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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 녹으면 고대 바이러스 깨어날 수 있어…신종 전염병 유행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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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창간기획] 기후재앙 자연의 비명

한여름이었던 지난달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 야쿠츠크시의 ‘멜니코프 동토연구소’ 지하엔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온도계는 영하 8도를 가리켰다. 시베리아 영구동토(永久凍土) 위에 세워진 이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준 상징적 장면들이었다.

면역력 전혀 없는 현대인 치명적 #4년 전 탄저병으로 12세 소년 숨져

영구동토는 2년 이상 토양 온도가 섭씨 0도 이하로 유지되는 땅을 말하며 대부분 북극·남극 등 극지방 주변에 위치한다. 얼음의 땅 시베리아가 영구동토와 동격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지구온난화로 시베리아 영구동토가 빠르게 녹으면서 다양한 징후들이 나타난다. 거대한 구덩이 크레이터가 점점 커지거나 늘어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구온난화로 시베리아 영구동토가 빠르게 녹으면서 다양한 징후들이 나타난다. 거대한 구덩이 크레이터가 점점 커지거나 늘어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갈수록 빨라지는 지구온난화의 시계는 영구동토를 빠르게 녹이고 있다. 동토층의 붕괴는 전 지구의 온난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얼음에 갇혀 있던 탄소가 대거 방출되면서 온실 효과를 더욱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구동토엔 지구 대기 중에 있는 탄소량의 두 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려는 이뿐만이 아니다. 수만 년간 묻혀 있던 고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도 깨어날 수 있다. 부활한 바이러스로 신종 전염병이 유행한다면 면역력이 전혀 없는 현대 인류에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능가하는 ‘팬데믹’(대유행)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3만 년 전 고대 바이러스도 부활한다. [사진 CNRS]

3만 년 전 고대 바이러스도 부활한다. [사진 CNRS]

실제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2016년 여름, 러시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에선 12세 목동이 탄저병으로 숨지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곳에서 75년 만에 확인된 병이었던 터라 초기에는 생물학적 테러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저균에 감염된 동물 사체가 공기 중에 노출돼 병이 퍼진 것으로 분석했다.

땅속에 묻혀 있던 매머드 뼈. [로이터=연합뉴스]

땅속에 묻혀 있던 매머드 뼈.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최근 들어 미지의 존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14년엔 프랑스·러시아 연구팀이 3만 년 된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고대 바이러스를 발견해 되살렸다. ‘피토 바이러스’로 불리는 이 신종은 크기가 1.5μm로, 20㎚ 수준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75배에 이른다. 아직은 아메바만 감염시키고 다른 동식물에 직접적 위해를 가하진 않았지만 언제라도 위험한 존재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

동굴곰 사체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AP=연합뉴스]

동굴곰 사체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AP=연합뉴스]

시베리아에 산재한 거대 구덩이(크레이터)는 동토층 붕괴에 따른 지반 침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크레이터는 동토가 녹으면서 약해진 지표면에 기체가 유입되면서 지반 자체가 무너져 내린 결과물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5월 시베리아 노릴스크에선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열병합발전소 연료탱크가 파손돼 경유 2만여t이 인근 강으로 유출됐다. 캐나다 연구팀의 올해 논문에 따르면 동시베리아의 레나 강변에서는 아주 빠른 지반 침식이 발생해 연간 최대 22m까지 동토가 사라져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시베리아 주민들은 불안하다. 삶의 터전이 하루하루 바뀌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다. 야쿠츠크의 주부 이리나 부가에바(29)는 “기후변화 때문에 제 딸이 풀·나무·음식·물이 없는 헐벗은 행성에서 살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이수민 인턴기자

※‘기후재앙 자연의 비명’ 기획 시리즈는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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