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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약혼녀와 쫓겨난 무일푼男, 67쪽 니콜라 보고서의 반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 응한 네이선 앤더슨. [WSJ 캡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 응한 네이선 앤더슨. [WSJ 캡처]

'제2의 테슬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수소 전기차 업체 니콜라의 추락엔 날개가 없다. 23일(현지시간) 수소 충전소 건설 논의가 중단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날 하루에만 주가가 25.82% 내렸다. 주당 21.15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20달러 선도 위태로워졌다. 지난 6월 고점(주당 80달러) 대비 4분의 1토막이 났다. 투자자의 잠 못 드는 나날도 이어지고 있다.

니콜라 추락의 방아쇠를 당긴 건 67쪽짜리 보고서다. 지난 10일 투자리서치 회사인 힌덴버그 리서치가 니콜라의 수소전기자동차 관련 사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모든 시장과 투자자를 뒤흔드는 의혹의 막이 올랐다. "공매도 세력의 부당한 의혹 제기"라면서도 니콜라 창업자인 트레버 밀턴은 사임했다.

니콜라에 결정적 한 방을 날리고 화제의 중심에 선 힌덴버그 리서치는 전 직원이 5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다. 설립자 네이선 앤더슨(36)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이 보고서로 인해 니콜라 투자자들은 돈을 잃고, 니콜라 기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며 나는 엄청난 협박에 시달리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의혹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WSJ에 "이제 시작"이라며 추가 의혹 제기도 시사했다.

끝없는 니콜라 추락, 20달러 선도 무너지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끝없는 니콜라 추락, 20달러 선도 무너지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정의의 사도를 자처한 앤더슨은 미국 코네티컷 출신이다. 지역 주립대에서 국제경제를 공부한 뒤, 투자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팩트셋 리서치에 취직했다. 그러나 곧 흥미를 잃었다고 한다. 그는 WSJ에 “기업에 유리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생산하는 것 같았다”며 “나는 (의혹의) 구멍을 파고드는 데 더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앤더슨은 2017년 힌덴버그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1937년 5월 6일 정박 시도 중 화재가 발생해 전소했던 독일 비행선 힌덴버그 사건에서 따왔다. 힌덴버그 측은 홈페이지에 “그 사고는 충분히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며 “투자에서의 그런 인재를 막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적었다.

앤더슨은 WSJ에 “회사 설립 후 여러 기업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소송을 당해 집세를 낼 돈이 없어) 임신한 약혼녀와 함께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며 “파산상태였고 상황은 꽤나 안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거의 무너져가는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니콜라 사태로 앤더슨과 힌덴버그 리서치가 화제의 중심에 선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한 몫도 챙겼다. 니콜라 공매도, 즉 주가 추락에 베팅한 투자로 큰 수익을 거뒀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액수 대신 앤더슨은 WSJ에 “큰 규모의(sizable) 수익”이라고만 표현했다. 앤더슨은 “(니콜라는) 우리의 큰 승리”라며 “우리는 공매도 투자를 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라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 지금은 이렇게 못 웃는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니콜라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 지금은 이렇게 못 웃는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힌덴버그에 승리를 안겨준 보고서는 니콜라 세미 트럭 주행 비디오의 결정적 오류를 잡아냈다. 니콜라가 실제 주행을 한 것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의 언덕에서 트럭을 굴리고, 그 영상을 촬영해 마치 주행 영상인 듯 홍보에 활용했다는 의혹이다. 보고서는 해당 비디오 제작에 관여했던 이의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고, 영상의 실제 촬영지인 유타주를 찾아 비슷한 사양의 차량을 두고 실험도 했다.

보고서는 “기어를 중립에 넣고 굴렸더니 시속 56마일(약 90㎞)로 2.1마일을 달렸다”고 적었다. 니콜라 측도 “언덕에서 굴린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한국의 금융감독위원회 격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자 호도 혐의로 니콜라 조사에 착수했다.

니콜라 추락을 이끈 힌덴버그 보고서 커버. [힌덴버그 리서치 캡처]

니콜라 추락을 이끈 힌덴버그 보고서 커버. [힌덴버그 리서치 캡처]

현재 힌덴버그 보고서가 니콜라와 관련해 제기한 모든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결정적 팩트 오류에 대해 니콜라 측이 시원스러운 답변을 내놓지 못하며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제2의 테슬라'로 주목받았지만, 희대의 사기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사실 니콜라는 출시 차량이 없는데도 간판 상품인 세미 트럭의 주행 비디오 등을 공개하고 여러 설명회를 통해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전기자동차 기업인 테슬라의 질주를 목도한 투자자들과, 팬데믹으로 인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급한 풍부한 유동성이 니콜라로 몰려들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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