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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으로 건반 잡아채는 괴물 신인, 16세 피아니스트 임윤찬

중앙일보

입력

28일 온라인 생중계 공연을 위해 홍보 영상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코리안심포니 유튜브 캡처]

28일 온라인 생중계 공연을 위해 홍보 영상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코리안심포니 유튜브 캡처]

“아… 저는… 연주는 제 성격하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성격 그대로 피아노를 치면 어후….” 말을 계속하나 싶었는데 끝이었다. 목소리는 낮고 속도는 느렸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6)과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화로 22일 진행됐다. 전화 건너편의 임윤찬은 신중히 단어를 골라 말을 이어갔다. “무대에서 가장 많이 제가 생각하는 건… 그건 캐릭터에요. 그 음악의 성격이요.”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임윤찬의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는 본능적이다. 빠른 음악이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데 거의 모든 마디에서 예상을 벗어난다. 뻔한 부분이 없는 그의 모차르트는 자신의 귀와 음악성만 믿고 맹랑하게 나아간다.

이 동영상은 지난해 11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의 본선 1차 무대다. 그는 이 콩쿠르의 16년 역사상 가장 어린 우승자로 기록됐다. 19개국 154명, 많게는 만 30세까지 참가했던 이 대회에서 15세 임윤찬은 우승은 물론 특별상까지 가져갔고 병역 면제를 받았다. 본선 1차의 모차르트 연주에서부터 일관된 자기 세계를 당돌하게 표현해냈다.

피아노에서 내려오면 말수가 확 줄어든다. “제가 원래 친구들이랑도 말을 잘 안해요. 어려선 좀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전화를 건네받은 그의 어머니는 “피아노를 시작하고, 음악을 잘해보고 싶다고 하면서 완전히 피아노에만 빠져들어 그 생각 뿐이다”고 했다.

임윤찬은 동네 학원에서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했다가 우연히 진로를 정했다. “TV에서 어떤 형이 예술의전당 영재 아카데미 다니는 모습이 나왔는데 저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피아노를 제대로 하게 됐어요. 피아노가 원래 좋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건 줄은 몰랐어요.” 당시 영재 아카데미 오디션에서 그를 눈여겨 본 한국예술종합학교 손민수 교수가 지도를 자처했다. 임윤찬은 예술중학교인 예원학교에 입학했고 올 2월 졸업한 후 고등학교를 건너 뛰고 내년 3월 한예종에 영재 입학한다.

16세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16세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이 느릿한 10대 소년에게 무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우선 연습시간은 많은 편이다. “연습할 때는 정말 철저하게 부분부분 나눠서 제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해요.”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걸 완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연습량이 늘어나는 경우다. “그런데 무대에서는 그걸 다 잊어버리고 자유로워지려는 노력만 해요. 저도 청중도 없고 음악만 남아서 아무 것도 없어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도록요.”

임윤찬은 역시 지난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연주했던 쇼팽의 연습곡 작품번호 25번의 12곡 중 마지막 세 곡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 때 음악 속에 완전히 들어갈 수 있었어요. 어떤 기분도 들지 않았어요.” 동영상으로 남은 당시의 흔적은 매혹적이다. 음악의 속도는 활로 쏜 것처럼 싱싱한데 감정에 따라 흔들린다. 리듬을 감각적으로 잡아 채가며 음표들을 용감하게 해치워버린다.

이런 순간을 위해 이제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인 그는 연습하고, 음악을 듣고, 다시 연습을 한다. “예전에는 게임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 아무 것도 안 해요. 시간이 부족해서요. 제가 생각한만큼 연주 수준을 높이고 싶어서 되게 절실해요 항상.” 그의 어머니는 “그저 하는 거라곤 피아노 연습과 음악 듣는 일 뿐이고, 가끔씩 ‘무한도전’ 재방송 정도 본다”며 “음악가도 없고, 클래식 음악을 잘 아는 사람도 없는 집안에서 정말 뜻밖의 아이”라고 했다.

임윤찬의 연주는 28일 오후 7시 30분 네이버TV, V라이브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협주곡 3번을 협연하는 무대다. 코로나19로 지난달 하려던 공연이 미뤄지고 온라인 생중계로 전환됐다. 그는 같은 곡을 통영 콩쿠르의 결선에서 연주했다. 모든 곡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오케스트라가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튀어나가며 연주했다. “흐름상 제가 그 템포를 원했어요. 좀 흥분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흘러가서 늘 다르게 연주하는 것 같아요.” 자신조차도 무대 위 자신의 가능성의 끝을 정확히 모르는 듯한, 괴물같은 신인이 나타났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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