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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경찰 조사중 살인미수범 사망···"약 먹겠다"더니 졸피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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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안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살인미수 피의자가 마약류 의약품을 먹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져 숨진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A(46)씨는 지난 7월 21일 오후 10시 30분쯤 서울 신사동의 한 술집에서 40대 사장 B씨를 "죽여버리겠다"며 흉기로 찔렀다. 사채업자로 알려진 A씨는 B씨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A씨는 업소 직원들에 의해 제압당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한테 체포됐다. B씨는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강남경찰서. 뉴시스

강남경찰서. 뉴시스

A씨는 조사를 받기 위해 강남경찰서로 옮겨졌다. 22일 오전 1시 30분쯤 형사과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A씨는 "평소 먹는 약이 바지 주머니에 있으니 꺼내먹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복용을 허락했다. 하지만 A씨가 삼킨 약은 수면제이자 마약류로 분류된 '졸피뎀'이었다. 약물 의존성, 오남용 위험이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졸피뎀을 삼킨 A씨는 반복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 증상을 보였다. A씨는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시간 뒤 결국 숨졌다.

부검 결과 A씨의 사망 원인은 '약물에 의한 사망'으로 나타났다. 당초 경찰은 A씨의 1차 부검 결과가 '심장 이상'으로 나와 살인 미수 사건에 대해 곧바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A씨의 사망 원인이 약물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나자 강남경찰서는 A씨의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놓고 사망 경위를 재조사 중이다. 경찰은 A씨 사인을 밝힌 뒤 살인미수 사건을 공소권 없음 처리할 예정이다.

경찰청 훈령 '예규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에 따르면 경찰관은 유치장을 관리하면서 유치인의 도주·자살 등을 방지하고 유치인의 건강과 유치장 질서 유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검찰 출신인 정태원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스)는 "피의자가 체포됐다면 신병 관리를 해야 할 책임은 수사기관에 있다"며 "중범죄일수록 도망가거나 자해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본래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약물 반입은 원칙적으로 금지돼있다"며 "수사관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정황상 과실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불면증 치료용으로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장기간 복용 시 환각 증세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연합뉴스

불면증 치료용으로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장기간 복용 시 환각 증세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연합뉴스

경찰 측은 "A씨의 상태가 안 좋아지자 곧바로 119를 불러 병원으로 보냈다"면서도 "구체적인 수사 사항은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약물 구입 절차 등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가 길어지고 있다"며 "사망 원인 등을 밝혀낸 뒤 관리 책임이 있었다면 절차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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