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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초·재선 ‘선한 시장 vs 악한 마트’ 구도로 선명성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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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유통업 관련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온·오프라인 경쟁시대 #마트 의무휴업 큰 효과 없지만 #상인회 등 의식 규제법안 발의 #전문가 “둘 다 생존하게 지원을”

23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정부가 대형마트 규제를 시작한 2010년 21조4000억원이던 전통시장 매출은 2018년 23조9000억원으로 2조5000억원이 느는 데 그쳤다. 그 기간 정부가 전통시장 지원에 쓴 누적 예산(2조4833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규제의 효과가 아니라 규제의 명분을 소비한다”(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을 만나 하소연해 보면 ‘유통 규제 효과가 없는 것을 우리도 안다. 하지만 무조건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전국 전통시장 및 상인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국 전통시장 및 상인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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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관련 규제 법안이 계속해 발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선한 약자’이고, 유통기업은 이들을 괴롭히는 ‘악한 강자’라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 정치인 입장에선 약자를 지켜주는 정의의 사도가 된다. 초선·재선은 물론 다선까지 여당 의원 사이의 선명성 경쟁도 이를 촉발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은 ‘표’가 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국 1437개 전통시장에서 일하는 상인 수는 35만9049명(2018년 말 기준)에 달한다. 시장 상인뿐 아니라 소상공인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636만5000명(2017년 기준)에 이른다. 국민 여덟 명당 한 명이 소상공인이다. 소상공인 관련 단체들도 유통 관련 규제에 우호적이다. 익명을 원한 서울시 자치구의 한 부구청장은 “한 표가 아쉬운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같은 선출직 공무원으로선 시장 상인회나 상인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주요 내용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주요 내용

국회의원들에게도 유통업 관련 규제 법안은 ‘타율이 높은’ 이슈다.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다른 이슈의 법안보다 크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종인 위원장부터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는 판이니, 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좋은 취지’에 대놓고 반대하기 힘든 형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규제가 양산되고 있다는 비판은 정치권에도 부담스럽다. 가구 전문점으로 분류된 이케아와 농협하나로마트, 식자재마트 등은 의무휴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 때문에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면세점과 백화점까지 규제 대상에 넣은 일부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전통시장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과잉 규제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대결’을 전제로 한 유통업 규제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제로섬(zero sum)’ 관계로만 볼 게 아니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업체들이 온라인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한국유통학회의 ‘대규모 점포 증축 및 신규 출점이 상권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대규모 점포 출점 후 전통시장 고객 중에서 7.43%가 대규모 점포로 이동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11.83%는 전통시장으로 새로 유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필드 고양점, 송도 트리플스트리트 인근 상권의 매출액은 출점 전에 비해 20~30% 늘어나는 등 ‘집객 효과’도 나타났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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