 있어 이 같은 정황 증거의 출처를 상세히 설명할 수 없다”면서도 “실종자가 표류한 뒤 생존을 위해 월북 의사를 밝혔을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선 자진 월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북을 단정하는 듯한 군 당국의 입장에 의구심은 여전하다. 우선 이씨의 월북 경로가 지나치게 무모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씨의 실종 지점에서 북한 해안까지 최단 거리를 볼 때 약 21.5㎞를 헤엄으로 가는 건 위험 요소가 상당하다. 특히, 이 지역은 조류가 강하고 물때도 자주 바뀌는 지역이다. 여기에 저체온증까지 극복해야 한다.
이씨가 월북을 감행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주변 증언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씨의 동료들은 2명의 자녀를 둔 평범한 40대 가장 이씨에게 월북할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의 한 가족은 페이스북에 “월북이라는 단어와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 왜 (월북을) 콕 집어 특정하는지 의문”이라고 썼다. 이씨가 동료들에게 수천만 원을 빌리는 등 경제적으로 부담을 겪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를 생사를 걸 만한 월북 동기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군 당국이 사살에 대한 책임론을 모면하기 위해 월북 판단을 성급하게 내렸을 수 있다는지적도 나온다. 군 당국은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 북한 수상사업소 선박이 이씨를 발견한 뒤 4시 40분에 이씨가 해당 선박에 월북 의사를 밝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총격이 이뤄진 오후 9시 40분까지 약 6시간 동안 이씨가 해상에 있었지만 한국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북한 측 해역에서 일어난 일인 데다 사살까지 예상하지 못해 즉각 대응을 못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중국과 접경 지역에서 월경자를 사살한 정황을 포착한 적이 있다.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의미다.
이번 북한의 만행과 관련, 군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단순 표류가 아닌 자진 월북에 의한 사건이라면 군에 집중될 수 있는 따가운 비판 여론을 다소나마 완화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도 자진 월북이 단순 표류보다 덜 부담스러울 수 있다.
육군 중장 출신인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월북했건 단순 표류했건 북한이 비인도적 행위로 무고한 우리 국민을 살해한 죄악에는 변함이 없고 우리 당국 역시 자국민의 희생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군 이상의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