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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문 닫는다고 시장 가나…직원부터 내보낼 수밖에”

중앙일보

입력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던 8월 31일 평소 인파로 붐비던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던 8월 31일 평소 인파로 붐비던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쇼핑몰 닫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다 시장을 가겠어요? 결국 저희같이 쇼핑몰에 입점한 자영업자들만 죽어나는 거죠. 직원들도 주말 장사 때문에 고용하는 건데 주말에 문 닫으라고 하면 직원들 내보내는 수밖에요”

[거꾸로 가는 유통규제]

주말 방문객 수, 평일 2배  

대형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서 신발 매장을 운영하는 김모(41)씨는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대해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 개정안은 대형마트를 포함해 백화점과 면세점, 복합쇼핑몰 등이 한 달에 한 번 일요일에 문을 닫고 설과 추석에도 휴무하도록 하는 ‘의무휴무’ 도입이 골자다. 현장에선 “장사가 안돼서 직영점도 문 닫고 있는 마당에 쇼핑몰에 임대료, 수수료 내면서 장사하는 개인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반발이 터져 나온다.

복합쇼핑몰은 주말 방문객 비중이 크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운영하는 스타필드 하남은 지난해 7~8월 주말 방문객 수는 9만~10만명으로 평일(5만명)의 2배 수준이었다. 올해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전체 방문객 수는 줄었지만, 주중과 주말 비중은 예년과 비슷했다. 주말 영업 제한은 사실상 사형선고라는 호소가 나오는 이유다.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위치한 롯데월드몰 역시 근교 매장만큼은 아니지만, 주말 방문객이 약 13% 더 많다.

중소기업 브랜드 비중 최대 70% 

복합쇼핑몰 내 중소브랜드 매장 비중.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복합쇼핑몰 내 중소브랜드 매장 비중.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런 쇼핑몰엔 글로벌 및 대기업 브랜드보다는 중소기업 브랜드가 더 많이 입점한다. 스타필드와 롯데몰 등에선 입점 업체의 최소 60% 이상이 중소기업 브랜드다. 롯데몰 수지점의 경우 약 70%에 달한다. 직영점 외에도 중앙관리매장 형태로 운영하는 매장들도 많다. 김씨와 같은 개인사업자가 브랜드 본사와 계약을 따로 맺고 운영하는 형태다.

김씨가 운영하는 매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만 해도 매출이 월 1억원(고정지출 약 3500만원) 정도였지만, 코로나19 이후엔 월 6000만원(고정지출 약 2000만원·매출연동형 수수료 반영)으로 줄었다. 김씨는 “고정지출 외에도 택배비와 물류비, 본사에 내는 물건 값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면서 “일요일만 쉬어도 매출은 30~40%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매출이 줄면 직원을 줄이는 수밖엔 답이 없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현재 정규직 직원 3명을 고용해 매장을 운영한다. 주로 손님이 몰리는 주말 영업을 위해 고용한 인력이다. 김씨는 “주말 영업이 막히면 3명 고용할 거 한명으로 줄이는 수 밖에 없다”며 “의무휴업을 시행하면 우리는 직원을 자를 수밖에 없고 실업자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일요일 매출만 한달의 18% 

작은 법인을 세워 스타필드 하남과 서울 센트럴시티, 대구의 백화점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A씨는 유통규제가 통과되면 아예 사업을 접는 것을 검토 중이다. 코로나19가 터진 지난 3월부터 월 2000만원씩 적자가 누적되고 있어서다. A씨는 “이런 상황이 몇 개월만 간다고 하면 자본력 있는 큰 법인 아니고서는 버틸 업체가 없다”고 강조했다.

A씨가 운영하는 미용실은 일요일 매출이 한 달의 약 18%를 차지한다. 펌이나 염색 등 다소 비싼 시술은 주말 예약을 통해 주로 이뤄지다 보니 주말 의무휴업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경영환경은 악화하고 있다. A씨가 사업을 시작하던 5년 전 스텝(교육생) 한명당 임금은 월 125만원이었지만, 올해 179만원으로 약 43% 올랐다. 퇴직금까지 포함하면 스텝 30명(하남과 서울 지점)의 인건비로 연 2억원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덮쳤다.

“차라리 세금 더 걷어서 직접 지원하라”

미용업은 스텝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2~3년간 교육을 거쳐 디자이너(프리랜서)로 육성하는 시스템이다. A씨는 “경쟁이 치열하니 가격은 못 올리고 임대료와 인건비만 오르고 있다”며 “매출이 줄면 가장 먼저 정리되는 건 정규직인 스텝들이다. 결국 가장 약한 계층부터 중산층까지 다 망가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의무휴업’이 아닌 ‘강제휴업’으로 칭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호소했다. “그렇게 재래시장이 중요하다면 차라리 유통 대기업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전통상인이나 소상공인을 직접 지원하십시오. 우리는 매출을 100% 신고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면서 서비스와 상품 개발, 인테리어까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밤새워 노력하고 투자하는 소상공인입니다. 강제휴업으로 우리가 받는 피해는 누가 보상해줍니까? 어떤 것이 민주이고, 정의입니까.”

유통업체로서도 난감한 상황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e커머스 업체들의 추격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이중고를 겪는 상황에서 의무휴업까지 더해지면 삼중고가 될 수밖에 없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복합쇼핑몰은 쇼핑보다는 여가의 목적이 크기 때문에 주말 의무휴업은 현실에 맞지 않다”면서 “차라리 주말보다는 ‘평일 월2회 휴무’ 같이 쇼핑몰에서 일하는 소상공인들도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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