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치원에서 뭐했어?" 엄마가 아이 얼굴을 한 인공지능(AI) 캐릭터에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아이는 "유치원엔 찌질한 애들뿐이라 노잼이야"라고 투덜댄다. 엄마가 "나쁜 말 쓰면 안 된다고 했지?"라고 타이르자, 이내 아이는 "엄마도 나쁜 말 썼잖아. 개짜증나"라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 #LG유플러스 '아이들나라' 광고 자문
LG유플러스 '아이들나라' 광고의 한 장면이다. 아이가 언어를 학습하는 단계대로 AI 알고리즘을 짜고 8주 동안 동영상 콘텐트로 약 34만 어절(띄어쓰기의 단위)을 학습시킨 실험 과정과 결과를 담았다. 동영상 콘텐트를 무작위로 보면서 언어를 학습한 AI가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언어습관을 갖게 된다는 게 실험 결과다. 해당 광고가 공개되자 유튜브에서 750만 뷰를 기록하고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이틀 연속 '많이 본 뉴스' 1위에 랭크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광고에 등장한 김경일(50)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이 AI 실험 자문을 맡았다. 그는 광고 출연료 3000만원을 서울시립 아동복지 시설 '꿈나무마을'에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22일 그를 만났다.
- 실험 속 AI에게 보여준 '무분별한 콘텐트'란 어떤 거였나.
- "특별히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이 아니다. 단지 아이의 연령대에 맞지 않은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에 자주 노출됐다."
- 7~9세의 어린 아이가 12~15세 이상 시청 가능한 영상에 노출되는 건 흔한 일인데.
- "아이들이 청소년·성인용 콘텐트를 보면 스토리 맥락은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자극적인 단어와 행동을 빠르게 흡수한다. 그래서 발달 단계에 맞는 콘텐트에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
- 광고 속 AI처럼 거친 언어 습관을 갖게 된 아이에게 어른들이 어떻게 해줘야 하나.
- "아이의 거친 표현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부모·교사 등 주변 어른이 '나쁜 아이'라고 꾸짖으면 그제야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걸 인식하고 놀란다. 이때 '네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엄마가 좋은 표현을 안썼나보다. 미안하다. 엄마부터 고칠게'라고 다독여줘야 한다."
- LG유플러스의 광고에 자문을 맡게 된 계기는.
- "전공이 인지심리학이다. 인지심리학은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학문이다. AI 관련 실험이나 방송에 자문하는 일이 많다. 또 게임 개발자에게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주는 강연도 자주 한다."
- 게임 역시 언어습관 형성에 악영향을 주는 '무분별한 영상 콘텐트' 중 하나로 볼 수 있지 않나.
- "게임이 언어습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아이들이 게임에서 썼던 언어를 현실에서도 구분 없이 쓴다면 그건 과몰입 때문이다. 게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과몰입하게 되면 게임뿐 아니라 TV 시청, 공부도 문제가 된다."
- 평소 '게임을 학습 도구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했다.
- "게임만 하면 바보가 된다. 하지만 게임을 한 번도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온다. 미래 사회에서는 자신의 콘텐트에 게임적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모르면 성공할 수 없다. 독서를 통해 사고력을 키워왔듯, 게임으로도 논리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 게임을 독서에 비유했다. 자녀가 게임하는 걸 독서하는 것처럼 생각하란 의미인가.
- "게임도 새로운 지식 창구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임에 빠져 중독되는 게 아니라, 게임적 요소를 익히고 다른 콘텐트에 적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관건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