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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대형산불 겪는 한국…'산불 조심 기간' 이젠 의미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1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에서 발생해 강한 바람을 타고 주변지역으로 번진 산불이 맹렬한 기세로 산림을 집어삼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1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에서 발생해 강한 바람을 타고 주변지역으로 번진 산불이 맹렬한 기세로 산림을 집어삼키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러시아 시베리아, 미국 캘리포니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바싹 말라붙은 산에서 작은 불씨만 남아 있어도 다시 살아나는 '좀비 파이어'가 수개월간 지속됐다.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한국은 대형 산불이나 '좀비 파이어'에서 안전할까. 100㏊ 이상을 태우고 24시간 이상 지속되는 산불을 ‘대형산불’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1년에 2~3건씩 발생하고 있다.

국내 산불 발생 시기 통계. 자료 국립산림과학원

국내 산불 발생 시기 통계. 자료 국립산림과학원

국립산림과학원의 권춘근 박사 연구팀은 2018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위험을 분석했다. 기온이 상승하고 건조일수가 늘어나 산불 발생위험이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남부지역보다 중부지역의 산불 위험이 더 크게 늘어났다.

권 박사는 “종전과 같은 '산불 조심 강조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이젠 산불이 1년 내내 일어나고 과거에 경험 못한 강도의 산불도 늘어난다”며 “더 이상 대형산불의 안전지대가 없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 영향 전 세계 산불 위험 예측 모델링 결과. 자료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 영향 전 세계 산불 위험 예측 모델링 결과. 자료 국립산림과학원

전 세계 산불 위험도 모델 예측 결과에서도 올해 지속적으로 큰 산불이 났던 호주, 미국 서부, 아마존, 알래스카 등에서 산불 발생위험도가 높게 나왔다고 권 박사는 전했다. 그는 “시나리오로 예측했던 결과가 실제 현실로 나타난 게 두렵다"고 말했다.

산불발생 통계작성을 위해 현장을 다니던 중 기후변화에 관심들 갖게 됐다는 권 박사는 "2015년부터 산불 발생 패턴이 이상해지는 걸 깨달았다. 여름에도 산불이 나고, 발생 위험이 적은 곳에서도 불이 나는 사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권 박사는 “산림이 불타기 전의 기능으로 돌아가려면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며 “기후변화가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을 때에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리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 거대한 불꽃과 연기가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 거대한 불꽃과 연기가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형산불을 만드는 고온건조한 환경은 각종 이상기후 현상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는 한 가지로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특징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임종환 기후변화생태연구과장은 “2015~2019년엔 여름가뭄이 심했는데, 올해는 역대 최장의 장마를 기록했다. 이처럼 종잡을 수 없다는 게 기후변화의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말했다.

국립기상과학원 재해기상연구부의 김백조 박사도 “2018년 8월에 강릉에 시간당 97㎜의 폭우가 내렸다. 그땐 ‘이건 몇 번 없을 폭우고,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최근 들어 폭우가 내리는 곳에선 시간당 100㎜ 를 넘기는 일이 잦아졌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기후변화로 전 세계적으로, 국내서도 바람의 강도가 약해지지만 특정 지역은 오히려 강풍이 불기도 한다”며 “비 뿐만 아니라 모든 기상 현상의 세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맞는 고민과 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주변 구상나무 집단 고사 현장. 산림과학원 임종환 과장은 ’구상나무는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자기도 죽고 친구도 죽는다“며 ’자연에 대한 윤리 차원에서, 산림자원 보호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주변 구상나무 집단 고사 현장. 산림과학원 임종환 과장은 ’구상나무는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자기도 죽고 친구도 죽는다“며 ’자연에 대한 윤리 차원에서, 산림자원 보호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빠른 속도로 변하는 기후에 대응해 과학자들의 연구도 쫓기듯 빨라지고 있다. 기상청 김남욱 기후과학국장은 “평균 기온,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세계적인 추세지만, 이런 가운데 특정 지역의 이상기상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아직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기후학적으로 30년 단위로 ‘평년’ 기준을 잡는데, 최근 들어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뀌면서 30년도 너무 길고 ‘10년’ 단위로 분석해도 의미를 분석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모든 이상기후 현상에 대한 근본적 대응책은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이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협의체'(UN IPCC)는 최초로 ‘인간의 경제적 활동’을 포함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내놨다.

김 국장은 "이는기후변화에는 인간 활동의 영향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라며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만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전제엔 이견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불타고 있는 시베리아 숲을 하늘과 땅에서 찍은 실감형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스마트폰으로 QR코드에 접속하면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주소창에 (https://youtu.be/LCzj-GBL6Qk)를 입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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