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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전세난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안 보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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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세난이 본격화하고 있다. 여당이 밀어붙인 반(反)시장 전·월세 규제 법안의 ‘예정된 결과’다. 지난달 31일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의 부작용이 당초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주까지 64주째 상승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의 상승률은 5.9%에 달해 지난해 연간 상승률을 이미 뛰어넘었다.

원룸도 1억에 못 얻을 만큼 전셋값 급등 #정책실험 멈추고 시장 원리 따라야 해결

서울시내 아파트는 지역을 불문하고 한 달 새 1억원 넘게 뛴 곳이 속출하고 있다. 마포구의 전용면적 84㎡ 전세 매물은 한 달 만에 1억원 이상 오르며 8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전셋값 급등은 ‘서민주택’으로도 번지고 있다. 부동산 업체 다방이 서울의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30㎡ 이하 단독·다세대·연립주택의 지난 8월 평균 전세보증금은 1억6246만원으로, 올해 1월보다 2296만원 올랐다.

더 큰 문제는 값이 뛰면서 전세 물건이 아예 씨가 마르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 넉넉하면 문제가 없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결국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되면서 전세를 찾는 사람들은 도심에서 먼 곳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두리로 나가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 23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집값이 뛰면서 서민 주거지로 손꼽히는 지역의 전셋값도 급등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봉구는 1월 8141만원이었던 30㎡ 이하 원룸의 전세보증금이 1억2826만원으로 뛰었다. 올해 상승률은 57%에 달한다.

이렇게 주거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세입자들은 속수무책이다. 발품을 팔아 조금이라도 값싼 전세를 찾고,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결국 전세난의 고통이 고스란히 개인에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시장 원리를 무시한 채 집값을 잡겠다면서 부동산 거래를 틀어막는 바람에 전세난을 일으킨 정부는 세입자들이 겪는 현장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겠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1일 전세난의 심각성을 따지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임차인이 살 수 있는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시장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서민은 폭등한 전셋값에 발을 구르고 있는데 집값과 전셋값 폭등에 기름을 붓는 정책실험을 꿋꿋이 밀고 나가겠다는 선언이다.

전셋값 상승을 5%로 억제하고 주거 기간을 4년으로 늘리자는 발상은 표면적으론 서민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시장 원리로 보면 전·월세 규제는 공급 축소를 유발함으로써 결국 전세 품귀와 전셋값 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책 책임자들은 부디 정책실험을 멈추고 전세난을 겪는 국민의 혼란과 고통을 끊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